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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일시: 2007년 6월 21일~ 7월 15일
공연장소: 대학로 성균소극장
작: 노현지
연출: 지영
출연: 조영환
기타: 탁효원
베이스: 이수용
드럼: 조기도
http://club.cyworld.com/punkrocker
♬ 걱정마, 어차피 잘 안 될거야
(song by 조영환)
후회 따윈 다 필요없어
후회 따윈 난 믿지 않아
걱정마, 어차피 잘 안 될거야.
걱정할 시간도 내겐 없는걸.
흘러간 과거를 돌이켜 봐도
지금 와서 머리 아프게 걱정해 봐도
지나는 건 시간일 뿐
안되는 건 안되갈 뿐
걱정마, 어차피 잘 안 될거야.
내일도 오늘처럼
모레도 내일처럼
어제도 모레처럼
그냥 날리는 거야.
주저없이 형편없이
두려울 건 내겐 없지.
그냥 이렇게 살아가는 거야.
1 . 펑크락 뮤지컬
2006년에 초연된 공연이 좋은 반응을 얻어 2007년에 재공연되었다고 하네요. 비록 공연이 끝났지만 원래 돌고 도는 법이니 재공연이 될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 리뷰는 2007년에 접한 <어느 락커의 바지 속 고백>에 대한 비망록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재공연이 된다면 또 변하는 부분이 생길테고 이때 공연이 이후와 같을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을 기록한다는 것은 의의가 있는 일일테니까요.
공연장에 들어간 순간 홍대 앞 클럽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홍대 클럽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귀가 울릴 정도로 멍멍한 스피커 음향이 적당한 수준으로 줄어들고, 담배 연기가 나지 않는다는 것, 관객석의 슬램이 없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클럽 문화와 연극적인 모놀로그를 접목한 시도는 꽤 성공적이고요. 홍대 문화에 익숙한 사람과 대학로 문화에 익숙한 사람 양쪽 모두 별 다른 거부감 없이 이 공연을 즐길 수 있다고 보이니까요. 게다가 노랫말과 멜로디가 굉장히 깜찍해서 공연 내내 즐겁습니다. 노래가 따로 겉도는 것이 아니라 모놀로그를 기반으로 한 서사의 힘과 맞물려서 정서적 깊이를 더합니다. 자유와 저항으로 표현되는 펑크 정신에 대한 이야기들, 합성 패러디로 스크린에 시각적인 펑크를 표현한다던가 관객의 참여를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부분들이 좋더군요.
단지, 관객의 반응이 굉장히 수동적인 편인데 클럽 문화에 얼마나 익숙한가에 따라서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습니다. 홍대 클럽 부근에서 공연이 되었다면 호응이 보다 열렬하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클럽에 가길 좋아하는 친구 여럿이 모여서 신나게 놀기 좋은 공연입니다. 혼자서는 뻘쭘하니깐 같이 열광해줄 친구를 꼭 끌고 가는 것이 필수이고요.
2 . 다른 관점, 다른 이야기
이 공연이 완성도와 재미가 뛰어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 지점에 대해서 의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고요. 이 공연을 너무나도 즐겁게 봤고, 펑크 락커 조영환이라는 인물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게 되었다는 점을 고백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이어지는 제 생각은 공연에 대한 반론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현상에 대한 다른 생각이라고 보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는 게 아닌 프리즘처럼 서로 다른 관점인 것이죠.
제목이 <어느 락커의 바지 속 고백>이라는데서 짐작하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공연은 예전에 공중파에서 펑크 그룹이 성기 노출을 했던 사건을 모티프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 사건 이후의 이야기인 셈이죠. 방송이 중단되고, 언론이 떠들썩하고, 클럽이 문 닫고, 밴드가 해체된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2006년작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보다 날이 선 항의를 다루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07년 공연에서는 그보다는 펑크 락커의 지향점이라던가, 락커 조영환의 일상사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제목과 중간중간 언급되는 회상으로의 연결 고리만 주어지는 셈입니다. 개인적으로 2006년 공연을 봤더라면 보고 있기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왜냐하면, 이 작품에서는 펑크가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이고, 전복의 행위이기 때문에 그 맥락에서 바지 벗는 사건이 일어났다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왜 벗으면 안되느냐'라고 말을 합니다. 크게 찬반이 갈릴 수 있는 부분이지만 저는 그 행위 자체가 제재를 받은 것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발신자의 메세지의 의도는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수신자가 그것을 하나의 폭력으로 받아들인 사건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성기 노출 사건 당시에 공연장에 있던 여고생들이 당황하고 놀라 울고불며 하는 장면이 잡혔는데 순간 머리에 피가 거꾸로 솟을 만큼 화가 나더군요. context의 맥락에서 이건 성폭력으로도 읽힙니다.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과 전복이라고 말하는 실험적인 예술이 여성에 대해 굉장한 폭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에 놀라는 경우가 있습니다. 언젠가 지인분이 남성의 성기를 드릴로 표현한 영화에 대해 언급하면서 분노를 표현하셨던 적이 있는데 저 역시 사고의 '발랄함'이나' 전위'적인 것보다는 불쾌함을 느낍니다. 그 사고 맥락에 깔려있는 폭력과 무지 때문입니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라는 말이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폭력은 피해자가 규정하는 것이지 가해자가 규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특정 집단이 그러한 표현 방식에 대해 위화감을 느끼고, 무서워한다면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예술가 본인은 기존 질서라는 권력 체제를 공격한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그보다 약한 존재인 여성의 두려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면 자신이 비판하고자 했던 기존 권력과 뭐가 그리 다를까요.
락커 조영환은 대한민국 중년 아저씨들이 룸싸롱에 화끈하게 돈 뿌리는 것을 비꼬면서 펑크 밴드들이 퇴폐 클럽이라며 단속하는 것에 대해 비아냥거리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둘은 맥락이 다릅니다. 블랙리스트를 짜서 단속하는 것은 말 그대로 우스꽝스러운 제스쳐에 불과한 일이었습니다. 그 너머의 문제는 일반 시민들이 그들의 퍼포먼스를 지지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에 대해 고민해 보려는 의지는 읽히지 않습니다. '편견'이라는 굉장히 단순한 이분법을 도입하고 있을 뿐이고요. 검열과 단속에 대해 두둔하려는게 아니라 명제 자체의 모순에 대한 지적입니다. 자유와 저항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놀라울만큼 둔감하다는 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건 하나의 사건에 대한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이 공연이 전달하고자 하는 진정한 메세지를 제가 못읽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조금 더 엄정한 칼날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것이죠. 저 같은 관점을 가지고 공중파 성기 노출 퍼포먼스를 보았던 사람들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무리를 모두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존재로 묘사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심지어는 락커 조영환이 "아무도 왜 벗으면 안되는지를 설명해주지 않았다"라는 말을 듣고 "그 당시 우리가 얼마나 누누이 설명했는데요. ㅠ.ㅠ"라면서 가슴을 쳐야했으니까요. 폭력일수도 있다는 것. 락커 조영환이 느끼는 세상의 폭압성을, 락커 조영환이 했던 행동에 의해서 느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정말로 소통이 문제가 되는 시대입니다. 편견없이 서로의 모습을 알아보고, 서로의 진심을 알아보기가 힘든 시대입니다. 어느 락커가 세상과 소통이 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가슴 아파했듯이 세상 어디에서는 그 락커와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가슴 아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줄 날이 있을까요.
3 .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량한, 사랑스러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락커 조영환은 사랑스러운 인물입니다. 선량한 눈망울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청년입니다. 앞 장에서 비록 이 인물이 가지는 폭력에 대한 둔감함과 무지에 대해 비판을 했지만, 조영환은 길 가는 사람에게 시비조차 걸지 못할 친구일거라 생각해요.
락커 조영환은 20대를 펑크락과 함께 보낸 아티스트입니다. 벌써 10년째 밴드 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니 주변의 눈총이 따갑고요. 이 캐릭터는 좋아하는 것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젊은 날을 예술 문화계에 바친 가난한 아티스트들에 대한 헌화이기도 합니다. 순수함과 절망, 열정과 피곤, 씁쓸함과 초연이 뒤섞여 있는 매력적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가 열정을 말하면서도 그 너머에 있는 씁쓸함을 이야기할 때면 작품의 정서적 울림이 커집니다. 자학을 하거나,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견뎌내는 방식으로 극복하고 있는 것을 볼 때면 박수를 보내고 싶어집니다. <걱정마, 잘 안될거야> 라는 말로 견뎌내는 삶의 패러독스.
아래의 곡은, 구역예배가 있다고 서른이 다 되어가는 아들을 깨워 내보내자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엄마가 "이제 다 끝났다. 집으로 돌아오렴"이라고 보낸 문자를 받고 부르는 노래입니다. 교회 아주머니들에게 펑크밴드를 하는 반 백수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을 짐작하는 락커 조용한은 노래를 부릅니다.
♬ 최고의 아들
(song by 조영환)
이 세상에 많고 많은 직업과 주어진 내 삶의 길 위에
하필 왜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살고 싶냐고.
못 배워 그런 것도 아니고
못 생긴 얼굴도 난 아닌데
우리 엄마에게는 내가 세상 최고의 미남인데.
달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갈수록
엄마의 한숨과 한탄은 늘어만 가지
엄마, My mother 우리 어머니
오늘도 나는 그냥 웃어요.
이 세상에 많고 많은 직업과 주어진 내 삶의 길 위에
하필 왜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살고 싶냐고.
못 배워 그런 것도 아니고
못 생긴 얼굴도 난 아닌데
우리 엄마에게는 내가 세상 최고의 미남인데.
Special Thanks
OST를 팔아줘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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