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레이디 맥베스 : 예술을 기록하다 - 공연장 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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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일시: 2008년 3월 21일(금)~ 4월 15일(화)
(13일까지 공연에서 15일 연장 공연이 결정되었습니다. 월요일은 공연없음)
공연장소: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원작: 윌리엄 세익스피어
재창작, 연출: 한태숙
오브제 창작: 이영란
무대: 이태섭
조명: 이보만
타악: 박재천
작곡, 구음: 김민정
안무: 박호빈
의상: 김우성
- CAST -
레이디 맥베스: 서주희
궁중의사(전의), 맥베스: 정동환
오브제 시종: 이영란
악사 시종: 박재천
구음 시종: 김민정
키다리 시종: 홍승균
난쟁이 시종: 권겸민
1 . 하나의 전설이 된 공연
<레이디 맥베스>에 대한 설명을 하자면 '하나의 전설이 된 연극'이라는 말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무대에 오를 때마다 관객들을 열광 시켜서, 보지 않은 관객까지 '언젠가는 꼭 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공연이었으니까요. 저는 이제야, 이제야 이 공연을 만났습니다. 놓치지 않으려고 바둥거리느라 힘들었어요, 휴우. 한태숙 연출에 대한 기대치도 있었고, 서주희씨의 연기에 대한 기대치도 있었고, 정동환씨에 대한 기대치도 있었고 공연을 보고 참 좋아했던 주변 사람들로 인한 기대치도 있었고, 기타등등. 너무 많은 기대를 가지고 갔다가 행여 실망할까봐 오히려 염려가 되던 공연이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참 좋았어요. 몇몇 장면들은 매우 강렬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공연 시간이 80분인데 보다 짧게 느껴집니다. 60분 정도로 느껴지는 것을 보면 호흡이 꽤 빠른 작품인 것 같습니다.
2 . 다시 읽기 혹은 행간을 읽어내기
<레이디 맥베스>는 세익스피어의 원작 <맥베스>를 가지고 '다시 쓰기'를 한 작품입니다. 맥베스와 함께 왕위 찬탈을 꿈꾸다가 소리소문 없이 죽어버리는 레이디 맥베스. 바로 그녀가 왜 죽게 되고, 어떤 말을 하고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연극입니다. 90년대에 들어서 페미니즘 문학계열에서 고전을 다시 쓰기(re-writing)을 해서 원작과는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이 작품도 그런 범주로 넣어도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말한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성차별에 대항하는 여성 운동'이라는 진보 운동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숨겨져 있던 여성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드러낸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이셨으면 합니다.
세익스피어의 원작을 살펴보면 레이디 맥베스는 남편인 맥베스에 비해 단순한 인물입니다. 맥베스가 죄의식과 욕망 사이에서 갈등한다면 레이디 맥베스는 단호하게 왕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텍스트를 읽으면서 '이 여자는 참 세상 편하게 사는구나' 싶었던 것도 직선적인 성격이라는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작품 말미에 이르러 몽유병을 보이고, 죽었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좀 놀랐어요. 레이디 맥베스는 몽유병으로 괴로워하다 죽기에는 정신 세계가 단순한 인물 같았거든요. 그때 느꼈던 미묘한 불일치의 느낌. 둔한 저는 넘어갔던 부분을 한태숙 연출가님은 보다 깊고, 날카롭게 파고 들어서 대사와 음악, 몸짓과 표정으로 작품화 했습니다. 텍스트의 결을 매우 섬세하게 읽어내어 재구성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특히 이 작품이 초연되었던 97년에는 굉장히 낯선 작품이었을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오브제의 사용도 그러하지만, 원작의 텍스트가 가진 간극에 몰두하여 새로운 작품을 써내는 행위 자체가 국내 연극계에선 많지 않았다고 생각되거든요. 10년이 지난 지금 보았을 때 '감각적이고, 훌륭하다'라고 느끼는 연극이니 10년 전에는 '낯설다!'라는 평이 지배적이었겠지요. 요즘엔 물체극을 비롯하여 이미지로 서사를 설명하는 시도가 워낙에 많다보니 맥락들이 무리없이 관객에게 읽히는 것 같습니다. <레이디 맥베스>를 보면서 이미지의 아름다움과 충격을 말하는 관객들은 많아도, 난해함을 이야기하는 관객은 상대적으로 드문 것 같거든요.
굉장히 인상 깊은 이미지를 적어보자면 2008년에 수직 공간을 활용하고자 들어간 찰흙 덩어리입니다. 이것이 던컨 왕의 목으로 바뀌고 철사를 통해 얼굴 윤각을 단면으로 잘라내 맨 얼굴로 만들 때는 살인, 전쟁의 섬뜩함이 고스란히 전달 되었습니다. 찰흙의 질감과 밀가루의 하얀색이 만들어낸 살해 장면도 백미로 꼽을만 하고요.
3 . 죄 짓지 않은 자들이여, 저주 받아라.....
<레이디 맥베스>는 굉장히 격렬한 작품입니다. 서서히 사건이 전개되면서 배우의 감정이 고조되는 것이 아니라 막이 오르면 이미 레이디 맥베스는 미쳐있는 상황이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현재의 상태에서 정신분석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게 됩니다. 레이디 맥베스가 접하는 사건들은 모두 격렬한 사건들입니다. 모반의 계획, 살해, 맥베스의 광기 등등. 레이디 맥베스가 평정을 찾고, 조용히 쉴 순간이 없습니다. 중간중간 물체극에 의해서 시퀀스가 잘려나가서 그렇지 오브제를 제외하고 장면들만 이어붙이면 가파르게 상승하는 직선만 보입니다. 강약을 조절해서 리듬을 타는게 아니라 강한 감정, 보다 더 강한 감정, 보다 더더 강한 감정순으로 갑니다. 사람이 저런 식으로 딱 한 달만 살면 에너지 고갈로 죽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예요. 75도 각도로 가파르게 치솟던 직선이 어느 순간 딱 멈춰집니다. 그리고 그 순간 레이디 맥베스는 죽습니다. 가장 느린 호흡을 가지고 가는 장면은 레이디 맥베스의 죽음, 그녀가 긴 통로를 걸어가는 뒷 모습을 보여줄 때 입니다. 정신없이 격정의 회오리 바람이 몰아치는 연극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배우들이 공연이 끝나면 녹초가 되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배우 뿐만 아니라 관객마저 다 같이 넉다운 되는 느낌이 드니까요. 심지어는 캐릭터인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마저 자신들의 야망을 하얗게 불 태우고 재가 되어 버립니다.
레이디 맥베스에게는 이중의 억압이 존재합니다. 첫째는 왕위에 오르기 위해 남편과 자신이 던컨 왕을 살해한 행위에 대한 죄의식입니다. 왕위에 대한 욕망과 죄의식 사이에서 갈등할 때 욕망이 이겼다면, 욕망이 다 이루어지자 죄의식이 힘을 얻습니다. 그녀는 죄의식을 느끼며, 동시에 그것을 부정하려 합니다. 둘째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로서 의사인 전의에게 모든 음모를 고백하고 싶은 발설의 욕구와 비밀을 은폐하려는 왕비로서의 레이디 맥베스의 갈등입니다. 자신과 남편의 안위를 위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나 마음의 병을 치료를 위해서는 비밀을 털어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레이디 맥베스의 말은 마치 구토처럼 토해집니다. 입을 막고 참으려고 해도 속에서 올라오는 욕지기처럼. 배우와의 대화 시간에서 서주희씨는 <레이디 맥베스>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한껏 과장해서 감정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후 그것을 다시 억누르는 연기'라고 설명하시더군요.
제게는 '전의'라는 존재가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레이디 맥베스를 치유한다는 구실로 그녀가 극도로 감추고 싶어하는 것을 억지로 끌어내게 하는 자. 최면을 통해서 기억을 더듬어 가는 치료 중간에 레이디 맥베스는 상대에게 묻습니다. "그대는 누구인가". 왕의 흉내를 내고 있던 그는 대답합니다. "전의옵니다, 마마." 이런 존재가 삶에 갑자기 끼어들어 덮으려고 하는 비밀의 자락을 굳이 끌어내어 폭로한다면 역시 좀 미울 것 같아요.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아 버티고 있던 레이디 맥베스의 정신 세계가 완전하게 파국으로 치닷는 것도 이 치료 때문이기도 하고요. 이 인물을 어떤 관점에서 봐야할지 미효한 느낌이 들더군요. 적도 아닌, 그렇다고 아군도 아닌 사람.
나머지 이야기들은 공연 후 배우들과의 대화 시간에 나누어졌던 이야기를 옮기는 것으로 대체할까 합니다. 다른 블로거분들이 좋은 글들을 많이 써주셔서 링크로 대신하는게 중복을 막는 일일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모든 대화는 빨간그림자의 기억에 의해 맥락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편집, 재구성 되었음을 밝힙니다. 2008년 4월 2일(수요일) 공연입니다.
관객1: 좋은 공연 잘 봤습니다. 이 공연을 지방에서 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한태숙 연출: 사실 저희도 지방에서 공연하기를 매우 원하고 있는데, 그리고 불러준다면 달려갈 의사가 충분히 있는데 아무 곳에서도 저희를 부르지 않아서 못 가고 있답니다. 안 가는 게 아니라 못 가는 점이라는 부분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관객2: 벌써 초연 이후 10년이 된 공연입니다. 이번 공연만의 특색이랄까, 특별히 중점을 두어서 연출하신 부분이 있으신가요?
한태숙 연출: 이번 공연에서는 토월극장의 공간을 재발견하는데 의미를 두었습니다. 특히 수직 공간이요. 공중에 매달려 있는 흙 덩어리는 수직 공간을 이용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나오게 된 오브제입니다.
관객3: 팜플렛을 보면 <레이디 맥베스>가 여러나라에 초청을 받고 있다고 나오는데요, 올해 다시 재공연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한태숙 연출: 일단 이 공연이 베이징 올림픽에 문화 축전으로 초정을 받아서 공연 예정에 있습니다. 올해에는 정미소에서 <서안화차>를 재공연할 생각입니다.
(*주: 서안화차, 정말 좋은 공연입니다. 재공연, 만세!! ㅠ.ㅠ_v)
관객4: 이번 공연의 마지막 장면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이것은 세익스피어 원작에서 맥베스가 레이디 맥베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말했던 대사를 생각나게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그 부분과 너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엔딩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녀는 언젠가는 죽을 운명이었다.
이와 같은 소식의 알림은 언젠가는 오게 될 것이었다.
내일, 그리고 내일, 그리고 또 내일이
이 작은 갈걸음 속으로 매일매일 기어들어
기록된 시간의 마지막 음절까지 가고
우리의 모든 어제들은 인간 광대들의 티끌이란 죽음으로
가는 길을 비추어 주었다. 꺼져라, 꺼져라, 단명한 촛불아!
인생은 걸어다니는 그림자에 불과하고,
자기가 등장하는 시간에는 무대 위에서 거드름 피우며 왔다갔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더 이상 말을 누가 들어주지 않는 가련한 배우이다.
그것은 바보가 들려주는 이야기,
요란한 소리와 흥분으로 차 있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
관객5: 정동환씨께 여쭈어 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다른 배우분들에 비해서 나이가 많으신데 이 공연이 체력적으로 무척 힘든 공연인 것 같은데 어려운 점은 없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정동환 배우: 제가 다른 배우들보다 나이가 많긴 하지만 조금 많을 뿐이지 많이 많은 게 아닙니다.(웃음) 처음에 이 작품에 합류하게 되었을 때는 여러모로 걱정이 되었던 게 사실입니다. 특히 다른 배우들에게 폐가 되는 것은 아닐까 염려가 되었죠. 그러나 작품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꼭 참여하게 해달라고 졸랐습니다. 이 작품은 굉장히 실험적이고, 특별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통해서 제가 많은 것을 배우는 것도 사실이고, 또한 저의 시선이 작품에 반영되면서 다른 배우들에게 자극이 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객6: 저는 올해 일흔이 되는 관객입니다. 이렇게 젊은 사람들 틈에 혼자서 껴서 공연을 보게 되는데 참 잘 봤습니다. 그러니까 정동환씨께서도 건강 조심하시고, 앞으로도 오래오래 좋은 공연을 무대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동환 배우: 정말 감사합니다. 관객님 같은 분이 계셔서 제가 큰 힘이 됩니다. 일흔의 나이에도 무척 정정하신데 앞으로도 계속 공연장에 와서 제가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봐주셨으면 합니다.
관련 자료
연합 뉴스 제공의 공연 영상과 인터뷰
예술로 제공, 이전 공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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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그림자 | 08/04/08 02:43 | Permalink | trackback | comment(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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