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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일시: 2005년 6월 8일~ 10일
공연장소: LG 아트센터

연출: 토마스 오스터마이어 Thomas Ostermeier
제작: 독일 베를린 샤우뷔네 Schaubuehne Berlin, Germany

- CAST-

토어발트 헬머: Jörg Hartmann (외르크 하르트만)
노라 헬머: Anne Tismer (안네 티스머)
랑크 박사: Lars Eidinger (라르스 아이딩거)
린데: Jenny Schily (제니 쉬일리)
닐스 크록슈타트: Kay Bartholomäus Schulze (카이 바르트홀로모이스 슐체)
유모: Agnes Lampkin (아그네스 람프킨)



1 . 인형과 사랑받는 아내의 아슬아슬한 경계선

공연장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수족관이었다. 근사한 인테리어는 모델 하우스를 보고 있는 듯 했고, 더할 나위없어 보이는 남편과 자식들의 모습을 보면서 1막이 흘러갔다. 1막을 보는 내내 나는 매우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공연의 막이 내린 후 그 불안감의 정체를 곰곰히 되씹어봤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바로 경제적인 자립과 법률의 문제가 이 작품에서 많이 묻히고 있다는 점이었다. 노라가 처음으로 세상에 대해서 인식하게 되는 계기는 바로 법률, 즉 사회 제도 때문이다.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서 서명을 위조해 돈을 빌렸다는 행위가, 아내로서의 의무를 완수하기 위해서 택했던 일이 어째서 법률에 의해 처벌받게 되는지에 대한 혼동이 노라의 각성의 시작이다. 그로 인하여, 노라는 자신이 배워왔던 것들에 대해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고, 더 이상 여성들은 경제적 예속에 묶이지 않는다. 계약과 법이 남편이나 아버지를 통해서만 가능했던 시대가 지나버린 것이다. 덕분에 이 연극에서는 그 부분을 많이 축소하고, 다른 의미를 덧붙인다. 무엇을 덧붙이느냐가 작품의 해석일터인데 문제 의식이 지나치게 얄팍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라와 토어발트는 부유한 중산층 가정을 이루고 있으며, 흔히 말하는 보보스족의 멋스러움을 갖는다. 작품에서는 그것이 '인형의 집'이며 '바비 인형'으로 살아가는 삶이라고 말하지만 설득력은 많이 적은 편이다. 페미니즘이 아무리 여성해방을 기치로 내세우며 남성과 여성을 평등을 주장해도 한쪽에서는 남자의 경제적 능력과 신분에 혹하는 여성들이 존재한다. 은행 지점장이 되었대,라는 말에 혼자 쓴 웃음을 짓는다. 신데렐라를 꿈꾸는 여성들은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와의 결혼을 감행할 것이다. 조금만 비틀어 보아도 1막의 노라와 토어발트의 가정은 '이상적인 젊은 부부'의 모습이 된다. 저렇게 살기를 소망하는 여성들의 숫자가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이 페미니즘의 딜레마가 아니던가.

굉장히 놀라웠던 점은 노라가 자신의 성적 매력을 남편의 돈과 사회활동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녀는 그것을 아주 능숙하게 해내고 있었고, 여기서 아주 영리한 여자들의 교묘한 방법론이 나온다. 갇혀 있는 인형은 어느새 영리하고, 섹시한 아내가 된다. 그래서 되물어보게 되는 것이다. 인형 역할을 강요 받았다고? 정말? 린데의 일자리를 어떻게 마련했더라?

또한, 토어발트가 전제 군주 타입의 남성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막의 그는 더할 나위없이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으로 그려진다. 사랑이란 결코 평면적인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약간 폐쇄적이며, 동시에 살짝 비열하기도 하다. 노라를 자랑스러워하며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토어발트의 모습을 '아내를 인형처럼 전시하려고 한다'로 읽을 수 있는 것은 관점이지 행위의 차원에서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고 싶어하는 감정이 상대방을 주체적인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석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사랑받는 이의 의사표현에 달려있다. 그래서 2막이 중요하고, 법률이 갖는 의미가 조금 더 드러났으면 좋았을 법 했다. 이번 연극을 보면 남편이 참 잘해주다가 중간에 한번 폭발해서 아내를 비열하게 다뤘기 때문에 가정이 박살나버린다는 쪽으로 흘러간다. 이렇게 되면 모든 문제는 '토어발트의 인격'에 맞춰진다. "이 놈이 나쁜 놈이었네, 아무리 화가 나도 아내를 그렇게 대하면 안되지"라는 식으로. 본질적인 문제가 사회 제도의 불평등에 있고, 여성의 경제적 예속에 있다는 것을 간과하게 만든다. 사회의 문제를 개인의 인격 차원으로 축소시켜 버리는 것이다.

노라는 남편을 죽이고 집을 나선다. 구속을 가하는 가정은 일단 깨트리고 볼 일이라는 생각에서였는지, 남편을 완벽하게 마음에서 내쫓아버리겠다는 뜻인지는 알 수 없다. 정말로 모든 문제가 남편 때문이었던가? 남편을 죽이면 그녀는 자유로워지는 것인가? 급진적 페미니즘이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여성 평등을 주장하다 못해 여성 우월주의가 되고, 남성을 타도 혹은 격파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 아니었던가. 강렬한 실험성과 선언적인 결말을 위하여 택한 방식이라는 것은 알지만 충격을 위하여 메세지를 엎어버린 느낌마저 들었다. 토어발트를 향해 노라의 대사는 많이 삭제되어 "당신은 내가 생각하던 (이상적인) 남자가 아니었어요"라는 칭얼거림으로만 다가온다. 이혼률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이 시대엔 가정을 벗어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매를 맞으면서도 남편과 이혼하지 못하는 아내와 신혼여행에 돌아오는 길에 이혼할 수 있는 아내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1879년과 2005년의 시간적 변화가 단순히 여성이 과격해진 것이라면 너무 슬프지 않은가.



2 . 히스테리컬한 연기, 분열되는 자아

이 연극의 가장 인상적인 점은 '히스테리컬한 톤'의 연기들이었다. 노라가 우편함에 가려는 남편을 제지하기 위해 추었던 춤은 말 그대로 '목숨 걸고 추는 춤'의 느낌을 주었고, 피를 흘리며 서 있는 모습은 정신 분열증의 느낌 마저 자아냈다. 토어발트가 크록슈타트의 협박이 담긴 편지를 읽고서 일으키는 히스테리는 또 어떠한가. 그는 잠깐 퓨즈가 나간 것처럼 보이고, 손에 칼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아내를 난도질할 것만 같다. 유들유들한 랑크 박사는 친구의 아내를 아무렇지도 않게 더듬고, 술에 취해서 토어발트와 노라에게 찾아왔을 때 이들 셋은 미묘한 감정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연기를 펼친다. 크록슈타트는 악당 역을 하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노라를 놀라게 하고, 린데의 화해 요청에 아이처럼 품에 안긴다. 페미니즘이라는 상표를 지우고, 편지 하나에 각각 분열하는 인간 군상을 다루는 심리극으로 본다면 오히려 작품의 구조가 새롭게 보인다. 난데없이 총을 들고 와서 남편을 죽이고, 오갈데 없이 우두커니 집 밖에 쪼그려 앉아있는 노라의 행위마저 이해가 간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과 급변하는 감정선은 1막에서 보여주었던 여유롭고, 평안한 분위기를 불안하게 만든다. 조금 더 호흡을 갖고, 이러한 분열되는 감정들을 포착했더라면 작품이 훨씬 흥미로워졌으리라고 생각된다. 아름답고, 행복하게 보이는 가정 속에 묻혀있는 신경증적 요소들이 어느 순간 폭발하여 자제와 배려와 이성을 뛰어넘는 순간을 boom하고 터트린다. 토어발트는 이중인격으로 돌변한 것 마냥 갑작스레 노라에게 침을 뱉고, 랑크 박사는 남편 앞에서 노라에게 키스를 하며, 노라는 돌아서서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라고 선언한다. 페미니즘 코드로 읽기에는 너무 화가 나는 작품이고, 오히려 신경증적인 불안감이..... 2000년대의 가정이 갖고 있는, 안정되지 못하고 언제든 깨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내포한 현대판 '인형의 집'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물어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2005년의 노라는 왜 집을 나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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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그림자 05/06/20 06:41  R X
아르가디니양, 캐스팅된 배우 이름 좀 읽어주세요.

아르가디니 05/06/20 20:39  R X
Jörg Hartmann (외르크 하르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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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rs Eidinger (라르스 아이딩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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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y Bartholomäus Schulze (카이 바르트홀로모이스 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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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그림자 05/06/21 18:32  R X
아르가디니/ 땡스~!!

08/03/20 14:50  R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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