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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일정: 2008년 7월 15일~ 8월 24일(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2008년 9월 6일~ 11월 2일(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공연시간: 평일 8시/ 주말 3시, 7시반
(러닝타임 인터미션 포함 2시간 반 가량)
티켓가격: 전석 5만원
원작: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작, 작사: 마이클 존 라키우사(Michael John Lachiusa)
연출: 하비에르 구티에레즈(Javier Gutierrez)
- CAST -
모리토/남편/회계사: 양준모
경비원/신부: 강필석
케사, 아내, 여배우: 차지연
강도/기자: 홍광호
영매/모니카 이모: 박준면
http://www.seewhatiwannasee.co.kr/
♬ Morto
1 . 투덜거림으로 시작하기
마이클 존 라키우사는 이 뮤지컬을 일컬어 '지적인 뮤지컬'이라 말했다고 합니다. 보도 기사들도 '지적이고, 철학적인 무대'라는 말을 많이 하고요. 하지만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덤불 속>은 이미 구로사와 아키라가 <라쇼몽>이란 영화로 만들어서 세계 만방에 떠벌린 이야기인 걸요. 즉, 유니버셜한 내용입니다. 저는 이 뮤지컬 작사,작곡가가 류노스케를 혼자만 읽어본 것처럼 행동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목격자들이 서로 다르게 이야기하는 내용은 영화로 만들어져 일본 영화를 세계에 알리는데 기여한 작품이기도 하고, 1927년에 죽은 류노스케의 경우 당시 식민지 조선 문학에도 꽤 영향을 미쳐서 비슷한 작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김남천의 <장날>이 그렇죠.
이 뮤지컬은 세 가지의 작품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1막은 1막대로, 2막은 2막대로, 중간 연결하는 도입부는 도입부대로 독립된 이야기가 나옵니다. 류노스케의 3가지 단편을 가지고 작품을 만든 까닭입니다. 보도자료를 보면 <덤불 속>, <용>, <케사와 모리토>라고 되어있습니다. <용>의 경우는 국내에 번역이 되지 않은 단편이고, <케사와 모리토>는 원작의 이름이 <월식>입니다. 단편들이 5~6페이지 밖에 안되는 짧은 글들이어서 작품 역시 퀄트처럼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는 차라리 이 셋을 하나로 합치기라도 했으면 뭔가 '새로운 시도'를 발견했다고 박수를 쳐줄 마음이 생겼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각기 다른 이야기들을 배열해 놓았을 뿐입니다. 배우들이 1인 다역을 하는 것은 단순히 작품이 여러개여서 그래요. 순전히 삐딱선을 타는 개인 감상으로는 이건 뮤지컬 워크샵으로 만들 규모의 공연이 아닌가 싶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저는 이 뮤지컬이 류노스케의 단편 세 편을 서양식으로 번안, 개작한 것 외의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잘 모르겠습니다. <덤불 속>의 경우는 번안 외에는 의미가 없고, <월식>의 경우는 오히려 이야기가 단순해 졌습니다. <용>이라는 단편은 원작을 안읽어도 될만큼 이야기가 구태의연한 편입니다. "인간은 모두 보고 싶은 것만 본다"라는 테제가 깜짝 놀랄만큼 신선한 것도 아니고요. 이미 수없이 많은 영화, 소설에서 나왔던 주제입니다. 오히려 신선하기로 치면 놀란 감독의 영화 <메멘토>가 주제, 형식, 내용면에서 훨씬 뛰어납니다. 류노스케 원작을 놓고 생각하면 그냥 원작을 극으로 바꾼 정도입니다. 제게는 평이하다고 느껴지더군요. 커다란 울림을 형성할 만큼 철학적으로 난해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는가를 생각해 보면 역시 얄팍합니다. 그건 원작이 낡은 탓이기도 합니다.
1920년대 삘의 류노스케의 작품을 읽어보면 김동인이나 이광수를 읽는 것과 엇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당시에는 새롭고, 근대적이었지만 이미 근대화가 진행된 현재의 감각으로는 평이하고, 조금은 유치하게 느껴지죠. 류노스케의 천재성을 인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독자가 1900년대의 일본으로 돌아가 그 지평에서 그의 작품을 읽을 수 있을 경우입니다. 현대적 시각으로 보면 이런 단편은 웹이나 블로그만 돌아다녀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바꿔말하면, 그만큼 류노스케가 앞서 있었다는 뜻이지요. 100년전의 인물이 평범한 현대인과 동일한 사고 방식을 하고 있었다는 말이 되니까요. 그래도 현대인의 시선으로 평범한 건 평범한 거고, 특이하지 못한 건 특이하지 못한 겁니다.
그래도 시도에는 의미가 있지 않은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동의합니다. 류노스케의 단편 조각들로 뮤지컬을 만들지 못하라는 법은 없죠. 하지만 쉬운 방법이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원 텍스트가 있다고 하더라도 뮤지컬 <돈키호테- 맨 오브 라만차>의 경우는 얼마나 공이 들여 쌓아간 텍스트던가요. 이쪽이 제 취향에 더 부합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씨왓 아이워너 씨>의 경우에는 인색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 사실은 이 뮤지컬이 스스로를 '지적이고, 철학적인 뮤지컬'이라고 표방하지 않았으면 이런 마음이 들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 수식어를 감히 가져다 붙이기엔 만용이었다고 보입니다. 관객이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고,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가정한다면야 그럴 수도 있겠지만.... 관객의 지적 수준을 미리 상정하는 것도 좀 이상하지 않나요. 제가 다른 작품도 아닌 너무 오래전의, 클래식한 일본 소설을 가지고 거의 그대로 무대화한 상황에서 나온 이야기들이어서 그렇습니다. 차라리 아방가르드로 치달았으면 평가가 달랐겠죠.
예를 들면 이런 거죠. <미와 예술에 대한 새로운 탐구! 극한의 예술을 보여준다!>라는 뮤지컬인데 가서 보니까 김동인의 <광염 소나타>나 <광화사>면 당혹스럽잖아요. 고전이 되다 못해 케케묵어서 요즘 이런 단편은 고등학생의 습작이면 모를까 프로 작가가 시도할 부분이 아니죠. 새롭게, 파격적으로, 참신하게 변주한 것이면 또 모르겠으나 작품을 그대로 옮겨서 무대화 했다면 너무 안이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여려울 것 같습니다. 무대 디자인만으로 텍스트의 심각한 고전성이 극복되는 건 아니죠. 공연의 퀄리티를 지적하는 게 아니라 이 공연이 제기하고 있는 이슈의 참신함을 말하는 것 뿐입니다.
2 . 정갈하게 다듬어진, 깔끔한
앞에서 원 텍스트와 그것을 재해석해 내지 못한 한계에 대한 투덜거림을 무시하고, 순전히 공연적인 측면에서만 보자면 참 정갈한 무대와 연기, 넘버들이었습니다. 가장 짧은 에피소드인 <케사와 모리토>가 이미지적으로 가장 아름다웠던 것 같습니다. 케사와 모리토, 두 사람의 의상도 그렇고, 넘버도 그렇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입니다. 원작에서는 두 사람이 징글징글할 정도로 내면이 꼬여있는데 비해 상대적으로 이 작품에서의 케사와 모리토는 단순합니다. 즉, 이미지를 전달하는 인형 역할을 하죠. 1막 시작할 때는 케사가 넘버를 부르고, 2막 시작할 때는 모리토가 넘버를 부릅니다. 두 사람은 오늘밤 만나서 서로를 죽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내연의 관계에 있는 케사가 모리토를 죽이느냐, 아니면 반대로 모리토가 케사를 죽이느냐. 장면을 지배하는 것은 두 사람의 일본적인 복장과 낮고, 음울한 배우들의 목소리입니다. 굉장히 강렬한 이미지인 건 사실인데 그걸로 끝나는 느낌입니다.
막 전환에 대해 잠깐 이야기하자면 1막에선 중앙의 사각 무대는 네 면이 모두 종이에 둘러쌓여 있고, 배우들은 각각의 면에서 안을 들여다보며 종이를 찢어냅니다. 2막에서는 사각형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도록 종이가 걸려있고, 배우들이 와서 양 귀퉁이를 찢어냅니다. 관객석 위에는 사면에 스크린이 달려있습니다. 좌석에 앉은 관객은 자기 머리 위의 스크린 만큼은 볼 수가 없습니다. 의도된 시야장애인 셈이죠. 무대 디자인의 의미를 해독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씨왓 아이워너 씨>에 참여한 뮤지컬 배우들이 워낙에 내노라 하는 배우들이어서 노래와 연기가 안정되어 있었다는 것은 지적할 필요도 없는 부분이겠지요. 단지 저는 작품 자체가 소품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던 편이라 만약 이 배우들과 스탭들이 다른 작품에서, 다르게 모였더라면 어떠했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현재로서는 투여된 자원들이 과잉일 만큼 많은 것 같습니다. 극장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이고, 배우들도 퀄리티가 높고, 무대 디자인도 그렇고. 받쳐준 것들은 많은데 원작의 리소스 자체가 너무 적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2막에서 믿고 있지 않던 기적을 체험하는 에피소드에서는 배우들이 모두 합창을 하게 되는데 볼륨이 너무 커서 소리가 예쁘게 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배우들의 노래가 지르는 삘로 나가는 것은 사방으로 트여있는 무대여서 그런 것 같아요. 배우에게 사운드 모니터링이 안될 구조가 아닌가 싶거든요. 소리가 완전히 공기중으로 퍼지기 때문에 다른 배우의 소리를 들으며 감을 잡기도 힘들 것 같고요. 물론 대본이 비약이 심한 상태에서 극한으로 치닫기 때문에 배우들이 그 감정의 극을 메우느라 과잉이 되었을 수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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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히 이 포스터를 보고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원작이 아쿠다카와란 걸 보고도 다른 거겠거니 하고 그저 볼까 말까만 고민하던 무식한 처자, 여기서 땅을 칩니다. 〈덤불 속〉이라면 그냥 구로사와 감독의 영화와 소설 읽은 걸로 만족하고 싶네요. 정말 오래되고 인구에 회자되는 작품이다 보니 실제로 변주된 작품을 많이 보지 않았는데도 왠지 '또냐?' 하는 생각까지 들어요. 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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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공연 기간이 많이 남아있으니까 할인표가 돌아다닌다면 한번 도전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깔끔한 공연인 것은 사실이니 '신선함'이나 '새로움'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면...... 음...... 저는 이 공연은 배우에 대한 애정이 있는 관객이 아니라면 작품 자체로 매력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열혈 마니아던가. 티켓 가격대 성능비로는 차라리 <쓰릴미>쪽을 추천합니다. 아무튼 포스터가 예쁘다는데는 동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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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릴미' 쪽은... 빨간그림자 님도 그렇고 지난해부터 여기저기서 많이 보고 한 번 볼까 하였으나 그 유명한 김무열 씨 공연이 워낙 난리라 표를 구하기도 어렵고, 구하려면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어야 하더라고요. 한 번 보고 나서 미쳐 있다면 그럴 수 있을 듯한데, 첫 시도로 그렇게까지 신경을 곤두세우기는 힘들어서 어째 영 포기하는 분위기예요. 엥.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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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그리고 무대, 배우들의 노래..
이러한 면들이 더 깊게 남았었어..
특히 그 무대사용은 무슨 국제예술제에 출품작같았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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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디자인이 서울국제예술무대에 나올 법했다는 것도 동감.
그래서 나는 오히려 식상하던데.
음.... 역시 이 뮤지컬은 뮤지컬 장르 내에서의 상대 비교가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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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내에서 보기엔 굉장히 신선한 것 같아.
그래서 그런지 내용은 빈약할 지라도 "내가 뭘 놓친거야! 그게 뭔데!!" 이런 마음이 든다고할까나.. (모 양의 감상..인데 나도 동감..)
그리고 난 케사와 모리토의 노래가 가장 맘에 들더라. 현대음악같은 그런 느낌도 들고 묘하게 매력있더라구. 음악적으로 굉장히 매력있었던 작품이야. 더군다나 부르는 배우들도 가창력이 좋으니 더더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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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har님^^, 모 양이란 건 전가요, 설마? 헤에.
딱 저런 기분이 들었고, 그 이유는 80%가 <제일 지적인 뮤지컬>이라는 홍보문구에 있는 듯... 무대 사용의 암호를 해독하는 일을 즐기지 못한 게 좀 아쉽습니다. 역부족이었어요-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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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 대해서는 영역을 한정시켜서 봐야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 그런 관점에서 작품에 접근하는게 나을지도. 리뷰 2장을 살을 덧붙여야 겠구나. 덕분에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내 시선에 균형이 맞춰질지도 모르겠다.
케사와 모리토 노래가 좋다는데는 나도 한표. 정말 좋더라.
그런데 사실 난 이 뮤지컬에서 그 넘버 한 곡만 좋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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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양~ 여기서 보니 더 반갑네~~~
자네말이 맞아~ 너의 감상을 인용한것이라네~
그림자양// 아직까진 어떤 노래가 남았는지 기억이 별로 나지 않아. 워낙에 첫곡의 파워가 강해서 그런가봐.. 24일 보러갈려고 했는데...아무래도 두산가서 봐야할 듯.
두산은 2층이 없다던데 말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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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이 공연 미워할래요. --;; 전석 5만원이라는 만용은 도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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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작품이 생각 이상으로 소품인데 투여된 자원들이 훨씬 많은 것 같아요. 극장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이고, 배우들도 퀄리티가 높고, 무대 디자인도 그렇고. 받쳐준 것들은 많은데 원작의 리소스 자체가 너무 적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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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이 공연 보다가 2막에서 결국 잤습니다. ;; 인터미션 때까지만 해도 자유석으로 다시 와서 무대 전체와 배우들 동선들 체크하면서 다시 봐야겠다 싶었는데, 2막 중반쯤 되니 슬슬 화가 나더군요.
첫번째는 빨간그림자님도 말씀하신 바 여기저기서 우려먹을 대로 다 우려먹은 그 주제를 마치 대단히 신선하고 철학적이며 깊이있는 양 잘난 척하는 태도. 사실 전 아쿠카다와 류노스케의 원작소설을 읽지도 않았습니다만, 그 주제란 것은 말씀하신 대로 백년 가까이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주제 아니겠습니까. 소위 '포스트모더니티'의 핵심이기도 하고, 이미 제목에서 너무나 친절하게 요약이 돼 있기도 하고요. 2막의 이야기 역시 굉장히 어깨에 힘을 주지만 굉장히 작고 짧은 이야기... 이 주제 역시 온갖 예술매체라면 항상 다루는 주제가 아닌가 싶은데, 이 뮤지컬이 그걸 대단히 새로운 관점으로 새로 시도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요... 특히 2막은 심지어 시간을 채우기 위해 대사를 늘이고 또 늘이고 노래를 늘여놨다는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서너 가지 에피소드 중 하나로 들어갈 순 있어도 막 하나를 구성하기엔 상당히 짧은 이야기를 너무 길게 늘여놨다는 느낌인 게죠. 인내심이 극한에 차오를 무렵 결국 굉장히 혼곤하고 기분나쁜 잠으로 잠깐... B열 맨앞자리에 앉아서는, 배우들 보기 무지 민망하긴 했는데...
두번째는... 전 김선영/박준면/홍광호 캐스팅으로 보았는데요. 1막에선 대체로 재즈넘버들인지라 김선영 씨의 그 기교 가득한 보컬이 상당히 잘 어울린다 느껴졌습니다만, 2막으로 가니 이건 뭐 배우들이 서로 소리지르기 경쟁이라도 하듯 노래를 질러대기만 하더군요. 그 대단한 배우들이 작품 하나를 함께 공연하는 게 아니라 저마다 독창대회를 한곳에서 경쟁적으로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제가 영화에 더 익숙한지라 소위 그 '연극적인 연기'를 별로 안 좋아하는 것도 큰 몫을 하는 것 같은데, 김선영 씨의 보컬과 연기는 제 취향에는 너무, 과하더군요. (이건 제 취향이 후졌을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습니다만. ㅋㅋ 매체 차이를 이해 못 하는...)
7월 말일 봤으니 초기라면 초기랄 수 있는데, 그 뒤로 호평과 찬사의 리뷰들이 나오고 있는 데다 제가 보다가 잤다고 하면 그 무슨 어이없는 소리를 하냐는 듯 반응들을 하시길래 다시 보고 판단해야 하나, 갈등을 하고 있던 중에 빨간그림자님 리뷰를 보니 어흑...ㅠ.ㅠ 저 심지어 아직 리뷰도 못 썼어요. 재공연을 보면 10% 할인도 해준다는데... 공연장도 집에서 훨씬 가까워졌고요. (대신 캐스팅은 필히 바꿔서...)
참. 제가 더 슬며시 빈정상했던 건. 그때까지 프로그램이 안 나왔더란... 그러나 제가 이 공연을 미워하고 있는 건 절대 아닙니다. 상당히 다양한 장르를 커버하고 있는 곡들도, 정신없이 산만한 무대와 배우들의 동선도 꽤 흥미로웠거든요. (그러니 자유석으로 다시... 같은 생각을 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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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벽에 빨간그림자님 리뷰를 보고 흥분해서는, 앞뒤 안가리고 두다다다 써나가다가 포스트로 써야 할 길이의 글을 댓글로 붙이는 만행을 저질렀군요.;;;;;;
제가 투덜대며 이거 리뷰 어찌 써야 하나, 어느 수위로 조절해야 하나 재고 있던 내용을 빨간그림자님이 이미 콕콕 집어주셔서, 더더욱 리뷰 쓰면 안 되겠단 생각까지 들지 뭡니까. 흐;; 저 '지르기 경연대회' 분위기는 공연 계속되면서 나아졌을 수도 있는 거고요. (근데 요거, 티켓값을 회사에 청구한 상태라 어쨌든 써야 돼요. 흑)
ps. ashar님, 반갑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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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한번 공연에 대한 애증을 풀어놓고 나면 정화(!)가 되는 법이랍니다. 이젠 공연 리뷰를 조금 더 잘 쓰실 수 있으실 거예요. 저는 혹평이 나올 것 같은 공연에 대해서는 기사를 쓰는 게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거부감이 심하게 드는 경우는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안전장치가 필요하더라고요. 제 경우는 존대말이 그러한 장치인 것 같아요.
그나저나 지적하신 부분들에 대해서는 여러모로 생각해볼 만한 것 같습니다. 배우들의 노래가 지르는 삘로 나가는 것은 사방으로 트여있는 무대여서 그런 것 같아요. 배우에게 사운드 모니터링이 안될 구조가 아닌가 싶거든요. 소리가 완전히 공기중으로 퍼지기 때문에 다른 배우의 소리를 들으며 감을 잡기도 힘들 것 같고요. 물론 대본이 비약이 심한 상태에서 극한으로 치닫기 때문에 배우들이 그 감정의 극을 메우느라 과잉이 되었을 수도 있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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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헤~N.님 저도 반갑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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