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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일시: 2007년 11월 16일~ 2008년 1월 13일
공연장소: LG 아트센터
음악: 앤드루 로이드 웨버 (Andrew Lloyd Webber)
가사: 벤 엘튼(Ben Elton)
연출: 로버트 카슨(Robert Carsen)
안무: 메릴 탱커드(Meryl Tankard)
무대 디자인: 마이클 르바인(Michael Levine)
조명 디자인: 장 칼망(Jean Kalman)
음향 디자인: 마틴 르반 (Martin Levan)
음악 감독: 사이먼 리(Simon Lee)
의상 디자인: 조앤 버진(Joan Bergin)
- CAST -
존: 박건형
토마스: 김도현
프랭크: 김동호
메리: 난아
크리스틴: 김소향
오도넬 신부: 김기현
http://www.beautifulgame.co.kr/
1 . 젊음을 바라보는 노숙한 시선
2000년에 초연된 <뷰티풀 게임>이 라이센스화 되어 공연 되었습니다. 처음 받은 느낌은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이제 정말 원로의 길에 접어들었다는 점입니다. 작품이 나이가 들어 있었어요. 굳이 영화로 비교하자면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고 해야할까요. 많은 관객들이 드라마의 속도가 느리다는 점을 지적했는데 실제로 그다지 느린 편은 아닙니다. 감정선을 강화해서 속도를 늦춘 것에 가깝지 않나 싶어요. 2막의 경우도 의도적으로 임팩트를 제거한 것에 가깝고요. 연출력의 부족으로 인해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기에는 뮤지컬 아니 공연 예술 연출의 역사에 길이 남을 축구장면이 올라왔다는 것을 봐도 잘못된 결론으로 보이고요. 굉장히 대담하고, 실험적이며, 유쾌한 장면 연출이거든요. 이런 담대함이면 2막도 난리블루스를 칠 법도 한데 신파로 빠질 것을 염려한 것인지 건조하게 끌어가더군요.
이 작품은 유명한 축구 선수를 꿈꾸는 청년들의 꿈과 좌절,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걸 바라보는 방식이 매우 장년스럽습니다. 축구 성장 드라마인 것처럼 홍보되지만 사실은 아일랜드 청년들이 영국 청년 혹은 영국 정부에 의해서 핍박을 받고, 목숨을 잃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일랜드 청년들이 어째서 IRA 같은 과격 단체를 만들게 되고, 미국으로 떠나게 되고, 죄 없이 죽게 되는가를 한때 같은 팀에서 축구를 했던 선수 멤버들의 이야기로 풀어나갑니다.
2막에서 본격적으로 파국이 시작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1막은 밝고, 경쾌합니다. 비록 선수 중의 하나였던 컬리의 죽음으로 끝나지만요. 비극과의 대조를 위해서 밝은 시기를 더 밝게 연출하는 의도가 있긴 하지만, 그와 별개로 이 공연은 각각의 젊은이들을 예쁘고, 순수하게 그립니다. 막이 내리는 순간까지 성인 어른으로 등장하는 사람은 오드넬 신부 뿐입니다. 그가 고아들의 아버지처럼 묘사되고 있다는 것도 우연의 일치는 아니고요. 청년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성인으로서의 통과의례를 모두 거치고 난 후에도 아이 같습니다. 심지어 1막은 15살~17살로 착각이 될 정도로 젊고, 발랄하게 그려지고요. 컬리가 죽었을 때 신부는 "이제 다음 주면 21살이 되었을 청년"이라고 말합니다. 존이 결혼하는 것은 24살, 감옥에 있다가 나오는 것은 31살입니다. 이런 객관적 정보를 무시하고 감성적인 느낌만을 따라가면 1막은 10대, 2막은 20대 중반으로 보입니다. 이건 장년의 시선으로 본 필터가 끼어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 필터는 젊음을 한참 전에 흘려보낸 사람이 청춘을 묘사할 때 윤색되게 되는 찬탄입니다.
이 필터에 대해 동의할 수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작품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상 관객층 자체가 30대 후반에서 40~50대로 보였거든요. 그 이하로 내려가면 이 뮤지컬은 늙은 꼰대가 뻔한 잔소리로 교훈극을 늘어놓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그러나 이 필터를 인정하게 되면 작품의 구조가 다르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작품에서 강하게 받은 메세지는 <젊은 아이들이 죽어간다>였으니까요. 덕분에 너무 착하고, 순수한 아이들이(청년들이 아니라;) 등장하게 되지만요. 실제로 그들의 나이면 이미 세파에 찌들고도 남을텐데 참 투명하고, 맑더군요. 이들에겐 왜곡도 없고, 독한 회의도 없고, 굴절된 허영이나 명예욕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있다면 폭력의 충동 정도일까요. 그 폭력조차 굉장히 즉물적이고, 반응적이어서 젊은 세대 특유의 충동으로 보이기까지 하고요.
정리를 해 보자면 전반적으로 '느리고 늙은' 뮤지컬인데 그것이 작품의 결함이기 보다는 색깔이라는 점입니다. 축구가 나오고, 젊은이들이 나오고, 역동적인 춤 동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늙은 뮤지컬이었습니다. 이 작품이 20~30대의 예술가에게서 나와있다면 시니컬한 양비양시론이 되었을거라 생각해요. <너희들도 다 똑같아> 내지는 <세상이 원래 엿같지> 등등의 과격한 메세지의 느낌이라고 해야할까요.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염려와 슬픔이 굉장히 많이 읽힙니다. 특히 폭력에 대한 염려가요. 덕분에 두리뭉실하게 논조가 흘러가는 느낌이 들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습니다. 정치적 입장이 모호해서 그렇지 오히려 메세지 자체는 굉장히 강렬하거든요. 정치적 입장이 모호하면, 메세지도 모호해야 하는데 이 작품은 메세지의 강렬함으로만 치닫습니다. 창작자의 비판 의식이 뭉툭해서 그런게 아니라 이 사람에게 그런 정치적 대립이 굉장히 하찮고,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아일랜드와 영국의 극심한 폭력 마찰을 몰라서 이런 식으로 접근했을리는 없다고 보고요. 오히려 너무 많이 알고, 너무 자주 이슈화 되었기 때문에 우회한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전 그런 부분이 이 '늙은 공연'이 가진 장점이자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웨버가 이 작품을 매우 아끼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작품 중에서 이토록 강렬하게 <내가 할 말이 있어요. 당신들이 꼭 들어줬으면 좋겠어요>라는 느낌으로 만들어진 뮤지컬이 또 있을까 싶어서요. 본인은 후세의 젊은이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그건 자기 자신과 같은 세대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있는 셈이지요.
2 . 노련한 그리고 유려한
축구 경기가 무대 위로 올라갔다는 점에 대해서는 별 다섯개를 주고 싶었어요. 보통 이런 장면은 공연 연출로는 부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상황인데 과감하더군요. 이런 식으로라면 언젠가 농구, 테니스, 하키, 수영도 무대에 올려질 수 있는 걸까요. 무대 컨벤션을 깨는 아이디어를 만나는 것은 늘 즐겁습니다. 배우들도 연습을 꽤 많이 했을 것 같았고요. 배우들의 노래에는 아쉬움이 있어지만, 군무 동작이라던가 복잡한 동선이 꼬이지 않고 매끄럽게 풀리는 점은 만족스러웠고요. 마지막 커튼콜에서 1막의 <뷰티풀 게임> 넘버를 합창으로 부르게 되는데 2막이 진행되고 난 후의 플래시 백 효과를 주어서 들으면서 마음이 짜안하더군요.
섬세하게 그물처럼 짜있는 작품이라서 대사나 장면이 유기적으로 얽혀있는 느낌이 들더군요. 단지, 아쉬웠던 점은 연출의 의도인 것인지, 원작의 성격인 것인지 1막에서의 촛불시위 장면에서 영국 경찰과의 대치 장면이 매우 약했다는 부분입니다. 그 이후에 나타나는 영국 청년들의 모습은 그냥 갱스터 무리로 보이고요. 정치적 충돌이라는 점이 조금 더 명확하게 부각되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라이센스 뮤지컬이지만 공을 들여서 잘 만들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뮤지컬 시장이 확대되면서 참으로 다양한 작품들이 쏟아지네요. 다양한 메세지와 다양한 연출적 실험을 가진 작품들이 말이죠. 관객의 경험 지평이 넓어지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러한 관극 경험이 어떤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겠다는 염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요. 창작자가 시간차를 두고서 발표한 작품들을 우리나라 관객들은 동시기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아요. 창작자와 관객이 같이 늙어가면서 교류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외국의 작품들이 라이센스로 들어오게 되면 시간에 따른 작품 세계의 변화는 인지하기가 힘들어지거든요. 우리나라의 경우는 시간차 뿐만 아니라 공간차까지 뛰어넘고 있는 중이라 이러한 혼란은 앞으로 가속화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건 좋은 일일까요, 나쁜 일일까요. 글쎄요. 아직은 알 수 없는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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