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대 SF작가로 불리는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저서. 예전에 누군가가 3대 SF 작가가 아이작 아시모프, 어슐러 르 귄, 필립 K. 딕이라고 우긴 적이 있다. 내가 비록 SF에 대한 조예가 깊진 않아도 어슐러 르 귄이 끼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기에(그리고 그 사실을 안타까워하고 있었기에!) 절대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난 아직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억하 심정이 생긴다, 으으.
우연찮게 한 페이지를 넘겼다가 580페이지 분량을 다 읽게 되었다. 흡인력이 굉장하다. 어쩌면 이 작품 자체가 내 취향이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교활한 술수를 부리는 이상주의자들을 무척 사랑한다. 이 인간들이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사용하는 모든 술수들! 푸하핫, 파시즘이야, 당신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고방식이 유쾌한 것을 보면 나도 선한 인물은 못되는 모양이다.
줄거리를 짧게 요약하자면 달 식민지가 지구 연방에 대해 독립을 쟁취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온갖 술수가 등장하고, 정치력과 무력과 경제력을 가지고서 결국 승리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이 대국민 사기 행각에 가깝다는 것이다.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속인다. 대중 100명을 설득하는 것보다 현명한 사람 셋이서 뚝딱 결정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 아마 그건 작가가 독단적인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치여서일 것이다. 민주적인 토론과 회의에 진절머리가 난 사람만이 생각해낼 수 있는 행각들이 너무 많다. 거의 괴벨스급이다. 다른 게 있다면 괴벨스에게는 히틀러가 있었지만, 하인라인의 주인공들은 선량한 이상주의라는 차이일까. 철저한 엘리트주의. 단, 그들이 공익을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선량하고, 자부심이 강하다는 전제하의.
난 이 작가의 『스타쉽 트루퍼스』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이토록 갑작스럽게 호감을 느끼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선의와 정치적 공정성만으로 무언가를 이루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 것 같다. 현재 돌아가는 이 천박한 정치판을 보고, 동시에 이 정부가 무사히 임기를 마칠거라는 것을 아프게 깨달으면서 더더욱 그 감정이 커지는 모양이다.
모든 SF문학은 결국 유토피아 문학이라는 비평을 본 적이 있다. 새로운 사회 시스템, 대안적 사회, 지금 현재가 아닌 어딘가에 존재할 수도 있을 것 같은 가상 사회 모델을 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SF는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의 문학인 것이고, 작가는 언제나 시스템을 그리게 되어있다고.
하인라인이 그린 시스템은 매우 위험했지만 또한 매력적으로 보였다.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까?' 라고 했을 때 나름대로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은 열정적이고, 용감하다는 뜻일터. 인간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시스템을 생각하는 일은 먹먹하다. 왕정, 공화정, 민주주의, 공산주의, 전체주의, 자본주의. 역사에 등장했던 모델을 떠올려 보면 제각기 장점도 많은 만큼 단점도 많았다는 게 떠오른다. 거꾸로 생각해야 하는 걸까. 단점도 많았던 만큼 장점도 많았노라고. 시스템이 되어본 적은 없으나 반시스템으로서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무정부주의는 어떠한가. 어쩐지 공허하게 들린다. 단순히 한번도 설득되어 보지 못해서일지도. 나는 인간의 선의와 이성 만큼이나 악의와 무지를 굳건하게 믿는다. 인류가 존속하는한 양쪽 모두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게 내가 아나키즘에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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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하인라인의 작품 세 개인가를 연속으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정말 무시무시할 정도의 매력과 흡인력이더군요. 이 책을 읽었을 때에는 괜히 고전이 아니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이상적이라고 하긴 힘들지만 달세계 자체가 워낙 매력적이기도 했고요.
성비가 1:10의 비율까지 떨어지면 남녀관계의 권력구조가 역전될거라는 생각은 흥미로웠어요. 그런데 달세계가 농업국가란 말이죠. 1차 산업에 기반을 두고 있는 곳에서 드라마틱하게 성비가 불균형해질 때 과연 하인라인이 예측한대로 흘러갈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긴 하더라고요. 특히 임신, 육아, 가사의 문제 때문에요. 달에서도 그건 여전히 여성 고유의 영역이어서요. 왠지 궁금해지더군요.
친한 이웃블로거분이 먼저 생각나네요~ㅋㅋ 전 SF와는 왜 이리 인연이 없는지. 큰 매력을 못느끼겠어요.
취향이 아닌 장르들이 있는거겠죠. 전 시가 그래요. 왜 사람들이 시를 읽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SF의 경우는 감정보다는 사유 중심이어서 소프트한 과학 이론서를 읽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거기에 작가 고유의 이상국가론이 덧붙여진달지. 과학 기술이 얼마나 사회를 뒤흔들 수 있는지에 대해 확신하는 사람이라면 시스템을 재구성하는 것에 매력을 느낄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