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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꿉꿉하고, 일상에 대한 매너리즘이 깊어져서 여행을 가야겠다고 난리를 쳤다. 더위를 무조건 피해야 한다는 생각에 가게 된 것이 동굴 탐험(...이라고 쓰고 관람이라고 읽는다.) 삼척에 환선굴과 대금굴이라는 국내 최고로 훌륭한 동굴이 두개가 있다고 하니 짐을 챙겨서 떠날 수 밖에. 사람들이 바다와 산으로 갈 때 동굴에 처박혀주는 것도 나름 센스있는 일일 것이다.
NOTE. 숙소 팁
주말을 다 보낸 월요일, 휴가 끝물을 택했는데도 삼척까지 5시간쯤 걸렸다. 휴게소에서 두어번 쉬었지만 삼척이 멀긴 멀었다. 속초가 대규모의 휴양지의 느낌이라면 삼척은 그보다는 작은 규모의, 적당히 알려지고 적당히 붐비는 동네같다. 숙소는 고무릉환선마을의 펜션을 택했는데 깔끔하고, 좋다. 굳이 환선굴 바로 앞에 있는 숙소를 잡을 필요없이 고무릉 환선마을을 둘러보는 쪽을 추천한다. http://hwanseon.invil.org/ 에서 숙박업소로 검색하고, 예약하면 된다. 환선목조 펜션에서 묶었는데 지은지 얼마 안된 펜션이어서 그런지 집도 깨끗하고, 인터넷도 잘 되고, 여러모로 만족스러웠다. 펜션에서 묶을 때는 항상 그렇지만 수건을 많이 챙겨가는 것이 좋다. 여차하면 베개 위에 덮고 자는데에도 쓰게 되니까 말이다. 한가지 팁을 더 추가하자면 삼척의 유일한 대형 마트인 홈플러스는 이곳에서 40여분 이상 떨어져있다. 마트를 먼저 들리고 팬션으로 이동하는 동선이 합리적이라 생각된다.
가장 왼쪽이 A동, 중앙이 B동, 오른쪽이 C동
NOTE. 매표소 팁
동굴 내부는 초가을의 날씨이기 때문에 긴팔로 된 얇은 겉옷이 필요하고, 가능하면 후드 형태가 좋다. 동굴 위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동굴 관람이 거의 1시간 반 가량이기 때문에 체온이 떨어진다. 가족 관람객의 경우 아이들을 위하여 커다란 타올을 하나 가져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특히 대금굴은 춥다.
환선굴과 대금굴은 바로 곁에 붙어있는데 대금굴은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을 해야만 한다. 인원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금굴은 흔히 안내문에 모노레일을 타고 이동한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안내 열차를 타고 대금굴을 한바퀴 도는 것으로 오해하게 되는데 그렇지 않다. 동굴 입구까지만 모노레일을 타는 것이고, 이후에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걷는다. 노약자의 경우는 대금굴이 위험할 수 있다. 사진 촬영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환선굴의 경우 모노레일을 이용해서 환선굴에 들어갈지, 아니면 걸어 올라갈지를 관람객이 선택할 수 있는데 등산에 취미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모노레일을 추천한다. 특히 노약자를 동반하는 관람객들이라면 말이다. 환선굴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거.... 만만치 않다. 중간에 후회하며 오도가도 못하는 경우가 있다. 동굴 내부에서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지만 사실 소극적인 금지여서 많이들 찍는다. 적당히 다른 사람에게 민폐가 되지 않는 한도에서 찍으면 된다. 그렇긴 하지만 박쥐가 산다고 하는 곳에서는 찍지 맙시다! 그건 박쥐에 대한 예의다.
환선굴은 동굴의 깊이가 느껴지는 곳이다. 스님 한분이 동굴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고 그대로 신선이 되었다고 해서 이름이 '환선굴(幻仙窟)'이다. 잘 만들어진 수작으로 꼽히는 공포 영화 <디센트>가 떠올랐다. 둘러보다 보면 디센트가 살아도 전혀 이상할 것 없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기도 하다. 알타미르 벽화를 생각하면 동굴은 선사시대의 인류가 선택할 또 하나의 거주지일수 있고, 동굴에서 진화를 거듭한다면 지금과는 매우 다른 모습과 습성을 가진 인간이 존재할 것이다. 이는 매혹적인 상상이기도 하다. 현재 인류는 매우 제한된 공간에 제한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기도 하니까 말이다.(넓은 땅이 있어도 서울에만 몰려있는 걸 봐도 그렇고.....)
동굴 내부에 곳곳에 이름을 붙여놨는데 창의력이 넘치기 때문에 팻말을 보고 웃는 경우가 생긴다. 돌 쪼가리를 보고 이런 상상을 하다니. 누군지는 모르지만 당신을 센스쟁이라 부르겠습니다. 틀림없이 공무원이었을텐데 이름 생각해 내느라고 얼마나 고생했을꼬. 과유불급에 가까운 명칭도 있었지만 사람의 인식이라는 게 참 묘한게 '저렇게 생겼어요!'라고 우기는 말을 듣고 보면 또 그렇게 생긴 것처럼 보인다. 성모 마리아상이니 관음보살상이니 용머리이니.
게다가 신성한 이름들이 붙여진 곳에는 어김없이 던져져 있는 동전들. 아아, 이 동전 던지기 풍습은 동굴 안에서도 유효하구나.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 동굴 벽 성분을 검사하면서 "다량의 구리가 검출되었습니다!"라고 말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타미라 시대 사람들은 돌을 던졌겠지.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그냥 돌이어서 낙석무리 같지만 당시로는 귀중한 주먹도끼였을지도 모른다. 간석기나 뗀석기 같은 거. 혹시 아나. 당시 원시인들이 조개껍질들을 하도 던져대서 현대의 학자들이 발굴하고서 "여기는 과거 바다였습니다!"라고 말하는 건지. 100년 뒤 지질학자들이 구리랑 동을 발견하고선 헛다리 짚을거라니까. 정말 그럴거라니까. 그래서 고고학자와 문화사가들이 중요한 것이다. 과학만으로는 안된다.(이게 웬 삼천포로 빠지는 잡담이.....;;)
예전에 인도에서 박쥐가 많이 살고 있는 동굴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냄새가 고약했다. 그게 동굴 탓인지, 박쥐 탓인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박쥐가 악취의 주범이라고 단정짓고 있다. 그래서 이번 환선굴은 어떨지 궁금했는데 공기가 깨끗하고, 맑다. 동굴 보다는 계곡의 느낌이다. 그래서 여기서 디센트 마냥 살라고 하면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을 게 좀 궁하긴 하겠더라만은. 동굴 안에서 식용으로 먹을 가축을 기르거나(잘 번식하는 박쥐로♥) 빛이 적어도 자랄 수 있는 식물들로 농사를 지어보면 되지 않을까. 암석이라서 흙이 부족하기는 한데.... 등등의 쓸데없지만 묘하게 구체적인 동굴에서의 생존 문제를 고민하면서 둘러보았다.
환선굴은 동굴의 깊이를 볼 수 있다면 대금굴은 동굴을 흘러가는 거대한 폭포를 엿볼 수 있다. 굴의 느낌은 환선굴이 강하고, 청량감은 대금굴이 더 크다. 너무나도 다른 색깔을 가진 동굴이어서 양쪽 모두 만족스러웠다. 대금굴은 커다란 폭포가 통과하는 동굴이다. 관광객은 폭포의 틈바구니를 지나가는 것이다. 덕분에 동굴 온도가 15도 이하여서 햇볕이 미친듯이 쨍쨍거리는 오후 2시쯤 들어가면 카타르시스가 느껴질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서울을 미친듯이 더운데 여기는 초가을 새벽녘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뭔가 대단한 우월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물론, 자만하는 그대, 동굴을 나오게 되면 불볕 지옥을 맛보게 되겠지만.
(위의 사진은 환선굴에서 찍은 것입니다. 대금굴과 유사한 지형의 사진을 대신 올리는 것이니 삼척 문화재 관리팀원분께서는 노여움을 자제하시길 바랍니다;; 사진 안찍었어요. 저는 매우 말을 잘 들어요. ^^)
대금굴은 위에 보이는 사진의 유량과 유속의 10배쯤이라고 해야하나. 그런데 안전장치는 사실 딱 이 수준이다. 좋게 말하면 스릴있고, 나쁘게 말하면 위험하다. 대금굴의 경우는 동굴 엑스포를 하기 위해서 발굴하고, 개발한 곳이어서 자연이 숨겨놓은 곳을 본다는 느낌이 훨씬 강하게 든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대금굴은 물에 잠긴다고 한다. 그러고도 남을 동굴이었고, 안전사고가 많이 걱정되는 곳이기도 하다. 아직까지는 큰 사고가 없었던 모양인데 대금굴을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게 과연 잘하는 짓인가 싶은 마음이 있다. 언젠가는 틀림없이 대형사고가 날 것 같은 위화감이라고 해야할까. 최소한 다리 밑에 안전 그물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이 떨어지면 유속이 너무 빨라 즉사할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가이드가 함께 하고 있고, 통제를 잘하고 있긴 하지만 안전장치들이 조금 더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동행은 공무원 행정 마인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엑스포를 하려는데 환선굴 하나 갖고는 안되겠고, 하나 더 필요하니까 찾아라!"라고 위에서 공문이 내려와서 탐사 전문가들이 목숨 걸고 찾아내고, 중간에 동굴을 뚫어서 개발시켜 놓은 것일거라고. 딱 봐도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서 나는..... 좋게 말하면 객관적인 균형감, 나쁘게 말하면 자기분열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 삼척은 나름 잘 알려져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물 밀듯이 밀려오는 휴양지와는 다르다. 분명 관광자원이 필요했고, 개발이 필요했을 것이다.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나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것을 추구했을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동굴을 찾고, 발굴하고, 개방하여 관광수입을 얻고. 인위적으로 자연 경관을 건드리게 되는 순간 위험은 따라오게 된다. 그것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느냐의 문제일텐데 까딱하면 통제 밖으로 벗어날 수도 있는 곳으로도 보인다. 그렇다면 폐쇄를 해야한단 말인가. 관광객의 한 사람으로서 대금굴을 보아서 좋았다. 내가 태어나서 볼 수 있는 게 몇 안될텐데 그 중 하나에 들어가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나와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는 타인의 기회를 박탈한다는 것은 좋지 못한 게 아닐까.
'개발'이 가진 양면성. 자연을 통제하고, 굴복시키는 힘이기 때문에 언제나 자연을 그냥 그대로 두는 것만 못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인류 역사가 그러한 자연을 복속시키고 길들이려는 시도 하에서 풍요로워졌다고 생각한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의 시도가 나름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한다. 이것들을 '잘못되었다' 혹은 '무모한 짓이다'라고 폄훼하고 싶어하지 않는 내가 분명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위험하다' 혹은 '이게 잘하는 짓일까'라고 회의하는 나 역시 존재한다. 아직까지는 전자의 비중이 더 큰 것을 보면 확실히 나는 개발도산국의 마인드를 지니긴 지닌 모양이다. 아무튼 부디 안전하게, 오래오래 별 탈 없기를 바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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