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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한 태백시를 밝히는 불야성, 하이원 리조트.
도로까지 빡빡하게 차가 주차되어 있는 게 인상적이다.
산책 삼아 구경할 수 있는 조그마한 호수 공원도 조성되어 있다.


태백하면 강원랜드, 강원랜드하면 카지노가 떠오른다. 국내 유일의 내국인이 출입 가능한 카지노여서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도박에 흥미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궁금하잖아. 영화에도 많이 나오는데 과연 어떤 분위기일지, 어떻게 생겼을지. 자본주의 사회가 키워내는 악의 꽃이 두 송이가 있는데 하나가 성서비스업이고, 다른 하나가 도박이다. 룸싸롱과 카지노로 불리며 합법화 혹은 고급화의 탈을 쓰고 있는 두 곳. 비윤리성에 주목하며 이런 곳에 아예 얼씬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호기심 많은 나는 '인생에 꼭 한번은 가봐야할 곳'에 이런 곳을 리스트 업 한다.

일단 나 같은 어리버리 관광객을 위한 팁부터. 네비게이션에 따라서 '강원랜드'를 치면 강원랜드 아파트에 도착하는 불상사가 생긴다. '강원랜드 카지노'를 검색해야 제대로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리고 반드시 주민등록증을 챙길 것. 주민등록증이 없으면 입장권을 구입하는 곳 옆에 1대 밖에 없는 주민등록초본 발급기에서 지문 인식을 통해 발급받아야 된다. 지문인식이라 함은 오른손 엄지를 갖다대 기계가 주민등록에 찍혀있는 지문과 일치시키는 것인데 그래픽 대 그래픽으로 일치시키기 때문에 각도에 따라 매우 다르다! 즉, 내가 주민등록에 찍어놓은 엄지의 방향과 각도를 기계 앞에서 시연하느라 여러번 헤매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카지노를 '구경'하는데 따로 신분증이 필요하지 않을거라 생각해 나 같이 안일한 마음으로 놀러와서 지문찍기 실패하는 사람들 때문에 줄이 길다. 입장권은 5천원이며, 알콜을 마신 사람은 출입이 불가하다. 그리고 한번 나오면 재입장이 안된다. 사진촬영이 금지되며, 챙으로 얼굴이 가리는 모자는 쓰면 안된다.


카지노 내부에서 칩은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칩 위조가 많아서 그런 듯)
칩은 기념품으로 가져가도 된다.


입장을 하면 성인오락실에 있는(훨씬 세련되고 고급화된,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똑같은) 슬롯머신들이 꽉 차있는 것을 알게 된다. 만약 게임에 참여하고 싶다면 좌석을 예약해야 한다. 도박 영화에서 많이 봤던 칩스를 바꾸는 건 그냥 테이블에 앉아서 딜러에게 바꿔달라고 하면 된다. 슬롯머신의 경우 현찰을 바로 기계에 넣을 수 있다. 중간중간에 수표를 현찰로 바꿔주는 환전소와 현금인출기, 무료 음료를 제공하는 바가 있다. 정 중앙에는 윗층으로 연결되는 식당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이 식당의 김치찌개는 1만 9천원이며, 해물볶음밥은 2만 3천원인 것을 보고 경악!! 대체 이 가격에도 장사가 된단 말인가. 외국인도 아닌 내국인을 상대로 하는데 이 가격에 밥이 넘어오나. 김밥천국의 메뉴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뭘 먹든 2만원은 가뿐히 넘어가는 것 같다. 식당을 이용해 보진 않았지만 그닥 맛있을 것 같지는 않다. 밖으로 나가면 재입장을 위해 입장권을 또 사야하기 때문에 카지노 죽돌이와 죽순이의 경우 여기에서 끼니를 떼우는 게 아닌가 싶다.

사진보다 훨씬 슬롯머신이 빽빽하게 많다. 여유 공간도 사람 하나 지나갈 정도이다.
테이블과 슬롯머신들의 비율이 1:10은 되어보인다.


의외로 카지노가 딜러가 있는 테이블보다 슬롯머신이 더 많은 곳이라는 사실에 좀 놀랐다. 슬롯머신의 경우 한번 누르는데 십원짜리고 있고, 100원짜리도 있었다. 누르는데 10원?! 오호, 그럼 1000원을 넣어도 놀만큼 놀겠네? 그런데 어느 아주머니가 거기에 몇 만원을 넣고 있었다. 그렇다면 몇번을 눌러야 하는 것인가. '클릭질한다'라는 표현과 꼭 어울릴만큼 계속 버튼을 반복해서 눌러댄다는 뜻이다. 만원에 천번이다. 십만원에 만번. 저걸 만번씩 누른다고 생각해보자. 알바로 돈을 주고 하라고 해도 지루한 일이다. 궁극의 노가다가 아닌가. 몇몇 사람들은 도박광인지 누르는 포즈가 권태롭다. 몇년째 버튼을 누르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스러운 사람들도 있다. 슬롯머신은 순수하게 '운'에 기대는 면이 있다. 머리를 전혀 안쓰고, 내 역량이 어느 정도이냐와 아무런 상관없이 확률로 다가오는 운 그 자체이다. 그 운을 만나기 위해 반복적인 행위를 수도 없이 하는 것이다.


아무리 고급화 되어도 못생긴 깡통인 건 변함없구나.....


나는 개인적으로 게임이나 도박을 전혀 즐기지 않는 편인데(모범생 강박증이라고 해야하나. 게임을 하면 이겨야 할 것 같은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유희'로서는 심각하게 효율이 떨어진다.) 그래도 도박의 핵심에는 유희와 쾌락이 응축되어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매혹되는 것일터. 하지만 내가 발견한 것은 너무나도 순수한 '노동스러운' 작업이어서 사람들이 느끼고자 하는 건 카타르시스인가 싶기도 하다. 한마디로 10년간 금욕하다가 섹스를 했을 때 느끼는 쾌감 같은거?! 10년간 버튼 누르다가 드디어 터졌을때 황홀해지는 것 같은 게 아닐까. 매일매일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놀고, 적당히 슬퍼하며 기뻐하는 것과는 다르게 과도하게 한쪽에 몰려있는 감정 에너지. 그리고 그걸 폭발시키기 위해서 과도하게 치우쳐 돌아가는 일상의 사이클.

행동 심리학자 스키너가 앵무새를 가지고 관찰한 사례를 기억한다. 앵무새가 버튼을 누르면 먹이가 나오게 하는 상자가 있는데 규칙을 가지고 버튼의 먹이가 나오게 만들면(3번 누르면 1번 나오는 식으로) 그 규칙을 해제했을 때 버튼 누르기를 더 빨리 포기한다고 한다. 하지만 먹이가 랜덤으로 나오게 되면 앵무새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먹이가 나올 때까지 누른다는 것이다. 랜덤, 즉 우연적인 행운이 가져오는 위험함이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도취나 흥분, 쾌감이 규칙적일 때보다 훨씬 강하다는 뜻이니 말이다. 먹이의 양 혹은 질의 문제가 아니라 랜덤함이 주는 감정적인 자극이 있는 게 분명하다.


똑같은 우연에 기인하지만 그래도 딜러가 있는 룰렛은 좀 더 재미있다.
조금 더 유희성이 강하고, 조금 더 게임을 즐긴다는 느낌이랄까.


커다란 수레바퀴를 돌려서 멈추는 곳에 배당금이 써있는 빅휠이나 숫자 위에 칩을 걸고 맞추면 배당금을 받는 룰렛 같은 경우도 운이 많이 작용하는 게임이다. 그래도 슬롯머신 보다는 덜 단조롭고, 구경하는 재미도 있는지 테이블을 둘러싼 사람들에게서 곧잘 탄성이 터져나왔다. 블랙잭, 바카라, 포커, 카지노워, 다이사이 등의 게임이 있는데 포커 말고는 룰을 몰라서 대충 분위기만 구경했다. 룰이 존재한다는 것은 머리를 써야한다는 것이고, 순수하게 운에만 기대는 것이 아니라 두뇌 플레이로 인한 즐거움도 존재한다는 것일테다. 카지노에 기대하는 분위기도 사실 이런 쪽이었고. 포커의 경우는 테이블에 대여섯명이 나란히 앉아서 딜러와 함께 게임을 하는 게 좀 신기했다. 반달형의 테이블인데 옆 사람 패가 보이지 않나?! 멋 모르고 포커 테이블을 한바퀴 돌았는데 게임자들이 힐끔힐끔 쳐다봤다. 아악! 죄송해요. 어쩐지 뒤에 구경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고, 조용하다 싶었다.

그 외에 신기한 게 있다면 사람들이 가방을 아무데나 놓는다는 것이다. 기둥 위에도 놓여있고, 바닥에도 놓여있고, 구석에도 놓여있다. 슬롯머신에 핸드폰이나 돈을 놓고 이동하는 경우도 흔하다. 천장 위에 1m 간격으로 빽빽하게 달려있는 감시 카메라 때문인 모양이다. 그나저나 천장에 CCTV가 진짜 많다. 암벽 등반할 때 벽에 붙여놓는 구조물들 마냥 많다고 해야하나. 불법과 속임수를 방지하기 위해서 설치해 놓은 것 같은데 저기 있는 CCTV영상을 다 조합하면 어느 각도, 어느 위치에서도 다 볼 수 있다는 뜻인가 보다.


자, 그럼 여기서 질문 하나.
빨간그림자는 얼마를 잃었을까요?! (땄다는 말은 나오지도 않음;;)
배팅은 백원부터!



그래도 8월이고, 휴가철이어서 관광객들이 조금 섞여있는 분위기여서 즐겁게 구경할만 했다. 관광객이 빠져나가면 골수 중독자만 남게 되고, 그때의 분위기는 훨씬 암울하다고 한다. 조금 더 밝게 웃으면서, 희희낙낙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유희가 돈을 만날 때 변질이 일어난다. 섹스도 그렇고, 게임도 그렇다. 유희를 유희로 즐길 수 없다는 건 다소 우울한 이야기이다. 관광객들의 유입이 보다 많아지고, 조금 덜 심각하게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된다면 카지노의 건전성도 많이 회복될텐데 말이다. 너무 순진한 생각인 것인가. 마이너스적인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곳이니 아무리 세련화 시키고, 건전화 시키려고 해도 본질이 변할 수는 없는 것인가. 인간의 사행성은 본능에 가까워서 통제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사회를 병들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인간이 필요로 하는 욕구라는 점이 딜레마이다. 카지노 밖의 거리에는 전당포가 아주 많았다. 여기에 놀러왔다가 시계 맡기고, 차 맡기고, 집도 저당잡힌 사람들이 제법 있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카지노 로비에 있는 쇼파에 널부러져 자고 있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택시와 트럭들. 다들 '놀러'온 것이지 이곳에 도박을 일 삼으러 오지는 않았을거라 믿고 싶다. 태백시 사람들에게도 양날의 검인 곳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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