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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일시: 2007년 7월 8일~ 8월 26일
공연장소: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제작: 신시뮤지컬 컴퍼니
프로듀서: 박명성

원작: 차범석
작사, 작곡: 에릭 울프슨(Eric Woolfson)
극본: 아리엘 도르프만(Ariel Dorfman)
연출: 폴 게링턴(Paul Garrington)
세트, 의상 디자이너: 닉키 셔우(Nicky Shaw)
안무: 크리스 벨리(Chris Bailey)

- CAST -

마마 아스터: 김성녀
신다: 배해선
나쉬탈라: 김보경
솔로몬: 김성록
타마르 노인: 서희승
대령, 대위: 성기윤

http://www.dancingshadows.co.kr/



신시 뮤지컬컴퍼니의 <댄싱 섀도우>는 2007년 창작뮤지컬의 야심작입니다. 빈약한 넘버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외국 작곡가에게 의뢰를 하고, 연출을 비롯한 주요 스태프들 역시 외국 유명 아티스트들에게 선별해서 맡겼습니다. 창작 뮤지컬의 한계를 돌파하고자 하는 또 다른 시도이기도 했지요. 정말 의외인 것은 원작으로 선택한 작품이 극히 한국적인 정서와 내용을 바탕으로 하는 차범석 선생의 <산불>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이 원작은 오프 브로드웨이식의 실험적 뮤지컬이라면 모를까 대형 뮤지컬에 맞는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지만 의외의 변수라는 것은 늘 존재하는 법. 각색을 하는 사람을 따로 초빙했으니 다른 식의 작품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죠. 뚜껑을 열어본 결과, 다양한 문제들이 튀어 나왔습니다.

1 . 원작 설정과의 충돌

작사, 작곡을 하는 에릭 울프슨과 극본을 새로 쓴 아리엘 도르프만은 서로 다르게 작품을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니면 두 사람은 나름대로 합의를 봤는데 이걸 한글로 번안하는 과정에 다시 문제가 생겼던가요. 즉, 캐릭터가 넘버를 부를 때 하는 말과 대사를 칠 때 하는 말이 다릅니다. 공연을 보았던 지인은 <동문서답을 한다>는 표현을 쓰더군요. 나쉬탈타가 솔로몬에게 "당신은 왜 이러고 있는 거죠? 내가 당신을 도와주어야 하는 이유를 말해봐요. 나를 설득해 봐요"라고 말하면 솔로몬은 "나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이 험한 길을 선택하지 않겠어~"라는 넘버를 부르는 것입니다. 넘버 자체는 너무 훌륭하고, 절절한데 맥락이 안맞습니다. 아래의 영상을 볼까요.




♬ If I could write a book of life again (song by 신성록)


나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이 험한 길 다신 선택하진 않겠어
이 고통 사라지고 평화가 전쟁을 끝내겠지
싸워야 할 어떤 이유도 없겠지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산다면 이렇게 살래
모든 사람 형제 되어 손에 손 잡고 다 함께
평화로운 세상 속에 친구 되어 사는 것

나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모두의 뜻이 하나 되리라
모든 사람들 함께 손 잡고 친구 되리
나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선율도 예쁘고, 노랫말도 예쁩니다. 심지어 배우의 기량도 출중합니다. 단지 저 장면이 극적 맥락에서 설명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따로 놀게 됩니다. 서사의 흐름 위에서 넘버가 나오면 관객이 감정 이입을 하게 되는데 서사와 따로 노니깐 넘버가 힘을 얻지 못합니다. 이런 식으로 미묘하게 대사와 넘버의 내용이 어긋납니다.

게다가 뮤지컬 대본이 원작의 설정과 크게 충돌합니다. 원작의 경우 6.25 라는 한국적인 특수 상황을 설정해 두고, 여자들만 모여있는 어느 마을에서 일어나게 되는 비극적인 일을 묘사합니다. 애욕과 탐욕이라는 인간의 바닥이 보이는 상황이 조성됩니다. <산불>은 캐릭터가 이끌어가는 연극이라기 보다는 배경이 이끌어가는 연극입니다. 6.25라는 역사적 사건이 가진 특수성과 국군과 인민군의 대치로 인해서 여자들만 남은 어떤 마을의 특수성입니다. 배경이 가진 힘이 강력하죠. 인민군이 후퇴하기 시작하는 무렵 이 마을로 인민군 한 명이 숨어들게 되고, 이로 인해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희곡을 읽지 않아도, 앞에서 말한 배경을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어지간한 관객들은 어떤 일들이 생길지 짐작을 하고, 긴장감을 부여받게 됩니다.

이렇게 한국적인 특수성을 깔고 있는 연극을 무국적의 판타지로 바꾸다 보니 무리가 생깁니다. 특히 2막은 어이상실 코메디에 가깝습니다. 원작에서 시대적 배경을 지우게 되다보니 '여자들만 남게 되는 전쟁상황'이라는 것을 묘사하기가 힘들어지고, 국군의 초토화 작전으로 인해 죽게 되는 남자 주인공을 죽일 방법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열심히 싸우던 달군과 해군이 연합하더니 외국 군대의 자원이 되지 말라고 숲을 불태우는 이상야릇한 전개로 진행됩니다.(중동 국가가 석유 때문에 외세의 위협을 받게 되니 유전을 불 살라 버린다는 것인데....;;) 원작대로 숲을 태우긴 태워야겠는데 태울 이유가 없다보니 억지로 짜낸 느낌이 들어 안스러울 정도더군요. 무엇보다 달군과 해군은 대체 왜 싸우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숲까지 불 태우는 것을 보면 숲이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고, '도시'라는 다른 공간이 설정되는 것 보면 숲에서 살고 있는 토템에 기반을 둔 원시 부족같은 느낌마저 주는데 말이죠.



2 . 서사에서 빗겨 나가 있는 주인공




♬ Dancing with my shadows (song by 김보경)


나무들
(안들림) 은신처도, 내 몸이 쉴 곳도 없어
들려오던 시계 소리, 적막한 밤에 사라져
(안들림) 홀로 남아 난 갑자기

나쉬탈타
그림자와 춤을 추네, 꿈 속에서
그림자와 춤을 추네, 내 꿈 속에서
회오리 치는 시냇물 처럼
바람 속에 넘어가는 책장 처럼
그림자와 춤을 추네, 무대 위에서

그럴 듯한 가면 쓰고 우스운 게임 해볼까
시간 조차 없는 이 곳, 시작도 끝도 희미해
눈을 감고 열을 세면 음악 소리 또 들려와

그림자와 춤을 추네, 무대 위에서
그림자와 춤을 추네, 허공 속에서
내 품 속에서 파도를 타네
마술 양단자를 타는 것처럼
그림자와 춤을 추네, 어둠 속에서




가장 대표적인 넘버로 꼽히는 <그림자와 춤을>의 분위기는 몽환적이고, 신비적입니다. 나무의 정령이자 신체로 나무의 흔들림을 묘사하는 배우들의 섬세한 움직임과 무대가 만나서 압도적인 숲의 느낌을 전달해 주기도 합니다. 나무의 정령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나쉬탈타만이 나무를 벨 수 있는데 그녀는 수호자이자 나무의 피를 흘리게 하는 나무꾼입니다. 나무와 소통을 할 수 있기에 도끼를 들어 나무를 찍게 되는 딜레마가 나쉬탈타에게 주어져 있는 것이죠. 이 넘버는 그녀가 나무를 베기 위해서 부르는 진혼곡입니다. 환상적인 분위기와 진혼곡 특유의 음울함이 맞물려 있는 넘버라고 생각합니다. 이 넘버만으로는 극의 분위기와 컨셉이 잡히는데 이 넘버의 분위기가 극 전체의 흐름과 어울리질 못합니다. 오히려 튕겨 나가는 것 같아요.

나쉬탈타라는 인물이 그다지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히려 나쉬탈타와 대적하는 인물들에게 감정 이입이 되고, 공감이 될 정도예요. 이 인물 자체가 그다지 매력이 없습니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전쟁 한 가운데서 나무 한 그루 베어오기가 힘들다고 절규하는 인물이라니. 나쉬탈타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짜증스러운 느낌이 들거든요. 게다가 "아무도 이 고통을 몰라! 나 혼자만 나무의 비명소리를 들어"라는 식으로 자기 상처를 과시하는 느낌이 들 때면 영락없는 사춘기의 소녀처럼 보입니다. 그에 비해 '살아남기 위해서' 바둥거리는 인물들의 절실함이 훨씬 커보입니다. 즉, 작품이 의도하는 주인공과 관객이 정서적으로 이입하게 되는 인물이 다릅니다.

솔로몬과 나쉬탈타라는 두 인물의 넘버가 비슷한 톤이라는 점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두 사람 모두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로 침잠합니다. 솔로몬의 경우는 내세를 기원하고, 나쉬탈타는 그림자와 춤을 추죠.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기 위해 전쟁을 거부하며 자폐적으로 내부의 세계에 매달리는 인물을 설정하는 게 효과적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두 사람은 딱히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입고 있지도 않은 것 같아요. 한 사람은 군대에서 도망갔고, 한 사람의 숲의 수호자라고 해서 마을 사람들 심지어 군인들도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이 두 사람이 전쟁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은 '기분 나쁘다' 정도인 것처럼 느껴져요. 물론, 이 극 내에서 전쟁이 얄팍하고, 우스꽝스럽게 다뤄지긴 하지만요. 저로서는 이런 접근 방식이 주인공의 매력도 반감시키고, 반전(反戰) 메세지도 허황되게 만들지 않았나 싶어요.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까. 내전을 겪는 평범한 동네 아낙과 적군조차 침범하지 못하는 성전 안에 있는 사제의 차이라고 할까요. 전자의 경우는 징글징글하게 고생할게 눈에 훤한데 후자의 경우는 딱히 염려도 되지 않고, 걱정도 되지 않거든요.



3 . 그러나, 아름다운 무대

무대의 사용은 환상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클라이막스에 숲을 다 태우는 부분은 시각적으로 압도적인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고요. 극의 내용과 맞물려서 숲이 탈 만한 명확한 이유가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 싶었지만요. 내용적인 측면을 완벽하게 제외하고 본다면 산불의 무대는 참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조명도 그렇고요.

TITLE: 산불 나기 전


TITLE: 산불 나는 중


TITLE: 산불 난 후



음악이나 안무도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하고요. 단지, 솔로몬- 나쉬탈타, 솔로몬-신다의 러브 라인을 탱고로 표현하는 것은 너무 노골적이어서 오히려 우스꽝스러운 느낌을 주더군요. 대형 무대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나무들 사이에서 춤 추는 두 사람. 게다가 딱히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정욕에 끌려서 섹스를 하는 건데 춤의 동작이 반복되기 때문에 나쉬탈타, 신다의 차이가 모호해 집니다. 정확히 말하면 솔로몬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초반부에는 생각을 감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후반부로 가면 갈 수록 생각이 아예 없어 보입니다.

클로즈업일 때는 나름 분위기가 나는데....


오페라 극장의 넓은 무대를 활보하는 두 커플을 보자니 휑~ 해 보이는 게....
게다가 생각보다 춤 장면도 길고, 2~3층에서는 동작도 잘 안 보이고, 음음.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나올 수 있는 세계적인 뮤지컬은 결국 한국전쟁과 분단상황을 다룬 작품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한국의 특수성이기 때문이죠. <댄싱 섀도우>가 세계 무대를 겨냥하는 작품이었던 것이라면 오히려 이렇게 무국적 판타지로 나가지 말고, <산불>의 6.25 배경을 끌고 왔어야 했다고 보입니다. 넘버 자체는 예쁘기 때문에 극본만 갈아 엎으면 보다 나은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더군요. 물론 시대 배경이 바뀌게 되면 공연 전반이 바뀌어 버리겠지만 그것이 이 작품을 살리는 최선의 방안일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2막은 원작과의 충돌을 견디지 못해 서사가 찢기어 부조리극으로 탈피해 버리더군요.

무국적 판타지 컨셉을 버릴 수 없다면, 영혼이 살고 있는 숲이라는 환상적 공간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다면 과감하게 원작을 버리라고 권하고 싶었습니다. 둘은 같이 갈 수 없는 작품으로 보입니다. 공연을 본 관객들이 포스터와 공연의 느낌에 대한 괴리감을 성토했는데, 포스터는 연극과는 굉장히 잘 어울립니다. 즉, 포스터를 그리신 이만익 화백께선 원작의 분위기를 염두에 두신 거였던 거죠. 같은 희곡을 바탕으로 했다는 연극과 뮤지컬이 그림 하나로도 통일이 되지 않는 셈입니다. 이건 정말 문제가 크다고 보입니다. 다시 재연된다면, 원작을 버리던가, 아니면 보다 원작에 충실하던가 결정을 내려야할 것 같습니다.

여하튼 창작뮤지컬의 또 하나의 실험. 이에 참여하셨던 모든 분들께 수고하셨다는 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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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음악으로써의 음악은 나쁘지 않았던 것 같은데 확실히 뮤지컬 넘버가 없는 것과 어느 정도의 움직임을 기대했는데 그런 부분들이 약했던 것은 아쉬운 부분이었어요. 오랜 기간 꽤 큰 돈을 들인 작품이어서 그런 것이었는지 아님 대형창작뮤지컬에 대한 기대때문에 그랬는지는 몰라도 말이죠.

저는 자꾸 보면서 '나우시카+모모노케 히메'가 생각나더라구요. 하야오 할아버지가 보셨으면 좋아하셨을지도^^
빨간그림자 07/09/19 10:02 X
<나우시카>의 느낌과 비슷하다는 지적, 어느 정도는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전 <나우시카>쪽이 훨씬 여자 주인공이 매력있다고 생각하지만요. <댄싱 쉐도우>의 나쉬탈타는 잘 모르겠어요. 살짝 반감이 드는 쪽이라는 게 맞다고 해야겠네요. 오히려 마마에게 감정 이입이 되더라고요.

kats 07/09/08 02:08  R X
부조리 뮤지컬이라니... 획기적 실험극인 셈이로군요. ㅠㅠ
빨간그림자 07/09/19 10:03 X
초연 뮤지컬에서 종종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장르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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