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TALK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332)
공연장 마실 (176)
이미지 단상 (20)
바벨의 도서관 (40)
그림자의 여행 트렁크 (4)
오늘의 삽질은 내일의 연륜 (92)
열리지 않는 문 (0)
 CALENDER
<<   2010 Sep   >>
S M T W T F S
2930311234
567891011
12131415161718
19202122232425
262728293012
 
NEW POST
 NEW COMMENT
 TRACBACK
LG Art Center package t..
graycloud
eye | michael kenna - r..
splim의 작은 폴더 속의 바다
밑지는 장사 할 거..
바람의 열두 방향
신개념 야겜을 제..
현실창조공간
프랑스 뮤지컬 로..
REd SHAdow
LINK
 SEARCH
 ARCHIVE

Portrait d'Homme, 1928, Musee Georges Pompidou, Paris



처음 이 그림을 보았을 때 '왠 패션모델 화보가...'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사진이었다면 지나쳤을 것이다. 신사복이라던가 남자 화장품 광고에서 쉽사리 만날 수 있는 구도와 이미지가 아니던가. 시선을 멈추었던 것은 회화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주 매혹적인 화가의 이름 때문이었다. 타마라 드 렘피카. 향수 이름이 곧바로 떠오른다. '타마라'라는 이름을 가진, 아버지를 너무 미워해서 죽이고 싶어 안달하던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유시진의 만화 주인공도 떠오른다. 그림에 대한 정보를 찾다가 이 남자가 화가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림이 그려진 1928년 둘은 이혼한다. 타마라는 양성애자였고, 프리섹스주의자였다. 그림 속에 보이는 섹시하고, 위압적인 이 남자는 아마, 아마 그녀를 감당해내지 못했던 것 같다.

한때 몹시 사랑했던 남자를 놓아주기 위한 그림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여기에 비교하니 프리다 칼로의 피가 철철 흘러나오는 그림은 자의식 과잉에 징징거림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쿨한 건 좋은데 이 정도면 너무 쿨하지 않나. 물론 내가 매혹당하는 부분이 바로 그 지점이지만 말이다. 떠나는 남자를 섹시하게 그린다, 와우. 깊은 어둠을 담은 사내의 눈동자는 어떤 감정을 담고 있는 것일까. 분노, 경멸, 체념, 냉소, 혹은 무관심.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에로틱한 행위이다. 상대방의 곡선을 음미하며 손으로 재현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은 아무래도 못따라가는 것 같다.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을 머릿속으로 한번 재음미하며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시와 소설 역시 그림만큼 관능적이다. 소녀의 머리카락, 뺨, 입술, 목덜미를 묘사하는 언어는 시인의 머릿속에서 대상을 음미하고, 재구성하며 발견된 것이다. 상대방의 손가락을 그릴 때, "너의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이라고 말을 할 때, 머리 속에서 상대의 손가락을 쓰다듬고 있는 것이다. 너, 실제로 존재하는 그 자체가 아니라 내가 욕망하는 너.

타마라가 모델로 남편을 세워놓고 그린 것은 아닐 것이다. 이혼 직전까지 그토록 사이가 좋았다면 그것도 신기한 커플이긴 한데. 변호사였던 남편 테데우스는 그림에서 짐작 가능하듯이 단정하고, 유능하며, 고집이 센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는 농담을 주고 받으며, 서로의 행운을 빌고 웃으며 악수하는 식으로 결혼을 저버리진 않았을 것이다. 차갑게 돌아섰을 것이고, 헤어지는 그 순간에는 적을 만들었다는 느낌마저 전달해 주었을 것이다. 여자가 변덕과 매력을 가지고서도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남자들이 있다. 나는 이 남자가 그런 부류일거라 확신한다. 그렇기 때문에 타마라는 어떤 순간, 찰나의 기억을 토대로 그림을 그렸을거라 추측한다. 얼굴의 윤각선, 눈동자, 짙은 눈썹, 웃음기 없는 표정, 과장된 넓은 어깨, 몸을 감싸는 검은 코트, 하얀 머플러, 검은 모자까지. 하나하나 기억 속에서 재구성했을 것이다. 한때 몹시 사랑했던 사람. 그러나 이제 내가 자신을 버린다는 것 때문에 두번 다시 나를 용납하지 않을 남자. 그 사실을 몹시 슬퍼하면서도 기꺼이 버린다. 달콤한 자기 기만.

이 글의 관련글(트랙백) 주소 http://redshadow.pe.kr/tt/rserver.php?mode=tb&sl=1028

당고 10/07/21 15:35  R X
오오- 그림을 가지고 이렇게 써 내려가는 것, 좋아요- 제가 그림을 가지고 글을 쓰는 걸 잘 못해서인지 누군가 이렇게 읽어주면 그렇게 좋을 수도 없더라고요 :) 타라마 남편에 대한 묘사가 정말 생생한데요 ㅋ
빨간그림자 10/07/22 03:30 X
타마라 그림은 굉장히 많은 말을 건네는 것 같아요.
매우 유혹적인 사념이 담긴 그림들이 아닌가 싶어서 요즘 푸욱~ 빠져있답니다.

이름   비밀번호  
홈페이지     비밀글로등록 


[이전 목록]   [1] ... [10][11][12][13][14][15][16][17][18] ... [332]   [다음 목록]

copyright by 빨간그림자의 자료 창고 all rights reserved. powered by tatter tools. skin by Roh y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