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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일시: 2009년 5월 9일(토)~ 5월 16일(토)
공연시간: 평일 8pm, 주말 3pm (월요일 공연 있음)
공연장소: LG 아트센터
극작: 헨리 입센
연출: 양정웅
음악: 장영규
제작: LG아트센터

- CAST -

페르귄트: 정해균
오세: 김은희
솔베이지: 강정임
도브레왕/ 베그리펜벨트: 전중용
초록 여인: 박소영
아니트라: 박선희
단추공/ 잉그리드: 김지령

그 외의 극단 여행자 단원들


1 . 상반기 화제작, 페르귄트

연극 부분에서 올 상반기 화제작은 분명 <페르귄트>였습니다. <페르귄트>라는 작품의 특수성도 그러하거니와 국내에서 창작되어 올라가는 대극장 공연이라는 점도 그랬고, 양정웅 연출의 신작이라는 점도 그러합니다. 작품, 연출, 극장이 모두 흥미진진해서요. 심지어 포스터도 무척 예뻤고요. 방 안에 붙여두고 싶은 공연 포스터를 만나는 게 꽤 오래간만입니다. 어디서 파는지 기웃거려 봤는데 구매하는 곳을 모르겠던걸요. 몰래 극장에서 떼어올까 심각하게 고민을 할 지경이었습니다. 마그리트를 연상시키는 중절모의 남자가 보여주는 비대칭성과 환상적인 엘프의 뒷 모습이 참 아름답게 조화된 그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연을 보고 온 주변 사람들의 평가를 들어보면 딱 5:5인 것 같습니다. 매우 좋았다는 사람이 있고, 매우 나빴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평가가 갈리는 원인에는 개개인이 갖고 있던 기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즉, 공연이 좋았다는 사람은 기대했던 것 만큼을 보았거나 그 이상을 만났고, 별로였다는 사람은 기대했던 것 이하를 본 경우인 것이지요. '기대치'라는 부분을 종이로 가려놓고 생각한다면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대중적이지는 않다' 정도가 정답인 것 같습니다. 좋던 나쁘던 소수의 사람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내는 작품이라는 느낌일까요.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관객의 스펙트럼이 생각보다 좁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공연이 좋던, 나쁘던 페르귄트, 양정웅, LG아트센터라는 세 가지 키워드는 호기심을 가지고서 관람하도록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제 느낌을 요약하자면 원작에 짖눌린 것 같다는 쪽입니다. 너무 방대하고, 난삽한 원작이어서 그걸 작품화하는데 무척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작품이 무대화하기 힘들다는 게 눈에 보일 정도입니다. 덕분에 배우도 간신히 무대를 지탱하고 있고, 연출도 그러해 보입니다. 그 힘겨움이 고스란히 전달되어서 관객석에서도 편치가 않습니다. 김치를 푹 익히듯 숙성의 시간이 더 주어졌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었고요. 제작을 LG 아트센터에서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공연이 더 많이 다듬어져서 재공연을 통해 발전되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주지는 않는지 궁금하더군요. 이전 한태숙 연출의 <이아고와 오셀로>에서도 느꼈던 것인데 도약이랄까, 한번 더 나아가서 작품을 바닥부터 재구성할 시간이라는 게 주어진다면 공연 레퍼토리가 사장되지 않고 생명력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2 . 이미지와 의미의 강한 결합

일단 양정웅 연출의 이미지 사용 방식이 조금 달라진 것 같습니다. 이미지에 상징들이 많이 주어졌고, 의미와 강하게 결합합니다. 양정웅 연출의 특징이 이미지 자체의 미감(美感)을 중시하는 경향이라고 생각하는데 의미와 많이 결합됩니다. 항상 이렇게 되기를 바랬었는데..... 색감만으로 승부를 하는 느낌이 든다거나 이미지 자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쪽이 다소 얄팍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렇게 이미지와 의미가 강하게 결합되는 걸 보니까 제 생각이 편견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듭니다. 조금 더 자유롭게 상상하고, 조금 더 마음 놓고 이미지들을 만들어내고, 조합했으면 좋았을거라는 아쉬움이 드는 걸 보면 말이예요. 이런 게 바로 변덕스러운 관객의 마음이라는 것이겠지요.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도 이미지나 오브제들이 진부하다는 지적이 나왔는데 저도 동감하는 쪽입니다. 텍스트에 충실하려다 보니 나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텍스트가 진부하다 보니(고리타분하다?!) 거기서 파생되는 이미지도 텍스트를 넘어서지 않으면 알레고리 자체에 머물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텍스트를 완전히 해체해서 재조립했어도 좋았을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막상 그렇게 했더라면 저는 보다 텍스트에 충실한 이미지들을 요구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번 공연은 저의 변덕에 대해 깨닫게 되는 계기였다고 할까요. 자신의 특기를 잘 살려고 작업을 잘하고 있던 연출가를 괜히 뒤에서 잡아끄는 힘으로 작용했던 비난의 축에 저도 살짝 걸쳐있었다는 느낌이 드네요.

여기서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봐야 할 모양입니다. 이 공연에 대해 무엇을 기대했는가. 아마도 이미지인 것 같아요. 페르귄트가 세상을 떠돌면서 만나는 순간순간들이 정신분석학적 코드를 담은 그림들을 보듯이 몽환적이면서도 분명한 이미지들의 조합이기를 바랐던 모양입니다. 관객을 압도하는 임팩트. 이미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전달되는 순수한 즐거움 같은 것이요. 지금은 알레고리가 굉장히 강하고, 그래서 이미지의 독창성 보다는 텍스트의 전달에 치중해 있습니다. 부제를 달면 바로 장면이 떠오르고, 대충 예상할 수 있는 그 장면이 무대에서 재현됩니다. <정신병원>, <이상한 트롤의 나라>, <배금주의 집단>, <비행기 사고> 등등. 각 장면마다 관객에게 전달해야할 주제가 있고, 패러디하고 있는 현실의 부분들이 있어서 순차적으로 보고 있노라면 늘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중세 로망스들을 읽을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한 것 같아요. 기사가 여러 곳에서 모험담을 겪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지 않습니다. 단지, 공간이 이동할 뿐이지요. 용을 잡고, 다음에는 트롤을 잡고, 다음에는 흑기사를 때려 잡고 등등. 페르귄트의 여행이 이와 비슷하다고 보입니다. 막판에 주물국자를 만드는 단추공을 만나기 전까지 시간이 흐르지 않습니다. 페르귄트와 솔베이지는 멈춘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두 사람은 소울 메이트가 맞습니다.

이 작품의 내용을 요약하면 페르귄트의 '자아찾기'인데 자아를 찾고 있다기 보다는 그냥 자기 자신인 채로 돌아다니는 쪽이 맞지 않나 싶습니다. 얘는 뭘 찾을 생각없이 그냥 돌아다니고 있었고, 단추공과 만나는 순간부터 시간이 흘러서 자아를 찾으러 다닙니다. 거기서부터 솔베이지와의 만남, 죽음까지는 얼마나 시간이 빨리 흐르는지 모릅니다. '자아찾기'가 주제인데 자아를 찾으려 하는 시간은 전체 3시간 중에서 30분이 안되는 것 같아요. 페르귄트는 왜 여행을 하고 있는 걸까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기도 합니다. 욕망을 쫓아 다녔다는 게 가장 근접한 대답으로 보입니다. 페르귄트를 파우스트와 비교하는 것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은 굉장히 비슷한 궤적을 겪습니다. 페르귄트가 유아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라면 파우스트는 지적 허영심이 충만한 노인네라는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요. 두 사람 모두 한 여자를 망쳐놓고 구원을 받습니다. 마르가레테와 솔베이지는 참 특이한 여자들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행 다니는 남자들을 기다리는 건 신세 망치는 짓이라는 반어법적인 주제를 전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웃음) 성질이 급한 우리나라 여성은 돌이 되어버립니다만은.

페르귄트와 솔베이지에게서 양정웅 연출이 새롭게 부여하고 있는 의미들을 찾아내기가 매우 힘듭니다. 재해석보다는 해석 그 자체가 더 중요했던 작품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개인적인 아쉬움이지만, 솔베이지라는 인물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지금 그녀는 데우 엑스 마키나로 등장합니다. "극이 끝날 때가 되었지! 나를 만나러 와라!" 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거든요. 솔베이지가 한 자리에 정지해 있다는 문제만은 아닐 겁니다. 세상이 변하는데 나는 안 변하겠다. 무조건 my way. 이 인물은 현대적인 관점으로 보면 기괴함이 초록 여인 못지 않습니다. 제게는 영화 <워낭소리>에 등장해야 할 인물로 보이거든요. 옆에서 트랙터를 몰아도 나는 소로 밭 갈겠다. 현대에 이런 인물이 있다는 건 자기 중심의 시계관을 가졌다는 측면에서 영웅적입니다. 이 인물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솔베이지가 관객에게 어떤 식으로든지 작은 교차점을 형성할 수 있었다면 작품은 그것만으로도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초록 여인이 솔베이지 보다 훨씬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쉬워서..... 다시 한번 솔베이지는 참 희한한 캐릭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3 . 배우들의 열연, 열연, 열연 그리고...

정해균씨의 페르귄트는 무척 악동 같습니다. 분명 비열하고, 나쁜데 미워할 수 없는 천진함이 공존합니다. 오세의 김은희씨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자전거 장면은 인상 깊은 앙상블을 보여주었고요. 2막이 되면 배우가 지치는 것인지, 연기인지 다소 힘겨워 보입니다. 쉬지 않고 무대에서 대사를 내뱉고, 움직여야 하는 역할이어서 체력적인 부담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아요. 입고, 벗고, 뛰고, 움직이고, 물에 빠지고, 흙에서 뒹굴고 등등 페르 귄트는 청개구리 마냥 폴짝폴짝 무대를 휘젓고 다닙니다. 몸의 움직임이 많아서 쉽지 않은 역할 같습니다. 더군다나 관념적인 독백이 많아서 감정선을 잡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 같고요. 그리고 많은 배우들의 몸을 아끼지 않은(?) 연기들이 있습니다. <페르귄트>는 온 가족이 함께 보는 이야기가 아닌 건 분명한 것 같더군요.

무대는 꽤 아기자기하고, 아름답습니다. 중앙의 수직면을 거울로 채웠는데 거기에 비치는 그림자 효과가 재미있습니다. 사선인데다 거울 면이 평평하지 않아서 왜곡되어 비치거든요. 거울 효과를 따로 의도한 장면은 없어서 그냥 배경막으로 존재하기는 합니다. 공연을 같이 본 지인은 오페라적인 무대라는 표현을 쓰더군요. 세트가 거대하고, 세트 자체가 장식적인 효과를 갖는다는 측면을 지적한 것 같습니다. 가운데 놓여있는 투명한 유리관의 사용이 보다 효율적일 수 있지 않았을까 고민되긴 하더군요. 그 유리관이 없으면 뭐가 달라지는 것일까. 주물국자 속에 사람이 녹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리고 자궁으로 회귀하는 페르귄트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것은 알겠지만 2막 내내 중앙에 버티고 있어서 다른 방식이었으면 어땠을지 생각해봤습니다. 정답은 떠오르지 않았지만요.

의상을 보고서 지인이 '웃기라고 만든 의상인지 아니면 섹시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라고 했는데 전 코믹성을 의도한 쪽일거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굉장히 희화화되어 있어서 앞의 세 명의 여자들과 초록 여인은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려고 했던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 지적도 유의미하다고 느껴지는 게 '웃기려고 만든 장면인 것 같은데...'라는 느낌이 여러번 들거든요. 장면 자체의 느낌이요. 뭔가 의문이 드는 감정들이랄지. '이 장면이 슬프라고 만든 것일까.... 그런 것 같은데' 등등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감정에 대해서 반신반의하게 되는 부분들이 있거든요.

제 감상 역시 뜨뜻미지근하게 막을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의도는 알겠는데 글쎄요. 나쁘지는 않았는데 그렇다고 딱히.....
여기에서 다시 한번 연출의 힘으로 갈아엎어진다면 어떤 작품이 나올지가 더 궁금한 공연입니다.


             관련 리뷰
혼님의 양정웅 & 극단 여행자의 페르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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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클리 09/05/18 18:11  R X
제 이웃분께선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언급하시더군요.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양정웅씨 작품은 재미없다는 사람도 많지만, 저는 일단 호감인 편입니다. 되던 안되던 자기만의 방식을 여기저기 시도해보려는 노력이 가상해서요. 미쉘위처럼 되지만 않는다면 다행인거죠^^
빨간그림자 09/05/19 01:37 X
오늘 지인을 만났는데 <페르귄트>에 대해 극찬을 하더군요. 그래서 다시 한번 취향을 많이 타는 공연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호평을 들으면서 웬지 '그래도 그 정도까지 좋은 공연은 아닌 것 같은데...'라는 마음도 들었거든요. 혹평을 들으면 그것대로 '그렇게까지 나쁜 공연은 아닌데....'라는 마음이 교차하는 미묘한 심리라고 해야할지. ^^
빨간그림자 09/05/19 01:46 X
아, 그런데 국립극장페스티벌 버전이랑 이미지가 겹치나요?!
트롤의 의상이라던가, 카트에 액자를 실어서 물질주의를 풍자하는 장면이라던가.
이전 <페르귄트>와 이미지가 유사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정말 그러한가 해서요.
윙클리 09/05/19 10:54 X
다른 건 잘 기억이 안나고 트롤의상은 확실히 국립극장 버젼과 비슷한 것 같았습니다. 초록괴물에 대한 이미지가 다들 같은건지~확실히 이 공연, 취향 많이 타는 공연인 것 같아요. 정말 돈 아까워죽겠다는 분도 여럿 봤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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