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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일시: 2008년 8월 19일~10월 12일
공연장소: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라이센스 제작: 에이콤 인터네셔널

대본 각색: 패트릭 발로우(Patrick Barlow)
연출: 마리아 에이큰(Maria Aitken)
협력연출: 캐롤라인 레슬리(Caroline Leslie)
한국 협력연출: 임영조
무대 디자인: 피터 맥킨토시(Peter Mckintosh)
동작 연출: 토비 세드윅(Toby Sedwick)

- CAST -

리처드 해니: 이원재
아나벨라, 파멜라, 마가렛, 농장 부인: 조수정
남자 1: 권근용
남자 2: 김하준

http://www.iacom.co.kr/


1 . 영화 <39계단>과 연극 <39계단>

1915년에 출판된 존 버컨의 <39 계단>은 여러번 영화화 되었고, 그 중에서도 특히 히치콕 버전이 유명하다. 줄거리를 요약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주인공 로버트 해니는 세계에서 가장 기억력이 좋다고 하는 '미스터 메모리'의 기억력을 테스트 하는 쇼를 보러 극장에 간다. 쇼가 한창 진행중일 무렵, 갑자기 들려온 총소리. 극장을 빠져나가는 인파에 뒤섞여 미모의 한 여인을 만나게 되고, 자신의 아파트로 그녀를 초대한다. 어딘가 모르게 불안해 보이던 여인은 자신이 국가 기밀을 빼돌리려는 스파이 집단에 의해 쫓기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날 밤 여인은 등에 칼이 꽂힌 채 살해 당한다. 이후 해니는 살인누명을 쓰고 쫓기게 된다.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여인이 단서처럼 남겨주었던 정체불명의 단어, 39계단을 찾아야만 한다. 스코틀랜드로 도주하면서 해니는 자신을 살인자라 믿고 있는 금발의 여인, 파멜라를 만난다. 우여곡절 끝에 파멜라와 함께 행동하던 해니는 오해를 풀게 되고, 스파이 조직의 기밀 유출을 막는다. 1930년대 작품으로 비교적 히치콕의 필모그래피 초기에 위치하는 영화이지만 히치콕 특유의 장치들- 수수께끼 여인, 누명을 쓰고 쫓기는 주인공, 맥거핀(MacGuffin; 작품 내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것처럼 말해지나 결국 별 의미가 없는 걸로 밝혀지는 수수께끼, 이 작품에서는 '39계단'이라는 단어가 그에 속한다), 감독의 까메오 출현 등을 읽을 수 있다.

영국의 공연 제작사 파이어리 엔젤(Fiery Angel)에서는 2006년 <39계단>을 연극화 하기로 결정한다. 마리아 에이큰이 연출을 맡았고 8월 킬번의 트라이싸이클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그리고, 2년 뒤인 2008년 8월 한국에서도 라이센스 공연이 이루어졌다. 영국 순회 공연과 한국 공연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면 굉장히 빨리 아시아 시장에 소개된 연극인 셈이다. 그만큼 이 연극이 가지고 있는 실험성과 대중성이 높게 평가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2 . 스릴러를 코메디로 덧칠하다

영화 <39계단>과 연극 <39계단>은 줄거리와 장면 구성이 거의 동일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히치콕의 영화는 긴박감을 바탕으로 한 스파이-스릴러 물이고, 연극은 영화의 코믹 패러디라는 점이다. 굳이 비교를 해보자면 <람보>와 <못말리는 람보>의 차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연극은 영화에 대한 애정 어린 찬사이자 패러디이다. 그러므로 히치콕의 스릴러적 분위기가 연극으로 이어지기를 바랬던 관객이라면 적잖게 당황할 수도 있다. 하지만 히치콕의 영화가 연극적으로 패러디 되었을 때의 위트를 킬킬 거리며 즐길 수 있는 관객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매력적인 작품임에 틀림없다.

원작을 그대로 연극화하지 않고, 패러디화 한 것은 근본적으로 매체의 차이에서 유래한다. 클래식의 반열에 든 히치콕의 영화를 연극으로 바꾸면서 스릴러의 분위기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이미 영화의 결말을 다 알고 있는 관객에게 결말의 반전만으로 감흥을 주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스포일러도 이런 스포일러가 없는 셈이다. 설사 관객이 작품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다고 해도 1930년대의 미스테리 스릴러물은 2008년엔 낡은 느낌이 들 수 밖에 없다. 이후의 수 없이 많은 모방과 각색을 통해 원형, 아니 클리셰에 가까운 장치들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장면 전환이 한계가 있는 연극에서는 수 없이 다른 장소를 지나가는 도망자의 이야기는 연출적 재앙에 가깝다.

연출가 마리아 에이큰은 무대화하기 어려운 원작의 장면들을 코메디의 전통 안에서 재현한다. 미스터 메모리가 등장하는 극장, 극장에서의 총격 장면, 아파트에서 살인, 경찰의 추적을 피해 기차에서 탈주하기, 헬리콥터의 추적, 황야로의 질주, 하수구로의 탈출 등의 다양한 장면 전환을 최소한의 소품을 통해 연출해 낸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소품은 커다란 박스 몇개들 뿐이다. 또한 배우는 모두 4명으로 주인공인 로버트 해니를 제외한 나머지 배역을 일인 다역으로 처리한다. 무려 130여명이 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빠른 장소의 변환과 그에 따른 캐릭터의 변화가 이 작품을 끌어가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장면 1


장면 2


장면 3


장면 4


장면 5


분명 기발하고, 재치있는 연극이지만 코메디가 효과적으로 먹혔는가에 대해서는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로 평가해야 할 듯 하다. 공연 내내 폭소를 터트리며 즐겁게 웃는 관객이 있는가 하면 썰렁한 유머들을 들어주기가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관객도 있었다. 평가가 갈리는 지점은 히치콕 원작의 패러디를 즐길 수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뿐만 아니라 영국식 코메디에 대한 호오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다. 국내 연출가와 각색을 거치지 않고 영국 연출가에 의해 막바로 국내 관객과 만났을 때 생기는 문화적 괴리감이 대사에서 날 것 그대로 전해진다. 영국의 스탠딩 코메디를 보았을 때 느껴지는 이질감과 유사한 감정이 이 연극에서도 느껴진다. '유머' 혹은 '코메디'가 '공포'나 '스릴러' 보다 훨씬 문화적 특수성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연극 <39계단>에 대한 가장 객관적인 평가는 '히치콕의 클래식 영화를 영국식 코메디로 패러디한 연극'일 것이다. 영국식 코메디라는 망원경에 입각해서 무대화를 시켰을 때 나올 수 있는 작품인 셈이다. 그러므로 '본래 히치콕 영화 보다 못하다' 내지는 '영화를 연극으로 잘 바꿨다' 등의 표현은 작품의 본질에 대한 동어 반복에 가깝다. 작품이 서 있는 지점 자체를 인정하고 들어간다면 연극은 매우 깔끔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무대가 수없이 바뀌는데도 암전은 짧았고, 역할을 계속 바꾸는 배우들의 등퇴장 동선도 매끄러웠으며, 배우의 무대 장악력은 떨어졌지만 감정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들이 아니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제 역할을 소화해 냈다고 보인다.

연극 <39계단>은 국내 관객이 드물게 만날 수 있는 색다른 연극이다. 그러나 이 연극이 국내 관객과 보다 친밀하게 소통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영화의 장면들을 연극으로 바꾸는데 필요했던 고민 만큼 한국 더 나아가 아시아권 관객들과의 소통을 고민한다면 히치콕 영화 팬과 연극 팬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본 기사는 프레시안 무비에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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