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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일시: 2008년 4월 3일~ 6일
공연장소: LG 아트센터

극단: 마부 마인(Mabou Mines)
연출: 리 브루어(Lee Breuer)

- CAST -

노라 헬머: 머드 미첼(Maude Mitchell)
토어발트 헬머: 크리스토퍼 메디나(Kristopher Medina)
닐스 크록슈타르: 닉 노비치(Nic Novichi)
크리스티네 린데: 자넷 기라데우(Janet Girardeau)
랑크 박사: 리카르도 길(Ricardo Gil)
헬레네: 제시카 웨인스타인(Jessica Weinstein)
에미 헬머: 한나 크리젝(Hannah Kritzeck)
밥 헬머: Sopie Birkedlalen, Eilert Sundt
카메오 출연: Eamonn Farrell, Ilia Dodd Loomis

피아노 라이브 연주: 수잔 탕(Susan Tang)



1 . 구호가 낡게 될 때......

2005년 토마스 오스터마이어의 <인형의 집>이 LG 아트센터에서 공연되었습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나 2008년에 극단 마부 마인의 <인형의 집>이 공연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연출가에 의해 최신식으로 요리된 <인형의 집>을 보니 결론이 나오더군요. <인형의 집>이라는 희곡이 제게는 더 이상 매력이 없다는 것이요. 이 작품은 굉장히 노골적이면서도 직접적인 여성 평등 메세지를 담고 있는 희곡입니다. '메세지' 혹은 '주장' 자체가 작품을 이루는 근간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그 메세지가 유효하지 않는 시대가 되면 작품이 힘을 잃는 것 같아요. 아내가 더 이상 남편의 경제력에만 의지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다 보니 작품의 갈등이 와 닿지를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남편의 위선을 깨달았다고 해서 아내가 집을 나갈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차라리 노라가 남편과 대판 싸운 후 다시 인형의 집에서 살아가는 게 더 많은 울림을 줄 것 같은 느낌마저 들어요.

줄거리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은행장으로 진급한 남편에게 매우 사랑받고 있는 전형적인 중산층의 부인인 노라는 사실 남편에게는 말하지 못한 비밀이 있습니다. 당시 여성들은 사유 재산을 가질 수가 없었고, 은행에 대출을 하려고 할 때는 보증인이 반드시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몇년 전 남편이 건강이 악화되자 아버지의 서명을 위조해서 돈을 빌리고 치료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대출받은 돈을 전부 갚게 되는 찰나, 서명이 위조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크록슈타트에 의해 협박을 받게 됩니다. 노라는 남편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자살을 해버리려고 하고요. 결국 이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이 마구 화를 내게 되고, 크록슈타트가 협박하는 것을 포기하게 되자 안도하며 노라에게 다정하게 대해줍니다. 노라는 남편인 토어발트가 자기가 꿈꾸던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며 아이들을 내버려두고 집을 나가겠다고 선언하며 가출합니다.

제겐 현대 사회에서 가족을 말하고, 아내와 어머니를 말하기엔 조금 낡은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100년전에는 분명히 통용이 되는 이야기였고, 나름대로 충격을 주는 이야기였겠지만 오늘날 과연 이 작품이 어떤 식으로든지 충격과 인식의 전환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결혼이란 제도가 여성에게 매우 폭압적으로 작동하는 건 사실이지만, 이것이 가출을 하는 행위로 해결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오늘날 관객들은 동의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어감부터 다르죠. 가출은 무슨 가출, 차라리 이혼을 하고 말지. 과거의 노라는 아이도 버리고, 남편도 버리고, 남편의 재정적 지원도 뿌리치면서 집 밖으로 나와야 할 필요성을 느꼈지만 오늘날의 노라는 다르게 행동할 것 같습니다. 아니, 다르게 행동해야만 하고요.

그러므로 연극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면 사실 거짓말. 오히려 이 낡은 작품을 연출가가 어떤 식으로 재해석하여 오늘날 관객에게도 유효할 수 있도록 만드는가에 시선이 갔습니다. 연출 테크닉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죠. 리 브루어의 연출은 흥미로웠고, 재미있었습니다. 작정하고 코믹 터치를 한 작품으로 보이더군요. 유효한 전략이 아니었나 싶어요. <인형의 집>을 드라마 그 자체로 재현한다고 했을 때 오늘날에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지 심각하게 회의를 하는 관객이다 보니 더욱 그렇게 느끼는 모양입니다. 작품에 매력을 느끼진 못하지만 연출의 솜씨를 보면서 '이 희곡으로 저렇게까지 나오다니. 재미있는 연출이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거든요.

2 . 블랙 코메디의 위트





<인형의 집>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 매우 키가 작은 남자와 그에게 맞추어서 만들어진 작은 집으로 표현한 것은 꽤 위트있는 발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말 그대로 깜찍하고, 단란한 '인형의 집'으로 보이더군요. 노라와 크리스티네가 키가 작은 남자 배우에 비해서 체구가 압도적으로 커보이다 보니 억압적인 상황들이 우스꽝스럽게 보였고요. 특히나 노라가 남편인 토어발트 앞에서 애교를 부리는 모습이 단번에 들어오더군요.

제가 오스터마이어 버전의 <인형의 집>에서 불편했던 점이 노라가 자신의 성적 매력을 남편을 휘두르는 무기로 사용하는데 그게 작품 내에서 비판이 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거든요. 노라란 인물 자체가 그다지 결백하지 않은 여성이라는 점이 간과되었었습니다. 오스터마이어 버전에서는 노라가 마지막에 집을 나가는 대신 남편을 권총으로 쏴죽이는데 어이가 없어서 분노하게 되더군요. 약자로서의 프리미엄을 누리고 있는 게 너무나도 빤히 보이는데 이득은 이득대로 챙기면서 구호는 구호대로 나열한다고 느꼈거든요. 그에 비해 리 브루어의 노라는 희화화 되었기에 오히려 결백합니다.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서 남편 앞에서 귀여운 종달새를 연기하며, 남편의 비위를 맞추고 있습니다. 매우 키가 작은 남편 앞에서 강아지처럼 소매를 잡아 끌 때는 이 장면이 보여주는 날카로운 풍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노라를 미워하는 게 아니예요. 단지 그녀가 완벽하게 결백한 인물은 아니라는 거, 완벽한 피해자인 것이 아니라 사실 인형의 집을 만드는 공범이라는 점을 보여주었으면 했던거죠. 덕분에 리 브루어의 <인형의 집>은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덜했던 작품입니다.



2막의 엔딩 장면은 작품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크록슈타르의 편지로 인해서 토어발트가 진실을 알게 되고, 노라에게 마구 화를 내다가 크록슈타르의 또 다른 편지를 받고서 상황이 역전된 것을 깨닫습니다. 이때부터 연출가 특유의 터치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는데 토어발트가 노라에게 '나는 당신을 용서하겠소' 운운하면서 하는 말이 독백처럼 처리됩니다. 토어발트는 작은 인형 침대에 옷을 벗고 마치 보이지 않는 노라가 밑에 깔려있는 것 마냥 섹스의 흉내를 냅니다.

그 동안 무대에는 붉은 천이 드리워지고, 가운데의 천이 걷히면 노라는 오페라 가수처럼 발코니 무대에서 노래하며 등장합니다. 위의 사진에 나오는 흰 드레스 차림으로요. 그리고 양 사이드의 천들이 걷히면서 그 안에 인형 남녀 부부가 나옵니다. 사진 왼쪽에 나오는 것들이 인형들입니다. 여자 인형과 함께 노라는 희곡의 대사를 노래로 칩니다. 토어발트가 노래를 하면 역시 남자 인형들이 손을 들어서 포즈를 따라하고요. 이에 노라는 모든 것을 버리고 집을 나가겠다고 말하며 아이도 버리고, 남편도 버리고, 자신이 입고 있던 옷도 버리고, 마지막엔 가발도(으음?) 버린 채 떠납니다. 실 오라기 하나도 가져가지 않겠다는 의지로 느껴지더군요.

그녀는 매우 약해 보였고, 어떤 의미에서는 마네킹처럼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떠난다는 것을 말할 때는 기계 음성이 섞여서 더 그렇게 느껴졌을 거예요. 1막에서 남편에게 애교를 부릴 때 쓰는 콧소리와는 다르게 2막의 오페라 장면에서 그녀는 매우 저음의 보이스를 보여줍니다. 점점 더 기계음이 섞여서 그녀가 물화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는 했지만요. 멀리서 본 그녀는 빼빼 마른 마네킹처럼 보였거든요. 대체 그녀가 어디를 갈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더욱 이 장면은 가슴이 먹먹합니다. 이에 대해 노라를 연기했던 머드 미첼은 아래와 같은 말을 했더군요.


실패, 패배, 패배...... 모든 것이 내겐 패배로 보였다. 극의 마지막에 내가 서 있는 오페라 발코니에 커튼이 내려오면 나는 거기에서 울면서 서 있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인형의 집>에 완전히 빠져들어 5년을 살아온 지금은 좀 더 큰 고뇌와 도전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낀다. 또한 궁극적으로는 새롭게 되고자 하는 희망, 자기실현에의 희망이 있어야 함을 말이다. 이전에는 노라가 살아남을 수 있는 가망이 있다고 믿지 않았다. 그러나 노라를 연기하면서 나는 좀 더 강해지고 대담해져서 이제는 그런 기회와 가망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마도 노라는 북쪽을 향하는 부둣가에 서서 누군가와 대화를 시작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또는 어느 보헤미안을 우연히 만나 파리로 발길을 돌릴 수도 있겠지. 그곳에서 무용수로 일하면서 프랑스어를 배워 유창하게 구사하고 멋진 친구들을 사귀며 다시 한번 사랑에 빠질지도 모른다. 어린아이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성장한 여인으로서 말이다. 책을 쓸 수도 있고 그녀의 아이들과 여름을 함께 보낼 지도 모르겠다. 그 누가 알겠는가?
- 팜플렛에서 발췌


저는 사실 배우가 느꼈던 초기의 느낌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막이 내려오면 노라는 울고 있을 것이라고요. 그리고 저 역시 노라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배우가 배역에 대한 애착이 강해서 희망을 불어넣고는 있지만 그렇게 긍정적인 삶의 에너지가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이 가정이 파탄나는 것이 단순히 한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문제 때문이 아니라 사회 제도적인 모순 때문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나가겠다'라는 허풍을 오페레타로 풀어낼지언정 그녀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노라라는 인물을 보는 다른 여성의 시점입니다. 즉, '노라'라는 배역에 대해서 배우가 갖고 있는 애정 자체입니다. 이 인물을 연기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배우는 노라라는 여성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하고, 그녀의 삶을 지지해 주고 싶어합니다. 이 연대감 혹은 유대감은 참 흥미롭더군요. 여성이 다른 여성에 대해서 보내는 감정적 지지에 대해서 제가 유달리 애착을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은.

연출 방식으로 브레히트의 기법이 많이 사용되었는데(음악의 사용, 극의 흐름을 깨는 피아노 연주자와 보조자의 행위들, 대사를 천 위에 프린트해서 떨어뜨리기, 무대의 설치와 철거 스탭들의 등장 등등) 그게 작품과 얼마나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는데 성공했는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인형의 집>이라는 고리타분한 희곡을 재미있게 연출하려고 무지하게 노력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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