K선생

기록 2010/03/26 03:01

K선생을 만났다. 하얀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고, 말이 느릿했고, 목소리는 조용했다. 작곡을 하는 사람이다. 음악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을 만나면 신기하다. 이전에는 화가가 신기했다. 직선을 그으면 따라그을 수 있다. 원을 그린 것을 보면 따라 그릴 수 있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사람 얼굴을 그려내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갔기 때문이다. 본 것을 비슷하게 그릴 수 있다는 건 경이로운 재주이다. 결국 그네들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족속이려니 생각하기로 했다. 서두가 길었지만, 이젠 머릿속에서 음악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신기하다는 것이다. 연주하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지만 작곡하는 사람은 신기하다. 아무튼 K선생은 그런 사람이다. 머리에서 소리를 떠올린다.

나는 어쩌면 그와 함께 작업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공연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깨달은 게 있다. 나는 세상에서 배우가 가장 순진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보다 더한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돈하고 상관없는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돈하고 상관없이 사고를 한다. 한참을 이야기하다 보니 내가 닳고 닳은 기획자로 느껴질 정도이다. 백면서생같은 K선생과 이야기하는게 그나마 답답하지 않았던 것은 그가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는데 있다. K선생은 너무 오랜 시간동안 오선지만 들여다 보아서 세상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본질적으로 똑똑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정말 웃겨. 나도 아카데미에서만 근 10년을 굴러다닌 세상물정 모르는 얼치기라고.

- 어떤 음악을 쓰세요?
- 음..... 현대 음악도 많이 들으세요?
- 어떤 장르요? 클래식?
- 네.
- 쇼스타코비치?
- 그 사람은 제 기준에는 고전에 가까워요.
- 펜데레츠키, 윤이상?
- 비슷하네요.
- 아, 그런 곡들을 작곡하세요?
- 그보다 조금 더 현대적이죠. 일종의 소음이나 음향 효과 같은. 제가 앞으로 많이 소개해 드릴게요.

머리속에서 멜로디가 떠오르는 사람도 쉽사리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소음과 같은 음향이 떠오르는 사람은 더욱 이해가 힘들다. 나는 K선생이 대체 무슨 음악을 작곡하고 있는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들어보진 않았지만 아마 쉽게 좋아하기 힘든 음악들이리라. 나는 K선생이 매우 좋은 사람이라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부디 그가 작곡하는 음악을 내가 좋아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2010/03/26 03:01 2010/03/26 03:01
Posted by 빨간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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