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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끝났다. 무엇이 어찌 되었든 끝났다.
첫 희곡이 무대에 올라간 소감은 즐거웠고, 좋았고, 짜릿했고.
내가 쓴 글이지만 이제 스스로 살아 돌아다닌다는 느낌을 받았다.


2.

연출이랑 공연장 앞에서 담배를 폈다. 오라버니 왈. 수업료를 비싸게 치뤘네.
연출이 얻은 것이 있고, 잃은 것이 있다면 경험 부족인 내게는 모두 얻는 것 뿐.
텍스트가 무대화가 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차이들.
애초부터 비극을 설정하고 이야기를 끌어갔다면 현재와 같은 문제는 생기지 않았을 거다.
비극적 결말을 피하려다 보니 이야기가 멈춰 버린다.
끝까지 진행했다면? 산산조각이 나서 비극적 영웅들이 되었다면?
최소한 지금보다는 훨씬 자유로웠을거다.
그러나...... 정말 방법이 없는 것일까.
남은 숙제들 그리고 남은 시도들.


3.

연극이 굉장히 발걸음이 느린 장르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체감하는 것은 처음이다.
무대에 올라가서 배우가 관객을 만나기 전까지 텍스트에 대해 정확히 알기가 힘들다.
이대로라면 공연되지 않은 희곡은 완성되지 않은 이야기가 된다는 뜻인데......
사이클이 이렇게 길고, 거대해서야 혼자서 무언가를 한다는 건 의미가 없겠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할까.
자급자족의 글쓰기 세계가 이런 식으로 끝나는 건가.


4.

공연을 보러 와주신 분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m(__)m
제대로 이야기도 못하고, 못듣고 그냥 얼굴만 보고 말았네요.
공연 보고 난 후의 수다들을 남겨주시면 감사, ㅋㅋ.
어차피 가까운 지인들이니 몰래몰래 속닥거리면서 조언을 받는 것도 즐거울 것 같아요.
단, 제 블로그가 본문 내용과 댓글이 검색이 되더군요. (방명록은 검색 안됨)
고로, 글을 남겨주실 때는 작품 이름을 빼주셔요, ㅎㅎ.

이 글의 관련글(트랙백) 주소 http://redshadow.pe.kr/tt/rserver.php?mode=tb&sl=793

좋은사람 08/09/29 21:20  R X
작품을 무대에 올리셨군요. 축하드립니다.
무대에 올라간 자신의 작품을 보는 (초보)극작가들은 조금 미묘한 감정이 되는 것 같더라구요. ^^

전 대학때 워크샵으로 15분짜리 장면 하나 만들고, 그걸 연출파트 친구가 연출하고 배우파트 친구들이 연기하는 거 보면서도 울화통을 터뜨렸었죠. ^^;; 그 대사는 그 느낌이 아니라며...
대놓고 말은 못했지만, 그 소규모 인력 풀에서 맘에 드는 배우들로 캐스팅 못 한 것마저 속상하더라구요.

다음부터는 슬쩍 초청도 좀 해 주시고 그러세요. :-)

빨간그림자 08/09/30 06:19 X
전 굉장히 운이 좋아서 좋은 연출을 만났답니다. :-)

염려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고요. 단지 작품이 문제가 있긴 한데...... 어차피 단 시간내에 고칠 수 없는 부분이어서 이번 공연 내에는 가능하지 않았을거라 생각해요. 무언가가 더 있어야 한다는 느낌. 이야기가 중간에 멈춰버렸다는 느낌이 있어요. 멈춘 것인지 회피한 것인지. 그건 장르를 어떻게 설정했는가에 따른 문제인 것 같기도 하고. <한여름밤의 꿈>인지 <로미오와 줄리엣>인지를 정하지 못했다는 느낌.

부산 공연이어서 서울에 있는 친구분들에게 오라고 하기가 심히 죄송했답니다. 서울에서 공연을 하게 된다면 보러 와주세요. 은근슬쩍 공지할테니. 단, 초대는 못해드리고 표를 팔아주셔야 할거예요. 이번에 연극협회 회장님에게 혼 났어요. 유료관객은 정말 몇명 안되고 모두들 초대라고. 마구 혼났음, 흑흑. ㅠ.ㅠ

magpie 08/09/30 09:14  R X
로미오와 줄리엣 vs 한여름밤의 꿈. 정말 그러네 @_@
근데 정말 이 블로그 글이 검색되긴 해. 내 아이디/닉네임은 대체로 일반명사라 구글링해도 딱히 나오는게 없는데 나름 고유명사인 네이버 아이디는 이곳이 걸려나오더라는;
빨간그림자 08/09/30 10:53 X
난 본문은 검색되는 줄 알았지만 댓글도 검색되는 줄은 몰랐지. 몰래몰래 댓글에다가 공연 이름을 썼더니 떡 하니 검색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 낮말은 네이버가 듣고, 밤말은 구글이 듣는다더니 역시......

큰 수확은 내 어휘 구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는 점이지. 주변 사람들이 내게 주어, 동사를 정확히 갖추어서 말을 한다고 하던데 내 등장인물들이 그러하더군. 비문이 없는 수준이 아니라 통사 구조를 너무 갖추더라. 어휘가 장르랑 맞지 않아서 튀기도 하고. 너무 말이 우아하달까.

그런데 나는 <로미오와 줄리엣>쪽은 아닌 것 같거든. 무엇보다 내 자신이 동성 연애나 연상연하 커플이 왜 문제가 되는지를 동의할 수 없기 때문에 비극으로 풀 수는 없을거야. 시대착오적이 되어버리니까. 희극이 누군가를 희화화 시키는 작업이라면 대체 이 작품에서 놀림을 받아야할 대상이 누구인가를 생각해 봐야겠지.

misha 08/09/30 09:47  R X
몇 안 되는 유료관객 중의 한명이어서 마음이 좀 편하네요(smk군까지 하면 두 명^^).
[로미오와 줄리엣]/[한여름밤의 꿈]. 적절한 비유인 것 같아요. '코미디'에 계속 미련을 두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느낌이었어요. 좀더 공연시간이 길었더라면 무게감을 약간 분배를 할 수 있었으려나요. 한시간 좀 넘는 시간 동안 담아내기엔 조금은 무거운 주제가 아니었을지 하는 생각도 듭니다. ^^;
빨간그림자 08/09/30 11:14 X
코메디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 원래 코메디라고 쓴 글이고, 코메디라고 연출한 작품이랍니다. (쿨럭;;) 앞의 삽질 포스팅에서도 썼지만 그 작품이 비극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거죠. 그러다 보니 시민회관 공연에서는 코메디에 대한 강박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이고요. 배우도, 연출도 후반부의 비극적 결말을 의식하고 있다 보니 무리수를 띄울 수 밖에 없었던 거고.

그래서 고민하고 있어요. 이를 어떻게 해야하나. <한여름밤의 꿈>이라면 무엇이 더 나와야 하는 것일까. 연출이 그런 말을 했어요. 구조가 역행하고 있다고. 코메디가 되려면 사실은 정상적인 커플이 있고, 그걸 방해해서 막으려는 역방향의 인물이 있어야 하는 거고, 그래서 소동이 일어나다가 정리되어 행복한 결말로 끝났어야 했다고요. 아마 소희와 석문이 서로 사랑하는데 그걸 필몽이 끼어들어 방해한다거나 삼순이와 만석이가 좋아하는데 삼순모가 끼어들었다면 헤프닝이 나올테고 마지막에는 해피엔딩으로 끝났겠죠. 하지만 이 구조라면 제가 처음부터 글을 안썼겠죠.(이 무슨 캐보수적인 얘기를. -_-;)

필몽과 석문이 서로 사랑하는데 소희가 끼어들어서 결국 두 남자가 해피엔딩으로 끝났다면 역시 희극이긴 한데 관객이 어디까지 받아들여 줄 지가 염려가 되긴 하네요. 삼순이가 만석이를 새 아빠로 받아들이는 과정 또한 그러하고. 장벽이 너무 클까요? 비극으로 다루기엔 시대착오적인데 희극으로 다루기에는 진보적이네요. 코메디는 참 보수적인 장르인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구하는 것은 <한여름밤의 꿈>. 해피엔딩을 찾아내야죠. 이야기 구조를 들어 엎어서라도.

http://blog.naver.com/lu77up 08/09/30 10:56  R X
축하드려요오~^^ 시작이 반이라고 일단 출발을 하셨으니 괜찮은 작품들을 쓰실 거라 생각합니다. 서울에서 공연하게 된다면 필히 시간내서 표 팔아드리죠~ㅋ
빨간그림자 08/09/30 11:33 X
아싸~ 유료관객 1명 예약. ^-^

玄雨 08/10/01 17:00  R X
못본게 못내 아쉬워요.
누님 첫 작품인데.. 팸플릿 하나 깨끗하게 구해서
싸인이라도 받아놓으면, 혹시 압니까.. 100년뒤 경매장에서 수십억에 팔릴지 ㅋ

저도 유료관객하렵니다 ㅋㅋ
빨간그림자 08/10/02 02:16 X
그런 민망한 소리를 잘도 하는구나, 아우야;;
아무튼 돈 많이 벌어서 누님 후원이나 하시게나.
그 전에 저작권법 때문에 줄기차게 문의를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날씨가 추워지는데 몸 건강 조심하고. ^-^

N. 08/10/04 09:41  R X
영화제 때문에 부산에 와 있습니다. 묘하게 엇갈렸네요. 서울에서 공연하게 된다면 모쪼록 제게도 꼭 알려주시어요. J.를 끌고 유료관객으로 보러가겠습니다.

"비극이 되기엔 시대착오적, 코미디가 되기엔 진보적" 이 말씀이 와닿습니다. 정말 그 경계란... 완성된 작품을 보는 사람과 달리 쓰는 사람에겐 그 경계와 정도를 정하는 게 무척 어렵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다만... 저는 관객들이 얼마나 받아들여줄까 많이 고민되시더라도 '지르세요'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잘 자요, 엄마> 볼 때 느꼈던 건데, 적어도 저한테는, 그렇게 끝까지 가버리는 게 훨씬 더 편하더라고요. 어떤 면에서냐 하면, 그냥 적당히 타협해서 멈춰버리면 끝나고 내내 찌뿌둥하고 갑갑하고 마치 뱃속에 똥이 더 들었는데 안 나와서 찝찝하듯 그런 불쾌감이 남더라고요. 연극이야 잘 모르지만 영화쪽에서는, 특히 국내 작품들의 경우 관객들을 의식해 적당히 주저앉는 경우가 많은데, 작품 전체가 그냥 확 빛이 바래버리는 느낌이더라고요. 이 작품은 관객을 믿고 끝까지 가버리는 게 훨씬 좋았을텐데 싶은 작품들이 한둘이 아니에요. 상업영화에서 그렇게 하기가 힘들다는 건 알지만... 일단 초중반에서 딱 호흡에 올라타고 나면 그 호흡으로 끝까지 쭈욱 가는 게, 다소 자신이 평소 가치관과 어긋나거나 해도 차라리 받아들이기 쉬운 면이 있지 않을까요. 뭐랄까,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기꺼이 공범자가 되는 기분이랄까요. 물론 그러기 위해선 초중반에서 그 '호흡'에 끌어들이는 배려가 있어야겠지만요.
빨간그림자 08/10/04 13:46 X
'끝까지 간다'라는 부분이 비극성인 것 같아요. 어떤 경계와 한계를 넘어가면서 코메디가 된다는 것은 힘든 것 같아요. 이 경우는 서술자라던가 프레임의 개입이 있어야 하는 것 같더라고요. 굉장히 비극적인 상황을 이야기하면서도 유쾌하려면 시점의 개입이 없이는 힘든 것 같아요. 그리고 연극은 시점이 들어갈 여지가 없기도 하고. 혹은 있는데 제가 모르는 방법이던가.

그리고 관객을 믿고 가야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크게 공감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 부분은 관객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만드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이야기하는 이야기의 지평 너머를 믿지 못해서 일어나는 것 같아요. 자기가 선을 못 넘는거지...... 그 순간 사실 관객 때문에 못 넘는 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성격 나쁘고, 사생활 엉망인 예술가들이 작품을 잘 만드는 부분이 이해가 가기도 해요. 극단을 스스스로 갈 수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작품도 갈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뱀발1. 이 메일 주소를 부탁드립니다. ^-^
뱀발2. 부산영화제에서 재미있는 작품이 있던가요?!

08/10/11 13:40  R X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N. 08/10/15 23:55  R X
<미쓰 홍당무>를 보는데 빨간그림자님의 이 글과 바로 위 덧글이 계속 생각났습니다. ... 한 마디로 하면 안 생긴 엽기적인 그녀여서 처절한데, 이게 분명 코미디긴 한데 어떤 면에선 또 비극이기도 하고, 어느 지점에선 한계를 훌쩍 넘어버리기도 하더라고요. 독특한 캐릭터 하나를 내세워서 코미디를 끌고가는 건 흔한 것이긴 하지만, 캐릭터에만 기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참 묘했어요.
빨간그림자 08/10/18 11:00 X
예고편만 봐도 왠지 '독특한 캐릭터'라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래서 꼭 보려고 하는 영화예요.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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