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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고쳐 쓰기'가 '새로 쓰기' 보다 어려운 것은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어렵게 고생고생해서 썼던 분량을 날려버려야 할 때. 한 문장도 아니고, 한 문단도 아니고 수십여 페이지를 지워야 할 때 오랜 연인을 떠나보내는 것 마냥 아쉬워 옷자락을 붙들고 놓지를 못한다. 이렇게 두부 자르듯이 뭉텅 잘라버려야 하는 것일까. 이 분량 만큼 다시 쓰라고 하면 절대 못 쓸텐데. 아쉽고, 아쉬워서 어떻게든 살리려고 노력하고 그러다보면 글은 점점 지저분해지고, 산으로 가게 된다.
0. 내가 정리벽이 있는 사람이어서 쓰는 글이 재미없는 것 같다. 느낀 점을 쓴다기 보다는 데이터 베이스를 굴린다는 느낌이 강하다. 개인적으로 그런 글을 더 좋아하기도 하고. 문제는 내가 그 분야에 대해서 몸과 마음이 떠났을 경우, 무슨 이유이던 간에 정보의 풀밭에서 멀어졌을 경우 내가 써놓고도 그 건조함에 질린다는 것이다. 가령 이런 것들. 발간된 책들을 열심히 읽고 목록을 열심히 정리한다. -> 스스로 그런 데이터베이스화에 만족한다(책을 읽고 개인적인 감상을 쓰는 것보다 목록화를 더 좋아함) -> 이후 그 분야를 뜬다. 나중에 그 목록을 보면서 '뭐 이런 재미없는 걸?'라고 의아해한다.
0. 한 페이지 읽고 데구르르 굴러다니고, 한 페이지 고치고 청소하고, 한 페이지 읽고 데구르르르. 누워있다가 앉았다가 밖에 나갔다가 들어왔다가 차를 마셨다가 설거지를 했다가 다시 앉았다가. 왜 이리 야금야금 노는 게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식빵 모서리를 사각사각 갉아먹듯이 일하는 시간이라고 천명해 놓고 조금씩 조금씩 갉아먹기. 그러다 미간을 찡그리며 다시 한 페이지 읽고 데구르르. 한쪽은 몹시 엄격해서 빨간펜을 붙들고 '일해야 해!'라고 말하는데 다른 한쪽은 그런 빨간펜 선생님을 슬슬 약올리며 농땡이를 피운다. 딱히 놀고 싶어서 그러는건 아냐. 약올리고 싶을 뿐. 내가 나를 몹시 약올리면서 좋아한다는 거, 좀 웃겨.
0. 글이나 그림 뿐만 아니라 말이나 행동 역시 놀라울 만큼 당사자의 기분과 상태를 반영하고 있어서 힘들고 어두운 사람의 글, 그림, 말 등은 접하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빠진다. 반대로 유쾌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은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난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삶이 팍팍해져서 플러스 에너지를 가진 것들에 끌리게 된다. 누구나 조금씩 지쳐있고, 조금씩 피곤한게 사실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재미있는 글을 쓰려면, 더군다나 그렇게 딱딱한 데이터들을 부담없이 전달하려면 일단 내가 즐겁고, 경쾌해야할터. 그러니까 결론은 어깨에 힘을 빼고, 딩가딩가 놀면서, 썼던 글들을 뭉텅이로 잘라버리자는 것. 긴 머리를 싹둑 자르듯이 그렇게. 새로운 글과 새롭게 연애를 시작하는 마음으로.
0. 너무 정답을 말하려하지 말고, 너무 공부한 티를 내려고 하지 말고. 참고 문헌이 없어도 현재의 자료들만으로도 원하는 분량의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내가 가지고 무미건조함은 대부분 모범생 기질에서 유래한다. 까마귀 마냥 데이터의 양에 집착한다. 어차피 두번 다시 보지도 않을거면서 뭘 그리 모으긴 모아. 오답을 말할까봐 겁이 나서 줄리줄창 남의 책만 뒤적인다. 그러니 느는 건 참고문헌이요, 각주인 것이다. 누군가의 의견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기. 정말이지 내가 학자가 되지 않은 건 나 자신을 위해서도 참 다행이다.
0. 아, 정정. 말은 저렇게 하지만 사실은 공부하기 싫어서 학자의 길을 가지 않은 게 맞다. 나는 내가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정말 제대로 해보니까 안좋아하는 쪽이더라고. '공부하는 척'하는 걸 좋아했던 것이지 정말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던 모양! 사실 논문을 써본다는 경험 자체에 매혹되어 있기도 했다. 그때의 호기심이 일회성 이벤트로 흘러가지 않고, 먼지 탈탈 털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기회를 얻었다는 것도 어찌 보면 행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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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gpie 10/06/28 09: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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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최근 느낀건데, 배우는건 좋아하지만 공부하는 건 좋아하지 않더라고 <-
>> 그때의 호기심이 일회성 이벤트로 흘러가지 않고, 먼지 탈탈 털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기회를 얻었다는 것도 어찌 보면 행운이다.
ㅇㅇ 축하^^ 지금 58p;;까지 읽었는데 재밌더라. 근데 어쩜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남자들이 결혼 안 한 척 한다는 둥, 결혼만 하면 사람이 바뀐 듯이 군다는 둥) 정도가 달라서 그렇지 사실 비슷한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스멀스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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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이 논문이 재미있는 부분은 21p부터 같아.
앞의 20페이지를 간략하고, 보다 말랑말랑하게 갈아엎어야 할 것 같은데 그대 생각은 어떠한감? 그 20페이지의 진입장벽이 너무 커서 독자가 떨어져 나갈 것 같단 말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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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24p 정도까진 몸을 비틀면서 봤는데 거기서부터 58p까진 비교적 빨리 본 듯도. 그렇다면 기존의 연구에 대한 정보전달을 어떻게 요약하느냐가 관건이 되려나?
근데 그럼 글의 목적이 뭐가 되는 것이야? ^^; 현재 내가 본 데까지는 '20~30년대 여성 글쓰기에 대한 동어반복적 비평에 대한 비판'인 것 같은데... 그 논문, 워낙 사전적인(!) 데가 있어서 그런거 좋아하는 나로서는 재미있기는 한데, 그러려면 앞쪽에 서문(이 논문이 씌여진 배경)이 없으면 그런 이해도가 좀 떨어질 것 같은 것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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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한가지 더.
자료 인용할 때 국한문 혼용체가 쓰이는데 그거 번역 안해도 될까?;;
자료 원문에 충실한 건 좋은데 독해에 장애가 되지 않아?
나도 이 논문이 사전이라는데 동의;;
e-book으로 출간되는 거라서 모니터에서 보게 되면 급격하게 집중도가 떨어질 것 같거든.
내가 지금 한글 파일로 읽고 있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어. @.@
논문을 통짜로 올려서는 도무지 독해가 안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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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고어체에 기본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은 독해 가능하다,는 입장인데.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고어 접하기가 쉽지 않아서 - 그런 부분이 이 논문 읽기의 재미 중 하나인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한자에 좀 약한 사람은 국한문혼용체 부분은 보기 어려울 거 같기도 해. 한자에 괄호하고 독음 달아주면 대학생 이상의 교육수준을 가진 사람은 대개 이해할 것 같은데 =ㅅ=; 흠흠.
논문의 핵심이 정확한 사실전달,이라고 한다면 그밖의 글은 대개 '얼마나 재미있느냐(일반적인 독자에게는 이 글에 나오는 한자가 오자인지 여부 보다는 이 글이 어떤 내용이냐가 더 중요할 듯)에 존재가치가 있다고 보여지므로(심지어 보고서 조차: 사실여부 보다 읽기 쉬운게 메인임)
주제를 논증하기 위한 정보제공용 글(예시)은 과감하게 치우고, 그 장의 목적이 당시의 글 보여주기,라면 한자 정도만 독음 달아서 게시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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