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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25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4)
  2. 2010/03/23 셔터 아일랜드 (2)
  3. 2010/03/20 허트 로커 (4)
  4. 2010/03/19 [TED] 알랭 드 보통 (5)
  5. 2010/03/18 [TED] 로리 서덜랜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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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SF작가로 불리는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저서. 예전에 누군가가 3대 SF 작가가 아이작 아시모프, 어슐러 르 귄, 필립 K. 딕이라고 우긴 적이 있다. 내가 비록 SF에 대한 조예가 깊진 않아도 어슐러 르 귄이 끼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기에(그리고 그 사실을 안타까워하고 있었기에!) 절대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난 아직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억하 심정이 생긴다, 으으.

우연찮게 한 페이지를 넘겼다가 580페이지 분량을 다 읽게 되었다. 흡인력이 굉장하다. 어쩌면 이 작품 자체가 내 취향이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교활한 술수를 부리는 이상주의자들을 무척 사랑한다. 이 인간들이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사용하는 모든 술수들! 푸하핫, 파시즘이야, 당신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고방식이 유쾌한 것을 보면 나도 선한 인물은 못되는 모양이다.

줄거리를 짧게 요약하자면 달 식민지가 지구 연방에 대해 독립을 쟁취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온갖 술수가 등장하고, 정치력과 무력과 경제력을 가지고서 결국 승리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이 대국민 사기 행각에 가깝다는 것이다.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속인다. 대중 100명을 설득하는 것보다 현명한 사람 셋이서 뚝딱 결정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 아마 그건 작가가 독단적인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치여서일 것이다. 민주적인 토론과 회의에 진절머리가 난 사람만이 생각해낼 수 있는 행각들이 너무 많다. 거의 괴벨스급이다. 다른 게 있다면 괴벨스에게는 히틀러가 있었지만, 하인라인의 주인공들은 선량한 이상주의라는 차이일까. 철저한 엘리트주의. 단, 그들이 공익을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선량하고, 자부심이 강하다는 전제하의.

난 이 작가의 『스타쉽 트루퍼스』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이토록 갑작스럽게 호감을 느끼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선의와 정치적 공정성만으로 무언가를 이루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 것 같다. 현재 돌아가는 이 천박한 정치판을 보고, 동시에 이 정부가 무사히 임기를 마칠거라는 것을 아프게 깨달으면서 더더욱 그 감정이 커지는 모양이다. 

모든 SF문학은 결국 유토피아 문학이라는 비평을 본 적이 있다. 새로운 사회 시스템, 대안적 사회, 지금 현재가 아닌 어딘가에 존재할 수도 있을 것 같은 가상 사회 모델을 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SF는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의 문학인 것이고, 작가는 언제나 시스템을 그리게 되어있다고.

하인라인이 그린 시스템은 매우 위험했지만 또한 매력적으로 보였다.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까?' 라고 했을 때 나름대로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은 열정적이고, 용감하다는 뜻일터. 인간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시스템을 생각하는 일은 먹먹하다. 왕정, 공화정, 민주주의, 공산주의, 전체주의, 자본주의. 역사에 등장했던 모델을 떠올려 보면 제각기 장점도 많은 만큼 단점도 많았다는 게 떠오른다. 거꾸로 생각해야 하는 걸까. 단점도 많았던 만큼 장점도 많았노라고. 시스템이 되어본 적은 없으나 반시스템으로서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무정부주의는 어떠한가. 어쩐지 공허하게 들린다. 단순히 한번도 설득되어 보지 못해서일지도. 나는 인간의 선의와 이성 만큼이나 악의와 무지를 굳건하게 믿는다. 인류가 존속하는한 양쪽 모두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게 내가 아나키즘에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2010/03/25 00:28 2010/03/25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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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 아일랜드

감상 2010/03/23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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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잭슨의 <러블리 본즈>,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마틴 스콜세지의 <셔터 아일랜드>는 몇 가지 공통점을 갖는다.

1. 원작이 있다.
2. 스타일리시한 화면과 음악을 자랑한다.
3. 원작이 더 낫다는 말을 듣는다.

책을 각색한 영화들의 말로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영화와 책이 워낙에 매체가 다르기 때문에 둘을 일대일로 비교하는 것은 당연히 무리다. 굳이 딸기와 딸기 케이크를 비교해서 신선도가 떨어진다고 왈가왈부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매체가 다르면 표현 방식이 달라진다는 것은 당연한데 의외로, 여전히 이 부분에 대한 거부감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원작보다 별로다'라는 표현보다는 '영화가 별로다'라는 말을 써야한다고 생각한다. 감독의 전작들에 비하면 평균 미만.

이 영화, 음악이 많이 앞서 나간다. 별 것 아닌 이동 장면을 웅장한 클래식 음악으로 미스터리 장면처럼 승화시킨다. OST 자체는 따로 구해 듣고 싶을 만큼 좋았다. 영화는 비극을 과장하고, 감정을 과장한다는 측면에서 바로크적인 느낌마저 든다.

마틴 스콜세지의 페르소나가 언제부터 디카프리오가 된 것일까. 아무튼 연기는 좋았다. 작품내에서 폭력적인 캐릭터라고 명명되던데 그보다는 훨씬 감정적으로 느껴졌다. 자주 울어서 그런 것일까. 약하고, 여린 사람이어서 저기까지 갔겠구나 싶더라만은.

착란인가, 진실인가에 대해서는 영화가 제법 여지를 많이 열어놓고 있다고 보인다. 뭐가 되었든 결국 뇌수술을 하고 있는 건 사실이고, 마지막 앵글에 잡히는 등대가 그 장소인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그럼 결국 '등대가 아무 것도 아닌' 평범한 장소는 아니지 않던가. 사실 단일한 결론이라면 너무 싱겁다. 그게 언제적 트릭인데, 케케묵다 못해 썩어갈 지경인데 아직도 등장한단 말인가.

그나저나 다들 내면의 환상 세계로 침잠한다. 앞에 언급했던 세 명의 감독들이 보여주는 공통점이기도 하다. 가상 세계로, 환상 세계로 들어가버린다. 현실의 문제는 현실에서 해결되지 않는다. 개인의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의 도움없이 오롯이 자아가 만들어낸 이미지에 집중하게 된다. 가상의 힘, 위안의 힘.
2010/03/23 03:38 2010/03/23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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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트 로커

감상 2010/03/20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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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작품이고, 주로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를 제치고 아카데미 감독상과 작품상을 탔다'는 소식으로 알려져 있다. 4월 22일에 우리 나라에서도 개봉한다고 한다.

지난달, 이 영화를 어둠의 루트를 통해서 보았다. 국내 미개봉작이었기 때문에 발 빠르게 움직인 셈이었는데 국내 개봉도 한다는 말을 들으니 괜히 그랬나 싶다. 여성 감독인데도 남자들의 세계(특히 군인)를 섬세하게 그려낸다는 평가를 받는다더니 과연 그랬다. 섬세하고, 섬세했다. 이라크에서 지뢰 해체하는 미군들의 이야기인데 과장없고, 눈물없고, 섹스없이 그려냈다. 별 것 아닌 장면에서 긴장감을 뽑아내는 게 놀랍다. 캐서린 비글로우나 이안,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들을 보면 여성 감독, 혹은 남성 감독이라는 식으로 성별에 기반한 감수성의 잣대를 들이대는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의, 여성적 체험의, 남성의, 남성적 체험의... 라는 수식어는 무의미한 것이 아닐까. 타인에 대한 연민과 섬세한 배려가 있다면 성별이 강제하는 사회적, 생물학적 체험을 뛰어넘어 연대가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현재적 이슈가 미국 국민들에게 정서적으로 다가오는 정도가 엄청났을 것이다. <아바타>로서는 누르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이라크에 파병을 하지만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정보 자체로서도 기능을 할 것이다. 일종의 세미 다큐멘터리였을터. 답이 없는 싸움, 윗 세력들의 대립에 애궂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평범한 메세지도 화면으로 보게 되면 남달랐을터. 수십편의 아티클이나 책으로도 못해내는 일을 영화가 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2010/03/20 12:19 2010/03/20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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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D] 알랭 드 보통

감상 2010/03/19 15:14




알랭 드 보통은 청중을 향해 말을 걸기 보다는, 써온 글을 읽는 느낌이다. 그래서 자막을 통해 그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별 무리가 없지만, 만약 같은 공간 내에서 저 속도로, 저런 메세지를 전달한다면 마냥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글은 읽으면서 뇌에 잔상이 남지만, 말은 흩어진다. 그게 소리 언어의 한계점이기도 하다.

알랭 드 보통의 메세지는 여러가지 시사점을 준다. 사회가 평등해질수록 점점 더 많은 불평등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감정적, 인지적 문제에 대한 것인데.... 어떤 의미에서 인류가 가진 모순을 지적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무리 사회가 공정해지고, 평등해져도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지는 않을거라는 딜레마.

최근 꽤 재미있는 책 제목을 보았다.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조만간 읽어볼까 한다. 『우리는 왜 더 잘 살게 되었는데도 행복하지 않은가: 진보의 역설』이다. 제목을 읽었을 때 마치 번갯불이 스치고 지나가듯 깨닫게 되는 게 있었다. 진보적 사고라는 것은 사람들의 수평을 강조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계속 '나는 더 가져야 하는데 못 갖는다'라는 사고를 팽배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많이 가졌기 때문에 나보다 못한 이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나는 더 가져야 하는데 시스템이 부정직해서 못갖는다'는 상대적 불평등에 대한 믿음을 퍼트린다. 이러한 관점이 매우 위험하며, 동시에 그다지 올바르지 않는다는 것은 알지만 사회 현상이 보여주는 건 매우 바른 사고가 매우 이기적인 텍스트 안에서 작동된다는 것 아니던가.
2010/03/19 15:14 2010/03/19 15:14
Posted by 빨간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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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ED 강의들을 곧잘 듣는데(자원봉사 번역가분들에게 축복을!) 짧은 시간이라 부담도 없고, 내용도 유익하다. 로리 서덜랜드의 강의가 좋았던 것은 위트와 유머를 가미한 메세지 전달 방식에 있다. 좀 더 유연하게, 좀 더 유쾌하게. TED에 초빙되는 강사들이 해당 영역의 전문가들이긴 하지만 프리젠테이션의 퀄리티는 많이 갈리는 편이다. 어떤 강의는 보고 있으면 졸립다. 좋은 학자가 반드시 좋은 교사는 아니듯 전문가가 꼭 좋은 전달자는 아니라는 반증일터.

로리 서덜랜드가 주장하는 부분은 분명 광고의 역기능이기도 하다. 가치를 전도시키는 힘이 광고에 존재하고, 때로는 이것이 과도하게 나타난다. 허나, 그리 빡빡하게 따져들고 싶지 않은 것은 이 사람의 유머와 위트 때문인 것 같다. 듣는 이의 가치관과 편견을 능글맞게 해제시키고 일단 메세지를 듣게 만드는 힘. 닮고 싶은 재능이랄까.

2010/03/18 17:09 2010/03/18 17:09
Posted by 빨간그림자

글쟁이로 굶어죽지 않고, 불행하지 않고, 도취하지 않으며 살아남기
빨간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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