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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에 글을 재미있게 쓰는 양반이다 보니 창작론처럼 딱딱한 이론서도 재미있게 썼다. 이 책은 세 파트로 나뉜다. 첫번째는 작가가 되기 까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다룬 <이력서>, 두번째는 작가가 되기 위한 기본적인 소양들을 설명한 <연장통>, 세번째는 <창작론>이다. 아무래도 자기가 마음에 들고, 공감하는 부분에만 밑줄을 치게 되므로 아래의 글은 나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유용한 메뉴얼들에 가깝다. 작가 지망생이라면 이 책 전체를 일독해 보아도 후회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보다 구체적이고, 메뉴얼에 가까운 글쓰기 교본은 Bell, James Scott의 『Plot & Structure - (Techniques and Exercises for Crafting a Plot That Grips REaders From Start to finish)』라고 생각한다.(트랙백 참고) 불행히도 이 책은 번역이 안되어 있다. 번역에 드는 시간과 수고를 생각하면 정말로 창작 메뉴얼이 필사적인 사람에게만 권해야 할 책인 것 같다. 그에 비하면, 스티븐 킹의 창작론은 느슨하다. 창작 강의라기 보다는 에세이의 느낌이랄까. 작가를 지망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스티븐 킹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사람은 어떻게 그런 글을 쓸까?'라는 호기심으로라도 읽어볼 만한 책이다. 다른 창작론들은 작가 지망생만 읽는데 이 책은 작가 지망생이 아니더라도, 작가의 팬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읽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퍽 재미있는 글인 셈이다.  


1) 지금 여러분의 책상을 한 구석에 붙여놓고, 글을 쓰려고 그 자리에 앉을 때마다 책상을 방 한복판에 놓지 않은 이유를 상기하도록 하자. 인생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2) 형편없는 작가가 제법 괜찮은 작가로 변하기란 불가능하고 또 훌륭한 작가가 위대한 작가로 탈바꿈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스스로 많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고 시의적절한 도움을 받는다면 그저 괜찮은 정도였던 작가도 훌륭한 작가로 거듭날 수 있다. 여러분이 형편없는 작가라면 그 누가 도와줘도 장차 훌륭한 작가는 커녕 제법 괜찮은 작가가 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여러분이 훌륭한 작가인데 위대한 작가가 되고 싶다면...... 빨리 포기하시라.

3) 간혹 나에게 '성공의 비결'을 묻는 사람이 있을때 나는 두 가지가 있다고 대답하곤 한다. 육체적인 건강을 유지하는 것과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 이만하면 괜찮은 대답이다. 질문을 적당히 물리칠 수 있고 또 어느 정도는 진실도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는 건강한 신체를 가졌고 또한 나에게든 누구에게든 엄살은 결코 용납하지 않는 자신만만한 여자와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에 지금껏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뒤집어도 역시 옳다고 믿는다. 즉, 글을 쓰면서 그 속에서 기쁨을 느꼈기에 건강과 가정 생활도 유지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이 관점을 거칠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글쓰기 보다는 삶이 중요하다. 히키코모리처럼 방에 틀어박혀 글을 쓰는 것은 작품의 향상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생도 말아먹는다. 스티븐 킹은 유미주의 혹은 예술지상주의에 본질적으로 알러지 반응이 일어나는 사람인 것 같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뮤즈는 남자라고 공언한다. 그의 글을 읽으면 그럴 것 같기는 하다.

둘째, 글쓰기의 세계가 가진 불평등함이다. 재능의 한계란 분명히 존재하고, 이것을 극복할 방법이 실질적으로는 없다. 이와 비슷한 날카로운 지적이 있다.


나는 작품은 작가의 열정과는 비교적 무관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적어도 당신이 작품을 만들면서 겪는 '고통'의 양과 작품의 퀄리티는 무관하다. 정말이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집요함이 필요한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말은 거짓이다. 작품은 작가의 '고통'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무엇인가가 아니다. 당신이 말하는 '열정'이란 바로 '작품에 대한 작가의 감정이입과 좌절의 정도'를 말하는 것이겠지. 보통 그 열성의 정도를 작품의 진정성 어쩌구와 동일시한다. 그러나 그 '열정'이 당신의 인생과 에너지를 얼마나 소모시키건 간에, 작품은 '작동하거나/작동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일 뿐이다. 열정을 조금 밖에 투여하지 않은 작품도 멋지게 작동할 수 있고, 평생을 기울인 역작도 털털거리다 마는 수가 있다. 물론 작품의 진정성도 마찬가지여서 자신의 모든 고통을 작품 하나에 투여했더라도, 작품은 작동하거나 작동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일 뿐이다. 작가의 고통과 삶은 작품을 대체할 수 없다.

출처: 깜악귀님의 작품에 매달리는 작가에 대하여


셋째는 내가 오래도록 품었던 의문에 대한 답이다. 일상을 풍요롭고, 바르게 영위하면서도 작품 활동은 충분히 가능하다. 스티븐 킹이 그의 아내 태비를 끔찍이도 아끼며, 사랑하는 것을 보면 예술가의 문란한 사생활이란 예술가적 재능이나 감성의 발현이 아니라 단순히 개인 성격일 뿐인 것 같다. 스티븐 킹을 문학계의 어느 위치에 자리잡게 해야하는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하여간 데카당스러워야만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김훈도 비슷한 말을 했다. 작가에게 포즈가 배어 있어서는 다 글러먹은 일이라는 거.

몸에는 산소가 가득 들어있어야 하고, 몸은 늘 민감하고도 정확하게 반응하는 감각들로 살아 있어야 한다. 글이란 '왜 쓰는가?'에 대답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다. 글을 쓰는 일은 이 생기발랄한 몸의 살아있음을 입증하는 과정이다. 이 몸의 언어를 통해서 이미지에 가 닿을 때 그의 글은 가장 빛나는 문장을 이룬다. 문체는 몸의 일이다. 몸이 이미지에 맞는 가장 정확한 문체를 포착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몸이 술과 담배에 절어 있어서는 끝장이다. 이 몸에 포즈가 배어 있어서는 다 끝난 것이다.

- 김훈,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앞의 세가지 테제는 글쓰기에 대한 관념에 대한 이야기고(오해를 막기 위해 덧붙이자면 내가 뽑아내서 정리하니까 저런 모양이지, 이 책의 구성이 저렇게 되어있지는 않다.) 세부적인 tip들 중에서 몇가지를 메모해 둔다면...... 일단 자신의 글을 잘 이해하고, 문학적인 감수성을 충분히 지니고 있는 지인이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예상 독자'로 생각하며 그/그녀에게 읽히게 된다고 작가가 생각하게 되는 바로 그 사람의 존재가 중요하다. 결국 작품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헌화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일상사에서 그 대상이 누구인가. 스티븐 킹의 경우는 그의 아내 태비였다. 킹은 자신의 뮤즈는 남성이라고 말했지만, 내가 볼 때는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아무튼 작가와 작가의 예상 독자와의 관계는 낭만적이고, 신비하다. 그리고, 이 유일한 예상 독자를 넘어서게 되면 작품을 읽어주는 지인층이 존재하게 된다. 이들의 반응은 중요하면서도 중요하지 않기도 하다. 오탈자라던가 잘못된 상식이나 정보에 대해서는 매우 유용하지만 주관적인 느낌에 대해서는 크게 괘념치 않아도 된다. 사람마다 의견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킹의 계산법이 재미있었다.

- 어떤 친구들은 등장인물 A는 괜찮은데 등장인물B는 너무 부자연스럽다고 말할 것이다. 이때 다른 친구들이 나서서 오히려 등장인물B가 더 그럴듯하고 등장인물A는 과장되어 있다고 말한다면 도로 제자리다. 안심하고 그대로 두어도 된다. 어떤 친구들은 그 작품의 결말을 좋아하고 또 어떤 친구는 싫어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명심하라. 만약 여러분의 작품을 읽어본 사람들이 모두 한결같이 어떤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면 그 문제는 틀림없이 있는 것이고, 따라서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 (퇴고에 대하여) 사랑하는 것들을 죽여라, 사랑하는 것들을 죽여라, 자기 중심적인 마음에 찢어지는 아픔이 오더라도 모름지기 사랑하는 것들을 죽여야 한다. 수정본= 초고- 10%. 초고 보다 수정본의 내용이 더 많아지고 있다면 뭔가 잘못되고 있는 것이다. 작품의 기본적인 스토리와 정취를 유지하면서도 10퍼센트 정도는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노력이 부족한 탓이다.

- (자료 조사에 대하여) 제발 부탁인데, 혹시 여러분이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한 소설을 쓰게 되어 자료 조사가 꼭 필요한 경우가 있더라도 부디 '배경'이라는 말을 명심해 주기를 바란다. 자료 조사는 되도록 멀찌감치 배경에 머물면서 배경 스토리를 마련하는 데 그치는 것이 좋다. 여러분 자신은 살을 파먹는 박테리아나 뉴욕의 하수도 시설이나 콜리종 강아지의 IQ 따위에 매료될 수도 있겠지만, 여러분의 독자는 등장인물이나 스토리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질테니까. 여러분이 쓰고 있는 것은 연구 논문이 아니라 소설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언제나 스토리가 우선이다.

- 글쓰기의 목적은 돈을 벌거나 유명해지거나 데이트 상대를 구하거나 잠자리 파트너를 만나거나 친구를 사귀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글쓰기란 작품을 읽는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아울러 작가 자신의 삶도 풍요롭게 해준다. 글쓰기의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찬찬히 다시 한번 읊조려 본다.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관련 포스트
Bell, James Scott / Plot & Structure ... (1)
Bell, James Scott / Plot & Structure ... (2)

이 글의 관련글(트랙백) 주소 http://redshadow.pe.kr/tt/rserver.php?mode=tb&sl=949

magpie 09/08/05 15:30  R X
오오. 창작자의 꿈을 접지 못하던 시절 추천받았던 책인데 따로 공부하기가 싫어서 보지 않았던 ...

나는 창작자를 '목적을 가지고 창작하는 자'와 '창작(배설)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창작하는 자'로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편집된 부분만 보면 킹은 마치 전자에 가까운 사람처럼 보이는고만 ... 뭐 사람을 저 두 카테고리로 딱 잘라서 분류할 수는 없겠고, 첨에 후자로 시작했다가 시간이 가면서 전자로 이동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야 '-')a.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아마 내가 창작을 업으로 하지 않았던 것은, 내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서 행복해지는' 데에 창작이 필수요소가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문득 드는고만..

빨간그림자 09/08/05 15:45  R X
magpie/ 내 생각에는 '하지 않을 수 없다'라는 부분에 대한 정도 차이인 것 같아. 킹은 글을 쓰면 즐거워해. 단지, 글을 쓰지 않아서 죽을 정도인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어. 그는 쓰고 있으니까. 내 생각에는 절실함의 정도는 금지되어야 나타날 것 같은걸. 또 하나, '배설'을 창작의 조건으로 보는 건 네가 생각하는 그 집단의 성향일수도 있어. 가설이기는 하다만은, 만약 환동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면 그쪽이 뭔가를 분출하지 않으면 못견디는 사춘기 집단이어서 그랬을지도 몰라. 꼭 창작이 아니라 운동이라도 그 나이때는 그랬겠지. 이 가설은 네가 생각하는 그 집단이 성인이 되어서까지 창작 작업을 하고 있다면 흔들리는 것이다만은.... 나로서는 네가 언급하는 그 집단이 호르몬 과잉의 소년/소녀들의 일반적 특성 같은 생각을 지우기가 힘들다네. 내가 학교에서 만나는 창작자 집단이 그렇지 않다보니 더더욱.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음.

1) 절실함은 금지되어야 나타난다.(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계속 그리는 사람에게는 절실함이 안나타난다. 오히려 방해를 받는 쪽에 나타난다.)
2) 배설을 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 정도의 충동은 사춘기때 나타난다. 다수의 사람들이 10대와 20대에 다양한 문화 창작 활동을 시도한다.

magpie 09/08/05 21:11  R X
아아. 그래서 '창작'을 '표현'으로 수정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왔는데 벌써 댓글이 ... 표현하는 것만으로 창작/작품이 완결되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야;. 시작한 이야기/작품을 끝맺기 위해서는 성실함과 의지와 지식과 기술이 필요하고, 이건 충동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지.

예민해질 수 있는 부분인데 조심성 없이 쓴 것 같구나; 미안미안.

빨간그림자 09/08/05 22:59  R X
magpie/ 이해해줘서 고마워. 사실 '배설'이라는 표현은 창작물을 가장 조롱할때 쓰는 말이라서 네 뜻이 그런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거부감을 느끼는 표현같아. 아아, 그러고보니 창작자에 대한 최악의 평가가 '지 혼자 마스터베이션한다'이군. 성욕같은 근원적 창작 에너지를 의미하는 거라면 좋은 창작자는 변태쪽이 아닐까? 색기가 많이 흐르는 쪽은 대중 예술쪽? 파트너가 많을테니까. 수녀와 수도사는 역시... 비평?

magpie 09/08/06 00:06  R X
빨간그림자/ 사과 받아주어 고마워^^. 항상 고민하면서 쓰는데도 아차 하는 사이에 글이 거칠어지는구나;. 계속 정진하겠음...;;

창작 에너지라.. 읽고보니 내가 말 하고 싶었던 것도 그 부분인 것 같네? 사람을 움직이는 에너지가 능동적인 방향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잖아 - 네 말마따나 '금지되었을 때'에야 비로서 나타나는 것도 있고 말이야. 성욕이 능동적 에너지원라고 한다면 반발, 증오는 수동적 에너지원라고도 할 수 있을 듯?

언젠가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생각할 꺼리가 나와서 다시 얘기해 볼 수 있음 좋겠구나^^

데굴 09/08/06 11:04  R X
전에 한 번 말한 것 같지만,, 하루키의 <달리기에 대해 관해 말할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한 번 읽어 보길 바래. 위에 언급한 책들보다 소설쓰는 행위에 대한 이야기는 느슨할지도 모르나, 그가 글을 쓰고 달리는 내용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 결국 그가 달리기를 시작한 것도 전업 작가로서 살아 내기 위한 것이 그 시작이었으니까.

빨간그림자 09/08/06 15:45  R X
데굴/ 추천 받았으니 읽어봐야겠네요. 동네 시립도서관에 주문을 해야겠어요. 하루키의 영향인지 요즘에는 작가분들 중에서 마라톤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데굴 09/08/06 19:53  R X
훗,, 철인 3종도 하더군.(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니까)
마라톤도 그리스, 뉴욕, 홋카이도 등지로 원정도 다니던걸. 틈틈이 작가로서 자기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쓸쓸하고 외롭고 고독하지만 아름다운 책이었어. 지나간 첫사랑/짝사랑의 상대가 다시 좋아지는 기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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