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년 전, 박사 논문을 끝낸 언니가 해주었던 말이 떠오른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타인의 생각과 의견에 넓어지고, 그걸 수용함으로서 넓어져야 하는데 오히려 자의식만 커져가고, 뚱뚱해져 간다고. 그래서 새로운 사상과 생각에 열려지는 것이 아니라 "아, 저거 아닌데!" 내지는 "저건 틀렸어!"라고 말하게 된다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모습은 가장 닮기 싫어했던 교수의 모습들이라고.
지금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 10여년만 지나도 뒤집힐 수 있고, 반박될 수 있다는 것을 추호도 생각지 않는 경직된 학자라니, 얼마나 끔찍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이 많아지고, 보다 많은 데이터를 접하게 되면 될수록 자의식과 아집과 기준의 벽은 두터워져간다. 그래서 자기 반성이 없는 지식은 위험한 것이다.
이 뻔한 이야기가 참 어려운 것은 훈련과 경험이 가져오는 적합한 데이터 베이스라는 것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앞서 경험한 사람 중 열명에 여덟이 '틀렸다'고 말할 때는 그만한 근거가 존재한다. 그 근거가 세련되고, 정치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결론이 도출될 때에는 비록 비약이라고는 하나 사고의 흐름이 있다. 분석해 보면 왜 그런 생각이 나왔는지는 납득이 되는 합리적 사유의 틀이 있다. 단순히 타인이 멍청해서, 생각하기 싫어서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터 베이스는 언제나 뒤집힐 가능성이 있고, 동시에 뒤집히려는 시도들이 있어야만 건강해진다. 천동설은 지동설에 의해 뒤집혀야만 하지 않던가. 천동설을 주장한 학자들이 멍청해서 그랬겠는가. 제반 학문 전체에서 그와 관련된 근거가 쏟아졌던 탓이다. 증거의 양이 역전될 만큼 기술과 사상이 무르익기 전까지 쉽사리 폐기할 수 없을만큼 두터운 의견이었을 것이다.
결국 필요한 건 유연함과 유머가 아닐까 싶다. 나와 정 반대로 부딪히는 사유에 대해서도 호기심을 보이며, 열려있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유연함이 요구되는 것일까. 이왕이면 그 과정이 핏대를 세우며 다투는 것이기 보다는 농담처럼 키득거리는 것일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유연함과 유머도 훈련으로 습득이 가능한 것일까. 만약 타고난 자질의 문제가 아니라면 꼭 습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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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보니 자네가 책을 '무지 많이' 읽으면, 왠만큼 심하게 오독하지 않는 한 독선에 빠질 수 없을거라고 했던 말이 떠오르는군... 중딩때를 돌이켜보면, 모르는 만큼 편견과 독선과 아집에 빠지기 쉽다는 것은 사실인 인 듯한데. 그럼에도 많이 아는 놈들이 딱딱해져버리는 것은, 항상 그 보다 더 많은 진실(!)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유연한 사고의 기본은, '세상은 내가 아는 것 보다 더 많은 진실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가능한 지도. 그러니까, '훈련'으로 측정이 가능한 영역에서는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하는게 그리 틀린 것도 아닐 거라는 생각이.....
경직과 무지는 또 다른 영역인데 매우 꽤 닮아있단 말이지... 사실 경직은 무지에서 나오진 않아. 밥그릇에서 나오지. 권위를 가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취하는 포즈 혹은 습관 같기도 해.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의 메리트를 잃지 않으려면 나를 위협하거나 전복할 것 같은 사고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키울 수 없겠지. 때론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경직되기도 하는 것 같아. 이게 정말 몰라서 독선을 부리는 초딩들과의 차이점이 아닐까.
제게도 참 절실합니다. 유연함과 유머. 정말 타고나지 않고 노력으로 습득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노력하긴 하지만 쉽진 않더라고요.
그러게요. 일종의 타고난 재능일까요?!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일수록 유머와 유연함이 부족한 것 같아요.
그러한 모습들이 싫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저 또한 그렇게 되어가는건 아닐지.
가치 판단 혹은 가치 해석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어서가 아닌가 싶어. 이공계까지 안가더라도 사회학만 되더라도 경직성이 덜한데 말이지. 인문학보다 더 심한 쪽이 신학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가치관 혹은 세계관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 학문일수록 경직도가 커지는 것 같아. 어쩌면 학문 그 자체보다는 개인의 성품일수도 있겠다만은. 앞의 magpie의 답글에서도 썼지만 경직성이 결국 밥그릇 혹은 권위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신학과 인문학의 권위가 그만큼 취약하다는 반증일수도 있겠지.
저 또한 오랫동안 고민했던 문제고 결국 유연성과 유머에 더 무게를 두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더랬어요. 하지만 그것도 그리 만족스럽지 않네요. 이런 문제로 고민하고 이렇게 글로 풀어낼 수 있는 건 빨간그림자님의 지적인 능력과 경직되지 않은 사고의 반증이 아니겠어요. 유연성과 유머가 없으신 것도 아니구요. 이러다가 곧 무적이 되실지도ㅋ
어이쿠, 과분한 칭찬을. 감사합니다.
그런데 요즘 제 스스로도 뻣뻣해져 가는 것을 느끼고 있답니다.
차라리 아예 모르는 분야라면 괜찮은데 내가 잘 알고 있는 분야에서는 몹시 방어적이 된다고 해야할지.
인문학을 공부하는 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사실 저는 꽤나 공부를 잘했던 학생이었답니다.
뭐 흔히 말하는 전도유망한(?) 그런데 어느날 학교를 다니다가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랄까? 대학이라는게, 대학원이라는게, 막 도제식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교수는 가르치는 사람이자 군림하는 사람으로 자리하고자 하고 나는 또 거기에 기대어 뭔가를 굽신거려야
하고 말이죠. 숨이 탁~막히더군요. 그리곤 때려쳤습니다. 그런데 이게 때려쳐도 문제더군요.
여튼 그 학위라는게....그 과정을 거쳐야만 주는 거니 말입니다.
결국 저는 지금 쉬어가는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갈지도 모르고, 새로운 방법을 찾을지도모르지요.
개인적 바람은 후자가 생기길 빕니다.
쉴만큼 쉬면 무언가를 새롭게 하고 싶어지지 않을까요. 혹여 같은 길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맴도는 게 아니라 나선형으로 깊어지는 것일거예요. 참좋다님은 분명 그러실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인생은 장거리 마라톤이니까 더군다나 고령화 사회가 되어가고 있으니까 차근차근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거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