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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일시: 2008년 7월 16일~21일
공연장소: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작: 김지훈
연출: 이윤택
무대디자인: 장해근
안무: 김남진
음악: 강상구
분장가면: 문정아

- CAST -

어진네: 김소희
남전: 이승헌
점방네: 김미숙
떡국도사: 문원령
어동이: 윤금정
우출이: 김현우
어진이: 이보미
박공조: 오성택
박구업: 홍민수
도선섭: 김철영
조덕공: 석원일
토지국장: 한상민

http://www.stt1986.com/



창작희곡 활성화 지원사업 선정 작품인 <원전유서>는 공연 시간만 4시간 반이라고 했다. 4시간 반이라니. 더군다나 홍보 팜플렛에 '박상륭의 소설'을 연상 시킨다는 심사평이 쓰여 있었다. 오호라. 박상륭의 소설은 다른 말로 소설 언어로 쌓아올린 경전(經典) 주석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이 작품은 희곡 언어로 쓴 신화렸다. 그렇게 어림 짐작으로 때려 맞춘 후 심봉사 길 찾듯 더듬더듬 좌석을 찾아 앉아보니 거대한 쓰레기 더미가 무대 위에 올려져 있었다. 대극장 무대를 가득 채운 쓰레기 더미. 그리고 그 밑에 지어져 있는 집. 집 위에 쓰레기 더미들이 얹혀서 큰 산을 이루고 있었다. 아니, 쓰레기 더미를 파들어 가서 굴 속 마냥 집을 지은 것처럼도 보였다. 현실인 것 같으면서도 현실이 아닌 공간. 현대인 것 같으면서도 정확히 시기를 추측할 수 없는 시간대. 그곳에서 신화가 시작되었다.



1 . 물질 문명과 땅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


쓰레기가 모여서 산을 이룬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이 쓰레기 더미들을 '땅'이며, '영토'라고 말하며 정부의 승인을 요구한다. 대지를 사람들이 발을 디디고 사는 곳이라고 한다면, 이미 이 거대한 쓰레기 더미는 대지로서의 자격을 충분히 갖춘 셈이다. 새로운 '토지'로서 인정받은 쓰레기 산. 이곳에서 그들은 전자부품 쓰레기들에서 금을 추출해 낸다. 결국 쓰레기 더미는 또 다른 재화로서 거래되고, 쓰레기 마을에 살던 사람들은 다시 토지와 주소를 빼앗기게 된다. 쓰레기 더미들이 토지가 되고, 그 토지가 다시 재화가 되어 박탈되게 되는 과정은 능글 맞을 정도로 천연덕스럽고, 자연스럽다. 현대 문명에 대한 거대한 우화를 듣고 있는 것 같다.



박구업: 저쪽에 있는 전자제품과 가전제품 그리고 주방용품과 자동차의 지층을 개봉해 봐요 우리나라 최초의 텔레비전에서부터 냉장고 세탁기는 물론 신발에서부터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완벽하게 보전되어 있지 이 산 자체가 거대한 방부제니까 나는 고물을 보면 그 시대를 알 수 있어요 고물의 표정을 보는 것이지 그리고 깨달은 건 인간 자체도 고물처럼 이도저도 아닌 존재란 거야 만족할 줄 모르니까 그게 다 욕망 때문이지 가지면 가질수록 맛보면 맛볼수록 또 다른 쾌락을 향해 갈증을 느끼는 건 인간 밖에 없어요 그러니 인간의 힘으로 쌓은 저 산에서 뭐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단 거야
조덕공: 저 산을 보면 인간은 영원히 새 것을 가질 수 없는 종족이란 생각이 들어
남  전: 새 것? 흥 돌도끼를 쓰는 자들에게 소총 사용법은 필요 없어 저 산의 진가는 오직 신들의 언어로만 기록되어 있었어 내가 그걸 훔쳤지
박구업: 과학이 떠맡은 제일 큰 과제는 신과 접촉할 수 있는 기술을 내어놓을 수 있느냐 하는 물음에 대한 답변을 찾는 일일 거요 그들 말고는 이 세상의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존재가 없으니까
조덕공: 최후의 희망? 신제품은 시장경제의 바다로 떠났다가 다 자란 연어처럼 고물의 강으로 회귀한다 재활용의 의무가 시민생활의 도덕적 의무로 명시되어 있어 그러면서 길에 내놓은 쓰레기에 양심을 거는 이유는 뭘까
남  전: 언젠가 세상의 자원은 바닥나고 이 산은 더 커질 거야
조덕공: 지구는 고물상 우리의 부존자원은 계속되는 고물이지
박구업: 고물이 이 말의 경제이며 미래의 재료라는 점에서 자네들과 나는 통하는군



물질 문명은 끊임없이 쓰레기를 생산해 낸다. 소비는 새로운 물건들을 사들이는 것이 아니라, 기존 물건을 버리는 행위라 불러야 옳을 것이다. 그리고 그 쓰레기들은 썩지 않고 흙 위에 쌓인다. 썩어서 흙이 되기를 완강히 부인하는 쓰레기들은 결국 대지 위에 새로 쌓인 퇴적물인 셈이다. 그것은 또 다른 지층(地層)이다. 쓰레기 산에 새로운 주소를 부여해주길 행정당국에 요구하는 남전이 말하듯 "지구의 일부이면서 지표면의 일종"이다. '땅'이라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면 쓰레기 더미 역시 인간이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땅인 것이다. 쓰레기산이 대지로 바뀌면서 전자부품 쓰레기에서 금을 추출하는 것은 광석에서 채굴하는 것과 동일한 층위에 놓이게 된다. 다양한 화학적 실험을 통해 금을 만들어 내고자 했던 중세의 연금술사들과는 달리 현대의 연금술사는 전자부품 쓰레기들에서 금을 만들어 낸다. 이 연금술은 쓰레기산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이 죽어서 나무가 되는 것으로 확장된다. 연금술의 완성은 바로 생명의 제조. '나무'가 없는 것 빼고는 흙의 성분이 다 있던 쓰레기 산은 나무로 인하여 진정한 대지가 되고, 손상된 영혼과 육체를 가졌던 아버지는 잃은 부분을 되찾아 회복된다. 이는 물질 문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자 상흔을 치유하려는 작가의 연금술적 시도이다.

어동이가 죽어서 마을 사람들이 함께 매장을 할께 될 때 염을 한다. 염의 내용은 '옴 마니 팟 메흠'이다. 불교의 진언이기 때문에 매장 장면이 가진 종교적, 영적 구원의 의미가 강렬해진다. 실제로 이 대사가 희곡에서는 '엄마야 밭 매오'로 되어있다. 일종의 언어적 유희라고 할 수 있다. 염의 내용을 '옴 마니 팟메 흠'으로 듣던, '엄마야 밭 매오'로 듣던 메세지가 동일하게 다가올 수 있다는 점에서 꽤 흥미로운 이음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어동이의 엄마 어진네가 끝없이 밭을 매고, 밭에서 새로운 싹이 돋아 생명을 통한 희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옴 마니 팟메 흠 - 부처와 같은 순수한 상태로의 회귀를 추구하는 티벳불교의 대표적 진언(眞言) 즉 우리나라의 나무관세음보살과 같은 진언이다. 이 네음절을 좀 더 설명하자면,

* 옴 - 사람이 아직 정화되지 않아 순수하지 못한 생각과 말과 마음을 정화된 순수한 부처의 생각과 말과 마음에 결합 시킨다는 뜻이며,

* 마니 - 사람이 스스로 정화되어 순수한 동정심과 사랑의 마음을 이루면 가난한 삶의 어려움에서 벗어나 공(空)의 상태로 회귀한다는 뜻이고,

* 팟메 - 사람은 본디 어리석어서 진실을 부정(否定)하여 삶의 고통이 따르므로 진실을 부정하지 않는 마음으로의 회귀를 뜻하며,

* 흠 - 어떤 것으로부터도 동요되지 않고 자신의 실체를 깨달아야 내세의 삶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뜻이다.>

* 출처: http://www.songsim.org/bbs/zboard.php?id=free&page=2&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it&desc=desc&no=16






2 . 비일상적 관념 언어가 만들어 내는 신화적 세계


어동이는 새아빠에게 매일 구타 당하고, 백점을 맞았지만 컨닝했다고 선생님께 혼난다. 그래도 세상을 원망하지 않으며 제 안으로 오롯이 아픔을 끌어안는다. 그 아이는 쓰레기 산에서 붉은 사슴을 보고, 어린 누이는 초상집을 찾아다니며 울음을 판다. 네 명의 할머니는 어린 아이 마냥 나이를 거꾸로 먹어가며 죽음을 기다린다. 떡국도사는 해탈에 이르기 위해 떡국을 끓이고, 쓰레기들을 토지로 만들어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려던 남전은 침묵하고 있는 신(神)들을 본다. 실재와 환상이 교차하며, 일상적 언어와 비일상적 관념이 혼용된다. 혼재된 틈 속으로 보이는 것은 죽음과 생명이다.



- 박구업: 아들아 살아있냐? 너 아무 날에나 아비 몰래 가버리면 참 좋을 것을 내 입에 먹을 것이 들어오면 그게 다 돌 같아서 씹히지가 않더라 너 먼저 가야 젯밥이라도 한번 따뜻하게 먹일텐데 그 밥에 정이 들어 한 해 또 한 해 먹으러 오면 나는 참 좋을 것인데 네가 먼저 가서 내 걱정 할까봐 호적에서 너를 파냈다 내가 너에게서 내 성을 지웠다고 먼저 가서 기다리는 네 얼굴을 내가 못 알아보겠니 걱정 말아라 누구 아들인데 냄새만 맡아도 알 수 있어 내 아들아 가고 싶음 당장도 좋다 이제 돌은 그만 먹고 한줌 목숨버리러 가다가 섰다가 안 할래? 다 필요 없다 단 일분이라도 좋으니 내가 너보다 오래 사는 거 그 한 가지 바란다 내가 먼저 가면 내가 너를 어쩌나

- 어동이: 사람들이 왜 아직도 웃고 있죠 이렇게 어두운데 아저씨 저 소풍 안갈래요 지금 돌아왔어요 아저씨 저 좀 때려주세요 자꾸 엄마가 밉고 아빠가 미워져요 내가 미워죽겠어요 오늘 아무도 때리지 않았어요 저 좀 때려주세요 저 좀 살려주세요
조덕공: 배부른 아이들이 음식을 버리면 넌 그걸 주워 먹을까 외면할까 눈치보며 결정해야 할 거야 넌 배고프고 사람들은 배부르다 인간은 먹어야 하고 버려야 하니까 묻겠다 주워 먹을 것이냐 외면할 것이냐 명심해라 결정하지 못하면 넌 평생 그 무게에 짓눌려 살게 될 것이다

- 남전: 나는 진실이었다 나는 황금궤짝을 만들었지 어쩌면 그래 어쩌면 처음의 나는 바로 보았었지 흥 너희들은 지상에 내려와 살 용기가 없는 이름들이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해냈었지만 지금은 기적의 행동을 잃어버린 실업자들 인간이 너희들의 얼굴을 구분하고 너희들 이름을 기록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너희는 설명적 존재들로 퇴화했지 저건 신이다! 외쳐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 버렸다 너희는 마지막 남은 힘으로 자기 몸을 축소해 경전의 글자 속으로 도망쳐 버린 것 인간의 말 속에서만 힘을 낼 수 있는 게 신이란 존재인가 너희는 뭘 하고 있나 기껏해야 침묵이라는 방벽 뒤에 숨어서 나를 놀리는 것 밖엔 할 수 없다 허깨비! 어서 내려와라 나의 다리를 주겠다 잘라라! 허깨비! 이 팔은 어떠냐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지껄이는 대로 휘둘려 주겠다! 꺾어라! 허깨비!



관념어는 그대로 대사가 되어 말해진다. 그리고 그 대사는 무대를 신화적 공간으로 탈바꿈 시킨다. 신의 존재 유무와 죽음, 가난, 폭력 등의 거대 담론은 아포리즘 자체로 발설된다. 신화적 공간에서 각 인물은 인간의 숙명을 짊어진 거대한 주인공이 된다. 이 연극의 매력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쓰레기 더미 위에서 신의 존재를 조롱하며, 아픔을 홀로 끌어 안아야만 하는 소년에게서 구원의 가능성을 보게 된다. 이 작품이 신화적 세계관을 차용한 것이 아니라 관념어를 통해 신화적 공간을 스스로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특정 신화를 빌려온 것이 아니라, 무게감 있는 언어로 신화적 주제를 끌어내고 있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세계' 자체를 말하고 있는 듯 보였다. 폭력적인 의붓아버지와 어진네와 남매, 점방네, 솥을 매고 다니는 떡국도사와 국자를 들고 다니는 도선섭, 아이 같은 네 명의 노파, 붉은 사슴, 지식인인 남전과 그의 친구 조덕공 등등. 각기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이들이 중첩되면서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세계의 끝은 희망으로 귀결되고 있었다. 죽음을 거쳐서 생명으로 변화하는 희망을.





3 . 연희단 거리패의 역동성

김지훈 작가는 연희단 거리패의 작가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작가의 소속 문제를 짚어내려는 것이 아니라 작품과 극단이 매우 잘 맞아떨어져서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면 무미건조하게만 들릴 관념적 대사들을 힘을 실어 관객에게 전달해 준 것은 분명 배우의 내공이었다. 작품이 가진 고유한 독특함이라는 것은 분명 존재하지만 이 작품을 무대화 했을 때 이렇게까지 강렬할 수 있었던 것은 연희단 거리패가 22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쌓아온 연륜에 힘입어서 이다. 문제적 수작이 그걸 받쳐줄 연출, 배우와 만나 하늘을 날았다. <원전유서(原典遺書)>라는 작품이 2008년 연극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말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닷새라는 짧은 공연 후 막을 내렸지만 재공연 되어 다시 관객들을 찾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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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이 다소 갈리는 편이네요. 공연 러닝 타임에서 오는 장막 희곡의 특징이 아닌가 싶습니다. 과연 그만큼 효율적인 이야기를 했는가와 아닌가에 대한 관점의 차이. 다양한 관점들을 가진 리뷰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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