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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일시: 2007년 9월15일~10월14일
공연 장소: LG 아트센터
제작: 뮤지컬 헤븐
작사, 작곡: 스티븐 손드하임
연출: 아드리안 오스몬드

- CAST -

스위니 토드: 류정한
러빗 부인: 박해미
안소니: 이동명
조안나: 유에스더
토비아스: 홍광호
터핀 판사: 김봉환
비틀 경사: 박완
피렐리: 정현철
거지 여자: 임문희






1 . 배우에 대한 잡담

뮤지컬 헤븐의 시리즈들(쓰릴미, 필로우맨, 스위니토드)를 접하면서 2007년 공연계의 유행은 심리 스릴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쨌든 굉장히 화려한 캐스팅이네요. 류정한, 박해미, 임태경이라는 세 배우만으로도 흥행이 어느 정도는 보장된 공연이 아니었나 싶고요. 저는 안소니 역을 이동명씨로 봤는데 연기나 노래도 안정된 편이었고, 꽤 만족스러웠습니다. 모든 더블 캐스팅이 그러하듯 보지 못한 캐스팅에 대한 호기심은 존재하기 마련이지만요. 박해미씨의 경우는 <맘마미아> 이후에 오랜만에 무대에서 뵙는 것이었는데 <맘마미아>에서 보여주었던 파워풀함 보다는 상대적으로 덜한 느낌이었습니다. 배우의 역량이라기 보다는 노래와 스타일의 문제였던 것 같지만요. <맘마미아>에서의 박해미씨의 연기와 노래를 매우 좋아하고, 높이 평가하기 때문에 스위니 토드의 겉도는 느낌이 배우의 역량이라기 보다는 작품 색깔의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류정한씨의 경우도 <지킬 앤 하이드>에서의 하이드의 느낌이 오버랩 되는 부분이 있었고요.

배우들의 역량은 참 뛰어나고, 공연도 공을 들인 흔적이 많이 나고, 무대 세트도 압도적이고, 앙상블도 괜찮고, 조연들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아주 미묘하게 무언가가 어긋나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몇가지 아쉬운 부분은 분명 존재했습니다. 가령, 무대 장치인 의자에 문제가 있어서 그 의자에 신경을 쓰다보니 배우가 연기에 몰입을 하지 못하더군요. 무대 사고는 없었는데 관객석으로 배우가 지금 무대 장치에 대해 염려하고 있고, 거기에 신경 쓰고 있다는 게 전해지거든요. 코러스의 역량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주연 배우들의 기량에도 불구하고 노랫말이 부분적으로 뭉개지고, 씹히는 부분들이 있기도 했고요. 조안나와 안소니가 도망갈 결심을 할 때 터핀 판사와 비틀 경사가 집으로 들어오게 되는 동선은 분명 잘못 짜여진 것이기도 했고요. 터핀 판사 역을 하신 김봉환씨가 이중성을 가진 징그러운 늙은이를 연기하기엔 너무 젊잖고, 젠틀한 분이어서 배역와 배우와의 괴리가 생기는 넘버도 있었고요.

하지만 이러한 소소한 부분들은 다른 작품에서도 존재 했었으니 그것만으로 제가 이 작품에 대해서 느끼는 어정쩡한 느낌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게 뭘까. 그게 뭘까. 한참을 들여다 봐도 잘 모르겠더군요. 손드하임은 "이 작품을 보고 주인공을 미워하긴 힘들 것이다"라고 장담했다고 하는데 분명 주인공을 미워하기는 힘들지만 그렇다고 사랑하기도 힘든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연민을 느끼기엔 2%가 부족하고, 매력을 느끼기엔 20%가 부족합니다. 이걸 단순히 '취향이 아니다'라고 단언하기엔 보다 복잡한 층위인 것 같고요. 어쩌면 그건 조금 더 본질적인 이야기, 작품 내부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가야 할 부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 . 복수와 정의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빼앗기고 식민지 대륙으로 유배를 당했던 한 남자가 이름을 바꾸고, 복수를 계획한 채 영국으로 돌아옵니다. 자신을 감옥으로 보냈던 판사가 아내를 죽게 하고, 딸을 양녀로 삼아 키우고 있다는 말을 듣고 고는 '스위니 토드'로 이름을 바꾼 후 복수를 시작합니다. 그건 단순히 판사 한 개인만을 향한 복수가 아니라 썩어빠진 세상을 향한 복수입니다. 코메디와 잔혹한 살인이 연결되고, 세상에 대한 풍자와 비틀린 성격에 의한 파국이 함께 어우러지는 작품이 뮤지컬 <스위니 토드> 입니다.



제가 이 작품에서 주목한 것은 사적 복수를 다루는 방식에 있습니다. 이건 작품을 내재적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외재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에 가깝습니다. 작품 내부의 등장인물의 움직임과 대사를 보는 게 아니라 주제적 측면과 커다란 구조를 보는 것이니까요. 비교하자면,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은 운명의 덫에 걸린 한 고귀한 남자의 이야기지만 외재적으로 보자면 그리스 공동체가 신에게 바치는 희생 제의입니다. 인간 중의 가장 뛰어난 인간을 골라 그를 죽이고, 번제함으로 공동체의 질서를 회복하는 행위니까요. 저는 후자쪽의 관점으로 이 작품에 접근하려고 합니다.

‘정의’를 거칠게 나에게 해를 입힌 사람에게 같은 방식의 해를 입히고, 도움을 준 사람에게 같은 방식으로 보답을 하는 것으로 파악한다면, 정의의 가장 근본적인 방식은 보은(報恩)과 복수가 됩니다. 재미있는 점은 보은은 여전히 사적 영역으로 간주 되지만(즉, 내게 잘해준 사람에게 내가 선물로 되갚는 것이지, 사회가 그 사람에게 보상을 해주진 않는다) 복수는 공적 영역으로 다루어진다는 점입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복수’라는 주제에 매혹을 느끼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고요.

현대 사회에서 사적 복수가 금지되는 것은 그것이 <전염>이기 때문입니다. 무협지에서 몰살 당한 가문의 아이가 장성하여 부모의 원수를 특정 가문에 되갚듯이 끝없는 연쇄 고리가 만들어집니다. 아들, 아버지, 할아버지로 거슬러 올라가는 피의 복수는 끝이 나지 않으니까요. 사적 복수와 공적 복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전자는 후손 중 한 사람이라도 살아남으면 복수는 다시 반복되지만 후자는 복수의 고리가 끊긴다는 점에 있습니다. 법정은 모든 사람들에게 복수를 할 수 있지만, 복수를 되받지는 않습니다. 어지럽게 엉켜있는 인간관계의 그물에서 초월해 있고요. 그런 의미에서 법원은 신의 영역에 위치하게 됩니다. 눈을 가리고, 저울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은 반드시 ‘신’이여만 합니다. 저울의 여신은 인간사 그 무엇과도 연결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재판관을 자처하며 정의를 스스로의 힘으로 구현하려는 행위는 불경(不敬)이 됩니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 정도로 지혜로운 오이디푸스가 테베의 전염병의 원인이 되는 자를 처벌하겠다고 단언하는 모습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는 정의의 수호자이자 재판관으로 자처하며 판결을 내리려 합니다. 결국 신의 영역에 도전하던 테베의 이카루스는 태양에 의해 밀랍 날개가 녹아 추락합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힘으로 복수를 하고, 정의를 구현하려던 이발사 스위니 토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자기 손으로 죽이고 절규합니다. 제가 주목하는 부분은 스위니 토드가 원하던 정의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고 고스란히 자신의 죄로 치환된다는 점입니다. 피해자였던 그는 작품 결말에 가면 가해자가 되어 속죄를 하게 됩니다. 토비아스의 칼날을 일부러 피하지 않은 채 죽음을 맞는 셈입니다. 스위니 토드는 자신의 죄악에 후회하며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복수를 통해 정의를 구현하려던 스위니 토드는 공적 정의(=운명 혹은 신이라 불리는 거대한 힘)에 의해 무너집니다. 사적 정의의 불안전함과 공적 정의의 신성불가침의 메세지가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사적 복수를 담은 이야기의 유행은 정의 즉 공적 복수에 대한 불신을 말해줍니다.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세상이기에 스위니 토드의 행동에 납득을 하고, 연민을 하며, 동조를 하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스위니 토드가 이런 식으로 행동할 수 밖에 없었던 까닭을 이해합니다. 왜?! 우리 모두 사회는 썩었고, 강자가 약자를 짓밟고, 법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니까요. 사적 정의와 공적 정의가 날카롭게 충돌하고 있는 현대 사회니까요. 제가 이 뮤지컬을 보면서 마음에 못내 껄끄러움이 남은 것은 그러한 불신이 어떻게 극복되고, 봉합되어 사회적 질서가 다시 안정을 찾는가를 이 뮤지컬이 보여주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굉장히 도발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핏빛이 난무하는 자극적인 장면들 때문이 아니라 이 공연이 제기하는 물음이 굉장히 근본적인 부분을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굉장히 보수적이었다고 보여요. 핏빛 오페레타가 너무 강하다 보니 도발적으로 보이지만, 깔려있는 사고관이나 해결 방식은 전통적이고, 보수적이거든요. 앞에서 비교한 그리스 시대의 <오이디푸스 왕>과 동급으로 보이고 있으니까요. 전위를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전통에 가까운 방식이라고 해야할까요. 스타일로서의 형식과 주제로서의 내용이 주는 간극에 잠깐 현기증이 났던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글의 관련글(트랙백) 주소 http://redshadow.pe.kr/tt/rserver.php?mode=tb&sl=714

N. 07/11/04 15:39  R X
무려 '조니뎁' 주연의 영화가 곧 개봉예정인지라, 그 전에 뮤지컬 봐야지 랄라라~ 이러고 있었는데... 갑자기 닥친 번역으로 한달 이상 헉헉대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공연이 다 지났더군요. 엉엉
빨간그림자님 블로그만 충실히 따라서 연극과 뮤지컬을 보더라도 알짜배기를 왕왕 건지게 될 거 같은데, 거참 극장 가듯 공연장 가는 게 이리 쉽지 않은 건 대체 왜일까요.;;
빨간그림자 07/11/06 22:42 X
조니 뎁과 헬레나 본햄 카터의 비주얼이 너무 기대가 됩니다. 그런데 노래가 좀 어려운 뮤지컬이어서 두 배우가 넘버들을 소화해낼 수 있을지도 염려가 되고요. 하지만 팀 버트과 스티븐 손드하임의 궁합은 정말 잘 맞을 것 같아요. 영화가 개봉할 즈음에 뮤지컬이 다시 올라가지 않을까 싶기도 하던데. 내년에 재공연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았거든요. 그때는 꼭 도전해 보시는 겁니다. ^^
N. 07/11/07 00:11 X
오옷! 정보 감사합니다. 내년 재공연... 정말 된다면, 꼭 보러가야겟어요. 실은 영화가 아니더라도 보고싶은 뮤지컬이었거든요. 게다가 빨간그림자님께서도 추천을 해주신 뮤지컬이니 더욱... ^^

조니 뎁의 비주얼이 한번 필름2.0엔가 실린 적이 있는데 그거 보고 뻑 가버렸어요. ㅠ.ㅠ 한동안 밝은 역만 하시더니 그렇죠, 그런 비주얼의 그런 캐릭터는 사실 뎁 오빠 말고는 할 사람이 없는 거죠... (노래는 전혀 기대 안 합니다만. 뎁 오빠가 노래까지 잘 부르면 그건 너무 불공평해요.)

윙클리 07/11/05 21:44  R X
괜찮은 작품이었지만, 역시 그 복잡한 노랫말이 우리말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오는 이질감은 어찌할 수 없더군요. 이 작품은 영어로 불러야 제 맛인가?ㅎㅎ

뮤지컬 해븐의 다음 행보가 꽤 달콤하네요. 영화로도 히트쳤던 '웨딩싱어'랑 또 다른 작품도 로맨스물인 거 같은데, 2008년에는 어두운 작품은 또 보기 힘든거지...
빨간그림자 07/11/06 22:43 X
번역의 이질감에 대해서는 저도 동감합니다. 영어 운율에 맞춰서 딱딱 끊어지는 넘버였다면 훨씬 자연스럽고, 매끄러웠을 것 같아요. 아무리 번역을 잘했어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하는 뮤지컬처럼 보이거든요. 덕분에 영어판 DVD 영상을 보고 싶더군요. 게으름을 떨치고 실제로 감상 할 날이 언제인지는 아득하지만요.

kats 07/12/09 11:01  R X
저는 사적 영역이랄 수 있는 '욕망'만이 눈에 들어왔어요. 복수, 사랑, 자유, 정의, 식욕, 돈... 모두 욕망의 대상일 뿐이랄까요.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자신의 욕망 때문에 경주마처럼 앞만 보며 달려간 덕분에 파멸해 버리더군요. 그 파멸에는 성공도 실패도 의미가 없어 보여요. 그냥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과 비극을 보게된 듯 했어요. 굳이 이 작품이 산업화와 연관을 맺는다면 소수의 욕망이 지배하던 사회가 아니라, 다수의 욕망이 근간이 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자본주의 사회의 실체를 구성원들의 실체부터 귀납적으로 접근하려는게 아닐까 싶네요. 아무튼 저는 한해한해 인생파멸이 다가오는 나이어서인지 구구절절 싱크로율 100%의 작품이었어요.
빨간그림자 07/12/09 21:20 X
<욕망>이라는 키워드가 이 작품에 훨씬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걸 kats님의 코멘트를 읽고 이제 알았어요. 어째서인지 전혀 그런 방식으로 생각해보질 않았거든요. 이제 와서 스스로가 의아할 만큼. 전 조금 곁길에서 작품에 접근한 것 같아요. 그 모든 것들이 욕망의 대상으로서 풀어진다면 이야기가 훨씬 정연해지는군요. 서로의 욕망을 가지고서 목이 쉬어라 아우성치는 느낌. 음음, 그렇군요.(끄덕끄덕) 이제서야 이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매혹된 부분이 무엇인지 알겠네요. 식욕과 성욕의 조합이면 간단하게 간파했을텐데 여기에 복수라는 욕망이 끼어드니 혼란을 느낀 것 같네요. 제게 복수란 욕망이라기 보다는 정의의 차원이어서요. '받은 만큼 되돌려 준다'라는 것에 대해 작용과 반작용으로 생각을 하다보니 되돌려 주고 '싶어 한다'라는 걸 못본 것 같아요.

뱀발> 그나저나 '인생파멸'이란 단어의 어감이 꽤 센데요. 그런 것에 구구절절 싱크로 하시면 아니되옵니다. ㅠ.ㅠ

북극찐빵 07/12/10 22:19  R X
덧글 타고 들어와보니, 언젠가 쓰릴 미 공연정보 검색하다 들어왔던 곳이네요^^; 공연 감상과 정보가 가득해서 감동적이고도 부럽습니다ㅠㅠ 영화 나오기 전에 뮤지컬을 봐두겠다고 마음먹었었는데 자질구레한 일에 쫓기다가 서울 한 번 다녀올 짬을 못 내고 말았네요. 대신 친절하고도 뭉클뭉클 와닿는 리뷰 읽으면서 (공적 복수에의 불신과 연민의 이유와 도발 부분에서 특히 끄덕끄덕하면서) 아쉬움도 달래고, 팀 버튼과 조니 뎁의 또 한번의 조우에 대한 기대도 더 키워봅니다.
빨간그림자 07/12/12 15:02 X
반갑습니다, 북극찐빵님. 마니아들이 많은 뮤지컬이라서 영화가 크게 흥행하면 몇번 더 공연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영화와는 다르게 뮤지컬은 기계 느낌이 나는 철근 세트를 쓰거든요. 영화는 영화 나름대로, 뮤지컬은 뮤지컬 나름대로의 특성을 갖춘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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