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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 마인의 인형의 집

연극을 보고, 입센의 희곡을 가지고 댓글로 이야기를 하다가 조곤조곤하고도 긴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대화를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게 되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꼭 포스팅으로 남기고 싶어서 올려봅니다.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하여. 그리고 이 고민의 행간을 따라가다가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해 이해가 조금 더 깊어지게 될지도 모를 어떤 이들을 위하여.


라이 08/04/25 15:14 R X
저 역시 '인형의 집'이라는 희곡에 회의적이었습니다마는(구닥다리 페미니즘 극),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부터는 '인형의 집'이 달리 보입니다. 결혼 및 출산 전에는 '집 나간다고 해결이 되나?'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지금 생각에 노라는 그걸 애초에 '해결'하겠다는 생각으로 나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저 사회제도와 가정제도가 노라를 '내 몬'것이지요. 인형이 아닌, 조금이라도 자의식이 있는 여성이라면 결국 집 밖으로 내 놓는 현실이요. 저는 이제 대책없이 집을 나간 노라를 이해하고, 세상물정 모르지만 뛰쳐나간 노라에게 동병상련을 느낍니다.

좀 바뀌긴 했어도 남편의 경제력에 의지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지요. 일부일처제라는 것이 확실한 내 핏줄을 안정적으로 길러내기 위해서, 남자는 '짝짓고 도망가기'를 포기하고, 여자는 그런 남자에게 '굴종하기'를 시스템화 함으로써 나왔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리구요. ㅎㅎ. 입센 남자잖아요. 이 만큼의 희곡을 쓰다니 머리 쓰다듬어주고 칭찬해주고 싶어요. 남자가 이정도 역지사지 하기 쉬운게 아니거든요.

p.s. 여기에 대해서 다시쓰기 한 작품이 있지요. Slam the door softly라는 작품인데, 이걸 읽어보면 전 역시 인형의 집이 고전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시 최신성을 반영해서 썼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제 생각엔 인형의 집이 가치있어 보이거든요.



빨간그림자 08/04/25 15:28 X
사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육아'가 들어오면 결혼의 판도가 달라지고, 여성에게 과중한 가사노동이 분담되는 것은 알지만... 남자들이 자신들이 돈 벌어오는 기계가 된다고 말하는 것도 한편으로는 수긍이 가거든요. 결국 남편이든 아내이든 가정을 버리고 도망가 버리고 싶은 욕구라는 것은 모두 존재할 텐데.... '집을 나가고 싶다'라는 삶에서 연유하는 스트레스 자체를 말하려는 게 아니라면 정당성이라는 것은 이보다는 강도 높게 획득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현재의 여성들에겐 말이예요. 단순한 여성의 이기적인 투정이라는 말을 넘어서려면 말이죠.

가사노동과 육아 스트레스가 사실 가정 주부들에게 큰 문제가 되는 영역이지만 실제 이 작품 내에서 노라는 그런 점에 스트레스 받는 인물은 아니예요. 제3자의 여분 노동력이 존재하죠. 유모와 하녀가요. 유모이자 하녀도 없이 모든 걸 감당하는 일반 여성들이라면 집이야 백만번 가출하고 싶겠지만(그땐 제목이 <인형의 집>이 아니라 <몸종의 집>으로 바뀌어야 할 것 같긴 해요), 그걸 거세한 상황에서의 노라라는 존재가 보여주는 행동은 쉽게 정당화되지 않아요. 100년 전이라면 재산 상속 문제라던가, 대출 문제 때문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오늘날 이런 여자가 있다고 하면 일단 다른 여자들로부터 '팔자가 좋다 못해 네가 미쳤구나'라는 얘기를 들을 것 같은 걸요.

독일 샤우뷔네에서 올린 <인형의 집>이 배경을 중산층 보보스 가정을 바꿔 놓았는데 보다 보면 노라라는 인물에 대해 화가 나요. 가사노동과 육아라는 게 여성의 패널티인 만큼 동시에 이 부분에 대해서 자유로운 여성은 더 엄격하게 무언가를 가져야만 해요. 안 그러면 여성의 이기심 외에는 다른 걸 찾기가 힘들어 지는 것 같거든요.

음..... 저는 아마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해도 이 생각이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아마도 계속 그녀가 가사노동과 육아 노동에서 자유롭다는 점이 눈에 밟힐 것 같거든요. 그 영역에서 자유로움에도 불구하고 노라에게 억압이 존재했다면 역시 경제적인 부분과 관련된 사회 제도의 모순인데.... 이 부분이 법이 바뀌었다 보니 미묘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p.s. 좋은 작품 소개 감사~ 나중에 찾아서 읽어볼께요, ㅎㅎ.



빨간그림자 08/04/26 10:58 X
라이님의 글을 읽고, 제가 단 답글을 읽으며 다시 곰곰히 생각해 보니까....'하녀'도 '유모'도 아닌 아내는 결국 '인형'이 될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실적으로 아내란 저 셋의 집합체이겠지만 이 작품에서는 특히 인형이라는 측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아요. 인형으로서도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고 자부하던 노라가 사실 인형은 인형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면 그녀는 집을 나올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울의 추를 공정하게 하기 위해서 남자쪽을 생각해 본다면..... 그들 역시 돈 벌어오는 기계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 대체 정치적으로 올바른 포지션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가정이란 공간 내에서 과연 그런 게 작동할 수 있는 것인지. 하긴, 본디 정치적 공정성이란 일종의 취향이라서 지키지 않아도 하등 문제가 없는 성질의 것이긴 하지만......



라이 08/04/27 23:36 R X
1. 빨간그림자님의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경제적 제도에서 여성차별적인 요소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현대에 노라가 있다면, 육아와 가사노동과 밥벌이에서 자유로운 여성이기 때문에 집을 나가는 행위 자체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저도 빨간그림자님이 그렇게 생각하셨던 것에 충분히 동의할 수 있어요.

2. 저는 약간 다른 방향에서 말씀 드려볼께요. '인형의 집'이 페미니스트 극의 고전으로 여전히 가치를 빛낼 수 있는 것은 외려 노라가 받고 있는 억압이 '여성이라는 것' 한가지에 국한 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당시에 이 사건을 다룬 글쟁이글이 있었다면 이 사건에 대해 이렇게 논했을 지도 몰라요. "노라는 성적 억압의 보다 분명한 피해자인 하녀와 유모 및 평민 계층 여성의 고통을 이해할 만한 처지에 있지 않으며, 그 고통을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단지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사회적 억압인 성적 억압을‘남성 일반과의 문제’로 생각하며 가출을 감행했을 뿐이다." 김규항의 '그 페미니즘'을 패러디한거에요. 노라는 분명히 혜택받은 여자에요. 남편으로 부터 사랑도 받고, 잘 먹고, 잘 살고, 노동도 하지 않지요. 그녀는 그녀에게 억압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을 거에요. 그러다가 극 중의 사건을 통해서 (남들이 보기에 유일한 억압이라 욕할지 몰라도) 그 억압을 깨달은 거에요. 자기 자신이 진짜 부르주아 or 귀족 신분이 아니라, 부르주아 or 귀족의 '아내'에 불과하다는 것을요. 그리고 XX의 아내란 결국 노동으로 부터 배제 된다해도 하나의 온전한 인간이 아닌 '인형'에 불과하다는 것을요. 전 노라의 깨달음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보통의 여자라면 깨달음을 얻기보다는 엉뚱한 곳으로 비틀어진 욕망을 투영하겠죠. 전 이것만으로도 노라에게 지지를 보내고 싶어요. 결국 빨간 그림자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신 듯 하지만.

3. '돈 버는 기계'와 '하녀 겸 유모 겸 인형'를 저울에 달아볼까요? 그 희생의 정도가 달라요. '돈 버는 기계'는 사회의 일원이면서 동시에 가정에 노예인 것이지만, '하녀 겸 유모 겸 인형'은 오롯이 가정에만 속한 노예입니다. 양자의 희생의 정도는 다르지요. (물론, 소중하게 자기 일을 하는 전업주부 여성들을 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4. 물론 빨간그림자님도 그 부분은 감안하셨겠지만, 법과 제도가 바뀐다고 해서 여성에게 오는 경제적 억압이 없어진 것은 아니에요. 이건 부부마다, 사람마다, case by case로 다르기 때문에 섣불리 예를 들지는 못하겠지만, 암튼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혹은 그 밖에서도 여성은 여러가지로 경제적으로 불리한 조건에 놓여있어요.

5. 저도 가정이란 공간 내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포지션이라는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정치적 공정성이란 일종의 취향이라서 지키지 않아도 하등 문제가 없는 성질의 것이라는 말에도 심하게 공감합니다. 저희 남편은 국회의원 선거에 있어서의 정치적 공정성에만 관심이 있지, 가정 내의 정치적 공정성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아마 취향인가 봐요. ^^



빨간그림자 08/04/28 01:28 X
라이님의 코멘트를 읽고 나니깐 제게 이 희곡이 조금 더 명확하게 눈에 들어오네요. 제가 김규향의 페미니즘 비판 논리에 설득되는 사람이다 보니까 더욱 그랬던 것 같아요. 2번과 3번 코멘트를 보고 나서 머릿속이 명확하게 정리가 되는 것 같은 걸요. 코멘트 감사드려요. 덕분에 <인형의 집>을 훨씬 잘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왜 이 작품이 그토록 사랑받고 있는지에 대해서도요. 공연을 보고 울었던 관객들이 제법 있다는데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도요.

이 희곡이 제게 멀리 있다고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봤는데 그건 제 내면에 노라의 처지를 부러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게 굉장히 마이너스 방향으로 가는 감정이라는 것을 방금 깨닫기는 했는데, 결혼이라는 문제가 실질적으로 다가오다 보니까 가정을 생각했을 때 이상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모델이 노라의 집으로 보이는 거죠. 저 정도면 그렇게 나빠 보이지는 않아, 라는 심리. 바꿔 말하면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산다'라는 점을 너무 잘 체득하고 있어서 시스템 내에서의 최선을 선택하는 것에 길들여져 있다는 뜻이겠지요.

지금은 결혼 후에도 여자가 밥벌이를 하는 게 어렵지 않은 시대라 생각해요. 요즘 여성의 휴직은 결혼 때문이 아니라 출산과 관련된다고 생각하고요. 그러니까 저에게 결혼으로 생기는 문제의 포커스는 자아실현과 사회생활의 문제가 아니라(저는 이쪽은 그리 어렵지 않게 획득된다고 보거든요) 가사노동과 육아노동인 거예요. 가사노동까지는 분업이 되더라고요. 요즘 제 친구들을 보면 맞벌이를 하다보니 둘 다 가사를 포기하고, 일욜에 몰아서 하더군요. 분업이 안되는 시점이 출산부터 였어요.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 아기가 놀이방에 맡길 수 있을 만큼 크는 순간까지. 제게 조금 더 절실한 부분은 이쪽의 문제들이었던 거예요. 여기가 너무 절실해서 하녀와 유모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요. 주변에 아둥바둥대면서 이걸 해나가는 사람들이 있긴 한데...... 그런 역할 모델들이 있기에 언젠가는 저도 그렇게 해나갈 것 같기는 한데...... 우와, 곁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만만치 않게 보이는 걸요. "내가 인형으로 살테니 유모와 하녀를 다오!"라고 외치고 싶어지는 심정이라니.

이러한 자신감은 제가 자아실현이나 사회 생활 쪽은 오히려 쉽게 얻어낼 수 있을거라고 판단하기 때문이겠죠. 결혼을 해서도 어차피 나는 일을 해야만 한다는 판단이랄까. 남편의 수입만으로는 가계가 어차피 돌아가지 않는 상황이랄까. 오히려 걸리는 것은 노라와 제가 다른 계급이라는 문제. 김규항의 지적도 옳긴 해요. 박근혜와 나는 같은 여성인가.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는 문제. 여성적 유대만으로 뛰어넘기엔 좀 힘들어요. 저보다 약자를 향해서는 가능한 감정인데 강자를 향해서는 잘 모르겠어요. 워낙에 대한민국 사회가 거지 같아서 이 나라 내부에서야 최상위층 여성이라 할지라도 제가 결국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더군요. 그러나 아주 미묘한 지점.... 내가 싸워서 얻으려고 하는 부분이 그녀가 버리고 떠나야 하는 것과 일치할 때의 느낌.

흑인 여자들은 자식들이 자꾸 팔려나가니까 자기 아이를 자신의 손으로 키우는 것이 그녀들의 페미니즘이었다고 하잖아요. 백인 여성들이 아이들에게서 벗어나려고 하고 있는 바로 그 시점에서.

제가 느끼는 지점이 이 부분과 비슷한 것 같아요. 그녀가 떠나려는 지점을 사실 나는 들어가고 싶어해요. 내가 그녀의 발목을 잡는 건 안되는 일이겠죠. 그 정도는 알지만 나가라고 등 떠밀며 박수 쳐주기엔 제 욕망이 너무 절실하죠. 이 욕망이 목구멍에서 걸려요. 굉장히 예뻐지고 싶어서 사실 다이어트를 하는데, 예쁜 몸매를 가진 애가 '난 더 이상 사회의 시선에 맞춰서 예뻐지려고 노력하며 살지 않겠어!'라고 말할 때 그걸 격려하기엔 자기 자신이 너무 분열적이잖아요. 최소한 나도 포기를 하면서 그런 얘기를 해야할 것 같은데;; 그녀를 미워해서는 안된다는 걸 알죠. 그런데 그런 격려를 하기엔 나의 욕망이 너무...... 절실하고, 급박해요.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잖아요. 이게 또 결국 사회 제도를 만들죠. 탈락해서 떨거져 나가는 누군가와 편입하는 누군가를 가르게 만들죠. 나의 욕망은 불행히도 누군가의 억압을 만들죠.

폭력 체험은 그토록 단순하고, 명쾌한데.... 그것을 통한 연대는 보다 확실한데 계급이 들어오면 복잡해지는 것 같아요. 대체 어디서 연대를 해야할지 알 수가 없어요. 얻으려고 하는 것과 버리려고 하는 것이 서로 얽혀있을 때는요. 노라는 집을 나가서 다른 집의 유모나 하녀로 취직을 할 수 있었을 거예요. 그리고 토어발트는 유모나 하녀 중 한 사람을 아내로 맞이할 수도 있고요. 뭔가 다른 차원으로 돌파하는 게 아니라 자리가 맞바꿔지는 것 같아요.

지금 제 생각이 어디선가 오류를 갖고 있다면 지적해 주시겠어요? 제 스스로는 돌파구를 못찾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빨간그림자 08/04/28 02:15 R X
그러고 보니 이미 라이님이 1번에 동의하신다고 얘기를 하셨네요. 저는 그 1번 문제가 너무 큰 것 같아요. ㅠ.ㅠ 제게는 2번, 3번도 결국 1번 문제인 거예요. 유모와 하녀는 어차피 계속 일을 하면서 사회와 연관을 맺고 살게 된다는 점이요. 그들은 밖에서 일도 하고 돈도 벌어요. 근데 집에 와서 아마 가사 노동을 또 할거예요. 이 놈의 가사 노동과 육아 노동. 난 아직 결혼도 안했는데 왜 얘들에게 강박을 느끼고 있는 건지. 난 아기가 태어나면 남편이 미울 것 같아요. 차라리 내가 돈 벌어올테니 아기랑 24시간 있으라고 말하고 싶어질 듯.

이런 방식의 노라에 대한 지지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노라가 많은 것을 가졌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고, 그녀가 집을 나가는 것을 격려하지만...... 결국 나는 토어발트 같은 남편을 원하는..... 거참,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네. 이리 둘러봐도, 저리 둘러봐도. 좋은 남편이라는 개념 자체가 안 서 있어서 그런가 봐요. 현실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레벨이 토어발트라니. 아이구야.



라이 08/04/28 11:19 X
1. 웃을 일 없는 요새, 빨간그림자님 댓글 보고 엄청 유쾌하게 웃었어요. 고민도 많이 하시고, 솔직하기도 하시고, 정말 유쾌한 분이십니다. (귓속말: 저도 노라가 부러워요. 그리고 저도 토어발트 정도면 좋은 남편이라고 생각해요. ㅎㅎ. 아니 아주 좋은 사람이에요. 근데 문제는 현실의 남편이란 토어발트 처럼 마누라를 귀여워하지도 않고, 토어발트처럼 돈이 많지도 않으면서도 주체성을 인정하지도 않은 남편이라는 게 문제지요)

2. 빨간그림자님은 아직 결혼도 안하셨는데, 꽤 결혼생활에 대해 통찰을 많이 갖고 계세요. 저는 결혼 전에 그러지 못했던 것 같아요. '가사'는 분담이 가능해요. 그런데 '육아'부터는 달라져요. 남자도 자신의 아이를 이뻐하고, 육아에 '나름대로 참여'하지만 그건 '아내의 일을 돕는'것에 불과해요. 책임감과 배려의 정도가 다르죠. 뭐랄까 암컷의 숙명이랄까. 강박을 느끼신다는 건 당연한 거에요. 전 결혼 및 출산 전에 그런 고민이 별로 없었다는 것에 대해 제 자신을 좀 한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근데, 그렇게 고민을 했다면, 결혼도 출산도 섣불리 못했을 것 같아요.)

3. 사회계층 별로, 각자의 신념 별로, 여성해방의 방식은 달라야 한다고 봐요. 리버럴리스트 페미니즘부터 프롤라테리아 페미니즘까지, 페미니즘의 스펙트럼은 아주 넓은 것이고, 그 안에서도 서로간의 비판은 있어야 하지만, 그것들이 서로 상치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공존해야 할 것들이지요. 사실 저만해도 자기 분열적인 거든요. 과거 백인여성들에게는 육아에서 해방되려 하는 것이 여성해방이었다면, 흑인여성들에게는 자신의 아이를 내 손으로 키우는게 여성해방이라는 점. 예로 들어 설명하기에 아주 좋은 사례인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 다른 걱정없이 아이를 24시간 끼고 기르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육아는 힘들고 희생을 요하는 일이지만, 제 아이인걸요. 육아에서 해방하고 싶다고 해서 아이가 싫은 건 아닙니다. 내 아이와 교감하고, 내 아이와 성장해나가는 특권(특권 맞습니다.)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저는 끊임 없이 다시 사회로 나가길 원합니다. 아이를 기르고 가정을 꾸리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행복감을 느끼는 여성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이미 사회 생활의 단물 쓴물을 다 본 저로써는 이 생활이 결국 점점 더 저를 사회로부터 격리 시키고, 제 발언권은 작아지고, 제 경제권도 작아질 것이 분명하거든요. 제가 노라 같은 상황이라면, 저는 속편한 '인형'이되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서 제 career를 쌓고, 제 자신의 사회적 position을 얻고, 명성을 얻는 일에 주력할거에요. 하지만 토어발트 같은 남편이 그것을 원할리는 없죠. 80년대에 사회 속에서 인정 받은 여성들이 '가정은 포기해라'라고 말한다면 저는 그러고 싶지 않은거죠. 과거와 상황이 달라지고, 좀 나아졌기 때문에 둘다 욕망하게 되는거죠. 저는 "No Kid"라고 외치는 코린느 마이어도 지지하고, 홀홀 단신의 한비야도 지지하고, 공동육아를 하고자 힘쓰는 아주머니들도 지지해요. 전업주부를 선택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는 친구들도 지지하구요. 하지만,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건, '동일한 선택을 한' 남자들과는 비슷한 희생과 비슷한 권리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현실은 결코 녹녹치 않거든요. 저도 노라가 부럽기도 하지만, 노라의 심정에 대해서 아주 많이 공감하고 그녀를 지지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 같아요.

4. 유모와 하녀도 사회의 일원이면서 가정의 일원이다. 맞아요. 그리고 빨간 그림자님이 잘 보셨듯이 노라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녀, 유모, 아니면 단순한 하급 노동에 불과 할 겁니다. 한번도 커리어를 가져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그녀가 아무리 귀족출신 여성이라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거지요. 저는 일을 그만둔지 딱 1년 되었습니다. 남자들에게 가정생활에 신경써 줄 것을 요구하면 "회사에만 목숨 바쳐도 힘든 세상"을 탓하며 한숨을 쉽니다. 저도 거기에 동의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저 같은 경우는요? 업계일이라는게 몸 담고 있을 때는 바뀌는 것 같지 않지만, 자리를 비우고 나면 휙휙 바뀌는 것입니다. 다들 목숨을 내놓고 일해도 모자랄 판에 석삼년 쉬고 복귀하기는 어려워요. 했다손 치더라도 그 공백을 무시 못하죠. 공백을 무시한다 치더라도 어린이집에 맡긴 아이를 돌보는 것도 제 일이죠. '가정, 아이, 일'이라는 같은 조합을 선택한 남편과 나는 같은 결과를 가질 수 있을까요?

5. 저는 계급과 관련없이 '여성이기 때문에'지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박근혜가 독재자의 딸이고, 보수의 앞잡이라 하더라도 그녀가 여성이기 때문에 억압을 받는 부분이 있으며 저는 그 부분을 지지해 줄 수 있습니다. 일용직 노동자가 보수를 많이 받는 정규직 숙련노동자를 노동자이기 때문에 '노동자로써' 지지하고, 어렵게 사는 제 장애인 친구가 재벌가 출신 휠체어 장애인이 국회위원으로 나온다면 그를 '장애인으로써'지지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봅니다. 그건 박근혜의 정치적 노선을 지지하는 것과 (가상 존재이지만) 재벌출신 장애인 국회의원의 친재벌 정책을 지지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억압이 없는 노라가 '여성으로써 받는 억압'을 자각했을 때, 저는 그 자각에 마구마구 박수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자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자각은 가치가 없고 철이 없는 것이다'라는 김규항 식의 논리에는 절대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러한 논리는 결국 '여성이 받는 억압'자체를 지워버리는 논의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6. 제 긴 의견을 가치있게 생각해 주시고, 또 의견을 구하시고 하는 것 너무 감사해요. 제 말에 귀 귀울여 주시는 분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막 행복할라고 그럽니다.



빨간그림자 08/04/29 12:42 R X
라이님의 글을 읽고 나니 제 마음속에 꼬여서 헝클어져 있는 싵타래가 서서히 풀려나가는 것 같아요. 맞아요, 알고 있었는데...... 여성주의라는 이름이 그토록 아름답고, 매혹적이었던 것은 억압받는 모든 존재들과 연대할 수 있다는 점이었는데......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삶, 각자의 자리에서 보다 행복해질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한다는 점이었는데...... 그 넓은 포용력, 관대함,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지지. 내가 그걸 분명히 알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어째서 길을 잃고 헤매기 시작했던 것인지. 자본의 논리로, 욕망의 논리로 삶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순간 사람이 필연적으로 피폐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디선가 잃어버린 감정이 다시 집으로 돌아온 것 같아요. 하늘 아래에서 살아 숨쉬는 모든 생명에 대한 사랑과 지지. 거대한 어머니. 내가 그걸 알고 있었는데... 내가 그걸 닮고 싶어했는데... 어째서 노라와 나를 적대적 위치에 두고, 경쟁 관계에 두고 있었는지. 그토록 자연스럽게, 그토록 아무렇지도 않게. 나의 이기심과 욕망이 모든 걸 압도하여 상대의 삶과 고민과 저항까지 무가치하게 만들어 버릴 정도였다니. 가슴이 아플 정도네요.

마음이 바싹 말라있었나 봐요. 세상에 부대끼다 보니 어디선가 길을 잃고 있었나봐요. 조금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서. 조금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주변 그 누구도 부추기지 않았건만 홀로 마음의 욕망에 길을 잃고... 이기심에 먹히고... 심지어 사람을 재화로 보고 있고. 소중한 사람들인데...... 내 남편과 내 아이, 나는 분명 그들을 사랑할텐데. 단지 행복해지고 싶은 것 뿐인데. 노라는 단지 행복해지고 싶어서인데, 지금 그녀가 처해있는 상황이 어떠하던간에 단지 그녀는 행복하지 않은 거고, 그래서 집을 나오려고 하는 것인데. 내가 그녀를 시기하고, 질투하고, 비판하고.

마음이 길을 잃으면 무서워지네요. 조금 더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말이예요. 삶에 대해, 사람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가진 포용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말이예요. 욕망의 논리에 전복되지 않도록 마음을 잘 간수해야 할 것 같아요.

오히려 엄청나게 도움을 받고 있는 건 저랍니다. 전 종종 방향 잃고 헤매고 그러거든요. 그럴 때 지켜봐주고, 일깨워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인걸요. 이야기를 하다보니 저도 모르고 있던 밑바닥까지 걸어가 보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이제 같은 곳에서 길을 잃지는 않을테니까.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제가 한 작품을 사랑할 수 있게 문을 열어주신 점에 대해서도요.

(참, 라이님과의 코멘트 대화를 그대로 긁어서 포스팅으로 올려도 될까요? 이번에 올린 공연 리뷰에 대한 반성 겸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나름대로의 고민거리도 던져줄겸. ^^)



라이 08/04/29 15:45 X
따뜻한 답글 감사드립니다. 집안에 들어앉으면서 힘들었던 일 중의 하나가 세상과의 소통이 하나의 패턴(비슷한 처지의 아줌마들과 가사,육아,친정,시댁,남편에 대한 수다를 떠는 것)밖에는 남지 않게 된다는 것이었거든요. 이건 절대 의도적인게 아니라, 물리적으로 가능한 소통이 그것 밖에 없어서 그래요. 그래도 인터넷이 있어서, 읽은지 벌써 6~7년은 되었을 인형의 집 이야기도 하고, 이론으로 배울 때는 이해가 안 갔는데 생활로 깨달으며 익히고 있는 페미니즘 얘기도 하고, 너무 좋아요. 인터넷이라는 문명의 이기와 빨간 그림자님이라는 소통의 상대자에게 감사드립니다.

빨간그림자님 마음이 바싹 마르다니요. 노노. 전 그렇게 생각 안해요. 무조건 포용의 마음으로 가는 게 능사는 아니에요.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또 맞닥뜨리는 일들을 자신의 욕망으로 다시 치환해서 볼 줄 아는 시선이 여성에게 아주 중요하다 생각해요. 빨간그림자님은 포용력과 이해심, 게다가 욕망에 솔직할 줄도 아는 분 같아요. 그래서 빨간그림자님의 글을 보면서 아주 유쾌하고 즐거웠던 것이랍니다.

포스팅을 올리는 것이야 저는 괜찮습니다. ^^ 저도 빨간 그림자님 덕분에 제 생각을 정리해 보는 기회를 가졌는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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